★ 부부이야기

내 자식들과 당신 자식들

주부모델 2009. 8. 12. 17:47
      친정엘 다녀왔다. 시간이 갈수록 친정엄마의 대해서 더 애틋해지기 시작한다. 여름휴가때나 되서야 들리는 나의 친정, 엄밀히 말하기에 진짜 친정이라 하기엔 웬지 불편함이 존재하는 친정집. 다녀오고 나면 늘 마음이 안 좋다. 그리고 나의 대한 분통이 터진다. 아빠 몰래 바리바리 뭔가를 싸주시는 친정엄마의 모습이 참 싫었다. 그래서 처음엔 그런 엄마의 손길을 물리치고. "됐어. 엄마 안가져가도 되" 하면서 엄마의 마음을 물리치기도 했던적이 있었다. 결혼햇수가 갈수록 안심하고 먹을수 있는 신토불이 먹거리의 소중함을 점점 알아가고 있는 주부가 되어가고 있는 나 다. 그래서 엄마가 힘들게 정말 숨이 턱턱 막히고 허리뼈가 나갈 정도로 힘들게 해서 손수 지으신 논농사와 밭농사에서 나온 먹거리들의 소중함에 새삼새삼 감사함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아빠의 눈치를 보는듯, 아빠 모르게, 아빠가 논이나 밭에 가실때에 도둑질을 하듯히 우리 차 뒷트렁크에 이것저것 바리바리 싸주려고 더운 여름날에 송글송글 땀방울이 맺히고, 얼굴이 벌개지는 친정엄마의 모습을 볼때마다 나는 화가 난다. 아빠 계실때에 싸주셔도 아빠가 눈치를 주시는것도 아니고 다른 자식들도 누군가가 내려오면 그렇게 싸주시면서 왜 우리들에게만은 그렇듯 몰래라는 단어가 어울리게 하나라도 더 많이 싸주시려고 혼자 동동거리시면서 분주하게 움직이시는건지 정말 엄마가 안스워 죽을것 같았다. 화를 내면 더 서운해하시고 ...... 재혼하셔서 아빠와 가정을 꾸린지가 이젠 햇수로 20여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음에도 보이지 않게 아빠의 눈치를 보듯히 아빠 모르게 바리바리 나를 챙겨주시려고 허둥대는 모습을 보면 속상하고 화가 나면서 눈물이 날려고 한다. 참기름을 아빠 자식들에겐 한병씩 싸주면은 나는 친자식이라고 두병을 싸주려는 엄마의 마음을 내 모르는바는 아니지만, 내 엄마의 그런 모습 나는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 내 나이 여덟살에 세딸과 함께 세상에 남겨진 내 친정엄마였고 그리고 누구보다도 열심히 키워서 맏이인 내가 스물한살이 되었을때 지금의 시골의 새아빠를 만나서 재혼을 하셨다. 호적상으로 엄마와 우리들은 남남이다. 엄마 이름만 새아빠 호적으로 올려져 있기 때문이다. 내 두동생과 나는 엄마가 그냥 아빠랑 오손도손 금실좋게 편안하게 서로 의지하시며 행복하게 사시기만을 바란다. 1년에 한두번이나 만나는 아빠네 자제분들과 만남에도 20여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음에도 약간의 어색함은 존재하지만 그런것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그런데 친정엄마는 늘 아빠가 늘 자신의 자식들만 더 챙기시는것 같다고 억울해하신다. 시골 농삿일이 어디 웬만히 힘든일인가? 서른일곱마지기 논농사와 밭농사까지 두분이 지으신다. 기계화가 되었다 하나 칠순이 넘으신 새아빠분과 육십이 훨씬 넘으신 친정엄마 두분만 지으시기엔 정말로 너무 힘든 노동이고 농사일은 웬만히 부지런해선 엄두를 내지 못한다. 도시생활에서 진짜로 피땀 흘려가며 열심히 일한다는 사람들도 농사일엔 버티기가 쉽지가 않다. 두분 다 점점 힘들어 하신다. 이런 상황에 엄마는 아빠 자제분들의 3남3녀와 우리네 세딸들의 모든 먹거리들을 수시로 싸서 부치는일도 벅차고 힘든일이시다. 사는 형편에 따라 누군 부치기도 하고, 누구에겐 안부치기도 하시기도 하는데 그런 모든것들에 엄마는 비교를 하시는것 같다. 조금이라도 우리들에게 뭔가를 덜 부치거나 하는 날엔 심하게 서운해 하시고, 아빠쪽 자식들에게 몇천만원씩 빌려주면서 우리들에게 안 빌려주는일로도 무척 억울해하신다. 나와 동생들은 그런것에 기대를 한적도 없을뿐더러 호적상으로 남남이라 생각하기에 그 어떤 기대를 하지 않고 그저 엄마와 아빠가 남은 여생 편하게만 보내시면 되는데 정작 엄마는 그런 모든것들에서 혼자 스스로 억울해하시고 분해 하신다. 새아빠 되시는 분의 성품은 원래가 자식들에게 돈이나 뭔가를 받는것을 싫어하시고, 주는것도 무척 싫어하신다. 잔정이 없으시지만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한적은 한번도 없다. 그런데 그에 비해 친정엄마는 잔정도 많고 우리들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 나눠주는것을 좋아하시고, 베풀고 싶어하시는 성품을 가지신 분이다. 아빠는 담배 말곤 자신에겐 단돈 10원도 안쓰시는 그런 분이시다. 그래서 당연히 술따위도 전혀 일체 입에 대지 않는 그런 분이시다. 자식들에게 돈을 빌려줘도 이자를 받는것을 당연시 하시기도 하며 이제까지 빌려주고 이자를 받은적도 있다고 알고 있다. 원금도 물론 당연히 돌려 받은적도 있다. 허나 자식인지라 몇천만원 빌려줬다가 돌려받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물론 나나 동생들은 친정에 손을 벌려본적이 없다. 그리고 우리들과 아빠 자식들과는 결코 같을수가 없다는걸 늘 염두에 두었으며, 시골 한번 내려가거나 쌀을 받을때도 매번은 아니지만 쌀값이나 용돈식으로 아빠 통장으로 돈을 부쳐드리기도 했었다. 허나 아빠의 자식들은 그런 용돈 한번 준적이 없으며 시골에 내려가면서도 과일 한박스 사들고 온적이 없다고, 그런 자잘잘한 모든것들에서 엄마는 우리 세딸들과 아빠 자식들을 비교를 하신다. 분명히 아빠네 자식들과 우리들은 성품도 다르고 엄마 아빠 재혼입장에서도 처지가 분명히 다르다. 우리들은 새아빠에게 엄마와 함께 여생을 보내주시는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으며, 늘 엄마가 아빠에게 잔소리를 심하게 하시지만 그래도 우리 친정엄마가 가장 당당하게 큰소리를 칠수 있는 자리는 새아빠 곁에 있을때라는걸 안다. 그래서 우리들은 친정에 내려갈때면 뭔가를 바리바리 싸가는편이며 용돈을 얼마라도 챙겨드리고 온다. 물론 새아빠는 갑부는 아니시만 자식들에게 뭔가를 줄수 있는 경제력을 충분히 갖추고 계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드리는 몇십만원의 용돈이 우수울수 있지만 그저 우리의 마음이 그랬다. 그런데 엄마는 그게 아니시다. 이번에도 엄마는 아빠 몰래 그동안 모으신 돈, 한마디로 감춰둔 돈인지 생활비 한푼 두푼 아끼시돈인지 몇개월을 모으셨는지도 모를 돈 60만원을 내 손에 쥐어 주신다. 가져가서 우리집 빚 얼마라도 갚으라고......... 화가 났다. 너무너무 속상하고 화가 났다. 그 돈을 아빠 모르게 모으시면서 내 친정엄마가 얼마나 아빠에게 거짓말을 하시고, 눈치를 봤을거라는 생각을 하니 분통이 터지고 나의 대한 한심함에 화가 났다. 울 엄마의 좋치 못한 성격부분만 내가 가장 많이 닮아 있다. 엄마의 부지런함은 전혀 닮지 않았으면서 엄마의 순간의 화를 참지 못하는 면이나, 잔소리도 많이 하는 그런 성격은 고스란히 내가 닮아 있는듯 하다. 엄마의 재산이 얼마이고, 아빠가 엄마 명의로 논을 다섯마지기를 주셨다는 애기도 이번에 들었다. 그깟 다섯마지기 하면서 엄마 늘 나와 그리고 막내 동생이 마음에 걸려서 지금도 밤에 잠을 못이루신다고 하신다. 혼자가 된 막내동생은 엄마에겐 늘 가슴한켠의 깊은 상처이고, 성격상 시댁에 늘 주눅들어서 어려운 형편에 이것저것 다 챙기고 살려고 애쓰다 빚을 지고 돈잘버는 남편 못만나서 고생만 하고 살고 있는 큰딸인 나때문에 엄마는 한숨을 쉬신다. 절약해라, 빚부터 갚아라, 하시고 경조사에 모른척 해라를 강조하시면서도 본인도 그렇게 못하시고 살았고 나또한 그렇게는 못살거라는걸 알기에 엄마는 날 보면 감춰둔 돈을 찔러 주시르랴 바쁘다. 지난번 쌀값으로 내가 부쳐드린 돈 10만원과 이혼녀 딱지 달고 산지 9년 넘은 막내딸이 쌀값으로 부쳐준돈 10만원에 밤새 눈물을 흘리셧다는 친정엄마는 그렇게 안받겠다고 성질을 부리는 내손에 60만원을 들려 주셨다. 오늘 그 돈을 막내가 갖고 있는 엄마명의 적금통장으로 부쳤다. 매번 그렇게도 엄마만 생각하고 사시라고, 지금도 충분히 아빠가 우리에게 잘하시는거니 엄마만 위하고 사시라고, 아빠 재산 아빠집 큰오빠에게 다 물려준다는 말에 화내지 마시고 아빠들 자식들에게 몇천만원씩 빌려주는일에도 억울해하시지 말고 설사 우리들에게 돈을 해주신다고 해도 아무도 아빠가 주시는 돈 받을 사람 아무도 없다고.... 그리고 엄마 자식 아빠 자식 엄마 스스로가 먼저 편가르지 마시라고... 우리 세딸들 다 잘살고 있으니 엄마만 생각하고 살라고, 엄마만큼 자식을 위해 평생을 희생한 엄마 이 세상에 없다고, 우리들을 위해 충분히 최선을 다하셨다고 아빠만한분도 없다고, 누누히 애길 한다. 아빠 자식들도 내려오면 바리바리 싸주고 정많은 우리 엄마는 그 오빠들 언니들 동생들도 무지 좋아하며 안쓰러워 하신다. 그러면서도 꼭 우리 세딸들에게 매번 미안해 하시고 내가 이렇게 잘살지 못하고 막내가 이혼녀가 된게 다 엄마가 재혼을 했기 때문이라고 스스로를 탓하신다. 집에 돌아와서 그런 친정엄마 생각에 펑펑 울었다. 내가 잘살면 엄마가 저러지 않을텐데.... 생각하면서. 내 둘째 동생은 나름대로 그만그만 하게 잘살고 있어서 엄마는 둘째는 잊어버리고 사신다고 했다. 그런데 못사는, 안정이 덜된 큰딸인 나를 생각하면 가슴 아파하시는게 다 내가 잘살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재혼이 그래서 힘든것인가? 자식들이 대부분 성인이 되서 부모님들이 재혼을 하셨기 때문인지 더 어려운것도 있나보다. 나도 마음속으로 단 한번도 새아빠를 친아빠처럼 의지한적도 없으며, 아빠네 자식들을 내 오빠 언니로 생각한적 없으며, 큰오빠의 아내가 내 친정엄마를 대함에 지켜보는일에서도 늘 한발자국 물러서 있었다. 그게 우리 세딸들의 분수에 맞는 행동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친정에 있는 모든 경조사를 챙기는것도 엄마의 자리를 그만큼 세워주고 싶어서였을것이다. 한해도 거르지 않고 한번도 거르지 않고 매번 가족들의 모임후에 여섯살이나 어린 올케언니에게 안부와 감사의 전화를 하는것도 우리 엄마를 무시하지 말아달라는 부탁에서 나온 행동일것이다. 나도 누군가에게 애기 할때 내 동생들은 내 동생이라고 말하지만, 아빠네 자식들을 말할때는 아빠쪽 자식들이라고 말을 한다. 재혼을 해서 한 가정으로 온전하게 서기까지는 결코 쉽지가 않는일인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