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증받은 부부각서 갖고 계시나요?
2001년 7월 26일 내가 문안을 작성을 하고 남편이 사인을 해서 공증을 받은 각서 사진이다.
집에 있던 누르스름한 연습장 2장을 부욱 찢어서 격한 마음으로 내가 직접 적어 내려간 각서의 내용들이다.
무수한 각서들을 남발하면서 살아온 결혼생활이었지만, 위에 올린 각서는 내게 있어서 가장 큰 상처이면서도
남편과의 새로운 시작을 하기 위한 희망을 기대하면서 작성한 각서이기도 하다.
3살도 되지 않는 작은 아이를 등에 들쳐 업고, 5살도 안된 보미의 손을 잡고 남편을 앞장 세우고 서울 공릉동에
위치한 북부법원 앞에 즐비해 있는 무수히 많은 공증 사무실에 한곳에 들어가서 공증까지 받은 각서는 이것 한장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이혼을 준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던 시기였으며, 심한 불안감에 휩싸이며 미래가 보이지 않는
우리 부부 결혼생활에 회의를 느끼며 눈물로 지새우던 그런 시기이기도 했던 결혼 4년차 주부였던 나였다.
나의 선택을 후회하며 훗날 있을지 모를 이혼을 위해 나에게 법적으로 유리하게 하기 위해 나름대로 준비한다는 마음으로
그 더운 여름날 술도 덜 깬 남편을 앞장 세워서 법원앞 공증 사무실을, 소심하며 남의 눈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살던
성격을 지난 나를 그 공증사무실 문을 들어설수 있게 하는 용기를 갖게 하던 그런 시기이기도 했다.
각서의 내용도 지금 와서 읽어보니 정말로 이혼을 준비했었는지, 난 아내로서 늘 최선을 다했으며,
엄마로서 며느리로서 최선을 다한 아내였다는걸 누누히 강조한 문구들 뿐이며,
뒷장 마지막에는 일곱번째 여덟번째 문구를 보니 웃음이 났다.
"일곱번째 위의 각서 내용은 본인(남편)과 아내가 함께 사전 논의한 후에 작성된 내용이며, 어떤 강요성도 없이 동의한
내용임을 증명, 인정하고, 본인의 일시적인 반성이 아닌 극히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생각으로 작성했음을 인정한다."
"여덟번째 본인(남편)이 위의 내용을 인정하지 않거나 약속을 이행하지 않거나 못할 경우엔 아내의 요구가 있을시,
합의이혼에 응하고 전세자금 전부와 연재 우리가 안고 있는 모든 부채 3,500만원을 본인 떠안을것과 아내에게 위자료
3,000만원을 지급할 것을 약속합니다."
위자료 3,000만원이라는 돈의 액수를 생각하니 지금으로선 웃음만 난다.
그 3,000만원 받아서 난 뭘 하면서 살려고 그런 구체적인 적은 액수의 금액을 제시했는지 모르겠다.
그 당시엔 지금과 같은 지극히 평범한 평화스러운 날은 없을것 같은 다급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끝날것 같지 않는 남편과의 전쟁같은 나날을 보내면서 세상의 모든 불우한 아내의 표본이 나 자신이라고 생각했으며,
드라마속에서 불우한 결혼생활을 하는 여자들의 모습에 깊이 공감하며 서럽게 울고 또 울면서 지냈다.
그런 기나긴 터널 같은 시간들을 견디면서 나름 열심히 살으니 지금의 내가 지금 여기에 존재해 있음을 본다.
내가 지극히 평범한 결혼생활을 했다면, 다른 사람들 아픔에 깊이 공감하지 못했을것이며, 지금의 시간들이 내게 주는
소중한 작은 행복감도 만끽하지 못하는 우울한 사람이 되어 있을것 같다.
현재의 생활이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면 그 공증 받은 각서를 볼때마다 눈물을 짓고 우울해하기도 할 것이다.
아주 많이 달라진것은 아니지만 남편의 노력과 나의 노력, 그리고 나의 직장생활을 시작으로 서로를 조금 거리를 두고
바라볼수 있게 되었으며, 결혼이라는 생활을 함께 해오면서 조금씩 서로에게 이해하며 적응을 할수 있었던것 같다.
나에게 나름대로 그 아픈 시간이 없었다면 지금 내가 갖고 있는 많은 세상의 대한 생각을 달리 갖고 있을것이다.
다른 사람, 이혼의 위기를 겪어본 사람들의 심정을 아마도 전혀 이해 하지 못하는 아줌마가 되어 있을런지도 모른다.
드라마를 보면서 지금처럼 쉽게 감정이입이 안되는 아줌마가 되어 있을것이고, 드라마를 쓰는 작가들의 사람의 심리적인
면을 몇줄의 대사로 표현하는것에 대해서 지금처럼 존경심까지는 갖지 않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두아이들의 모습도 지금과도 다른 모습으로 있을런지도 모른다.
남편의 대한 이해하는 마음도 지금 같지 않을것이며, 세상의 많은것들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갖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나는 남편의 말처럼 여전히 푼수 같은 말을 하기도 하고, 혼자서 드라마 같은 상상을 하면서 약간의 몽상가 같은
기질을 갖고 살고 있는 아줌마이지만 분명한것은 웬지 나란 사람이 조금은 괜찮은 사람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예전 내가 겪었던 시간들로 얻어진 사소한 지혜들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나의 습관적으로 기록해놓은
모든것들을 아끼는 사람이 되었다.
분명히 예전 같진 않치만 여전히 아주아주 가끔씩은 남편이라는 남자 때문에 가슴이 떨리기도 하는 설레임을 느낄수
있는 나의 이상적인 가치관을 나름대로 높이 평가하기도 하면서 그렇게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