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벌이를 하면서 내가 얻은것들 몇가지
<맞벌이를 시작하고 처음 가족여행이란것도 가볼수 있었다>
한번 잠이 드려면 최소한 1시간 이상을 뒤척거려야지만 잠들수 있었다.
시댁이라는곳에 가서 낮잠을 자본 경험이 전혀 없었던 며느리였다.
술자리가 있어 새벽에 들어오는 남편이 들어오는걸 보고 나서야 잠을 이룰수 있었다.
집이 아닌 익숙치 않는 다른 공간에서는 꾸벅 조는 일 따위는 내 사전엔 있을수 없었다.
시댁 경조사나 명절이 다가오기 한달전부터 밤잠을 설쳐야 했었다.
그런 내가 3교대 직장을 다니면서 이런 습관들이, 다 사라져 버렸다.
퇴근해서 씻고 누우면 10분도 되기전에 잠이 들기 시작했다.
시댁 가서도 거실에서 TV를 보다가 잠이 든 경우가 일상화가 되어 버렸다.
남편이 술자리가 있든 말든 기다리지 않고 무조건 잠부터 자기 시작했다.
집이 아닌 그 어떤 곳에도 머리 기댈수 있는 공간에선 꾸벅꾸벅 졸게 되었다.
시댁 행사든 경조사든 신경을 쓸일이 생겨도 잠을 설치는 일은 없게 되었다.
이웃집 언니집에 놀러갔다가 깜박 조는 경우도 생기기 시작했다.
3교대 직장으로 나의 예민한 잠의 대한 습관은 180도 변하게 되었다.
<2008년 가족여행갔던 안면도 바닷가에서>
톨게이트 근무 2년 8개월을 하면서 3번 넘게 우수사원으로 표창장을 받고,
라디오에 톨게이트 사연을 보내면서, 고객들이 오남리에 사는 키다리 아줌마를 찾고,
영업소로 전화를 해서 키다리 아줌마인 딸딸이 엄마를 찾는 전화를 하는 몇몇의 고객도 있었고,
라디오 프로에 5번 이상 간식 신청을 해서 직원들과 함께 나눠 먹으며,
나름대로 직장생활에 잘 적응을 해가면서, 예민하고 까칠하다는 말을 듣고 살던,
나는 직장생활에 아주 자알 적응을 해가면서 일할수 있는 기쁨을 알아가기 시작했었다.
그런 마누라의 모습을 보면서 남편도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으며,
제사나 명절이 되면 두딸들과 함께 남편이 전을 부치는걸 적극적으로 도와주었으며,
식혜를 만들기 위해 밥을 앉히고, 마누라가 일요일에 출근을 하면
8, 9시간 뒤에 전기 콘서트를 빼서 설탕 넣고 끓이는것까지도 하게 되었다.
일요일엔 밤근무를 마치고 퇴근한 마누라를 재우고 자신이 집안청소를 하고,
애들을 먹이고, 서너시간 자고 일어나서 다시 출근하는 마누라 밥상까지
준비를 해주는 자상한 남편의 모습으로 서서히 변화되어 갔었다.
그런 남편의 변화를 보고, 나는 40만원짜리 비싼 보약을 지어 먹으면서
만성 위염을 가라앉혀가며 더 오래 다녀보려는 부단한 노력을 했었다.
남편은 직접 말하지 않았지만 나란 마누라가 머지 않아 1,2년만 더 다니면
주임으로 승진도 할수 있을거라는 기대를 했으며, 직장인으로서 나를 높이 평가해주었다.
두 차례의 우수사원 수상과 공모전에서의 대상 입상은, 남편으로 하여금 그런 기대를 하게 했으며
나의 직장생활로 인해 남편의 늦은 귀가에 집착을 덜 하게 되고, 대화를 하면서도 분명히 예전과
달라져 가고 있는 마누라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남편은 나에게 미안해하면서도 흡족해 했었다.
추운 겨울엔, 몸의 절반이 찬바람에 노출이 되고, 반쪽은 부스안쪽에서 빵빵하게 틀어져 있는
히터의 열기로 주름살이 늘어가고, 건조함에 피부가 빠스락 거렸지만, 그래도 마누라의
이런저런 변화가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서 내가 직장을 더 다니길 바랬을것이다.
내가 3교대의 근무가 너무 힘들어서 그만 두고 싶다는 애기를 꺼냈을때,
남편은 그래서 나에게 보약을 서너재 더 지어 먹고, 다녀보라는 말을 농담처럼 했을것이다.
그래서 서너달을 더 버텨봤지만, 밤근무를 마치고 돌아올때마다 병원 응급실에
들러서 링겔을 맞고 돌아오는 일이 반복되고 작은아이가 내가 새벽 출근을 하던 어느날에
아침부터 토하고 열나고, 그로 인해 큰아이가 약먹이고 약국가서 새로 약을 지어 먹이고
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이미 지쳐 있던 나는 더 이상은 버티지 못하고 2년 8개월동안의
3교대 직장맘 생활을 접게 되었던것이다.
결혼9년차에 시작한 나의 2년 8개월동안의 직장생활로 우리집 빚3천만원 넘게 상환했고,
우리집 리모델링을 할수 있었으며, 우리 가족여행도 가볼수 있었으며, 나처럼 겁많은
아낙이 운전면허증을 획득할수 있게 되었으며, 남편을 편안하게 바라볼수 있는 시선을
갖게 되었으며, 우리집 컴퓨터 본체도 바꿀수 있었고, 보일러와 디카를 새로 교환 할수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와 같은 아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사연을 가진 동료들의 그녀들을
많이 알게 되었고, 집에만 있을때 나 자신이 너무 하찮은 존재처럼 느껴진것과는 다르게
나도 얼마든지 노력 여부에 따라 사회에서도 인정 받을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할수
있었으며, 하루 8시간 근무하면서 날마다 천명, 2천명의 새로운 사람들을 접하면서
많은 경험들을 하면서 참으로 많은것들을 배울수 있는 시간을 가질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