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와 세상

내 진짜의 모습은 뭘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긁적거려 본다

주부모델 2010. 12. 19. 06:00

 

 

 

결혼 전의 나란 처자는 매년 연말이 되면 30 여명이 넘는 친구들에게 카드를 보내면서

편지 마냥 빈 여백을 빼곡히 채워서 부치는 것을 거르지 않았다.

가까이 살던 이모님과, 오산에 살고 계시는 고모님을 비롯해서 그 고모의 네 명이나 되는

오빠들에게도 따로 카드나 연하장을 보냈고, 시골에 계신 친인척 분들에게도 작은아버지에게도

내 수첩에 주소가 기록 되어 있는 30여 분이 넘는 친척분들에게 각각의 다른 내용의 장문의 편지를 적어서

동봉해서 카드를 발송 하는 일을 해를 거르지 않고 꾸준하게 하던 그런 처녀였다.

 

 

그 만큼 편지를 쓰는 것은 나에게는 아주 아주  오래 된 하나의 습관이었다.

연말이면 내 주변의 아는 사람들에게 카드를 보내는 것은 나에게 하나의 습관이었으며 즐거운 행사이기도 했었다.

학창시절에도  틀에 박힌  지나친 모범생(학업성적은 빼고)이었던 나는

남모르게 타지역의 남학생들과 펜팔이라는 것을 하면서 뒤로 내숭을 떨던 그런 여학생이었다.

그 펜팔로 인해 그나마 글 쓰는 것을 멈추지 않을 수 있었으며, 그로 인해 드문드문 나는 글짓기 상도 받을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만남에는 지나치게 폐쇄적이고, 정해진 공간에서만 움직이려는 성격도 그 때 형성이 된 듯 싶다.

 

 

 

 

 

결혼을 해서는 내가 알아야 할 집안의 제사들과, 시집의 가족들의 생일들을 알려달라고 수첩을 들던 며느리로 변했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와서부터 시작된 아버님의 병문안과 시댁 안부전화 하는 것에도 달력에 표시를 하며

나의 모든 생활들을 기록하며, 큰 며느리임에도 시부모님과 함께 살지 않는 혜택(?)을 받았다는 것에 감사하며,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면에서 완벽한 며느리가 되려고 애를 쓰면서, 착한 며느리가 되려고 무진장 애를 쓰면서 살았다.

먼저 결혼해서 살던 며느리들이  이런 나를 보면서, 이르기를, 시댁이라는 곳은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알아주지 않는 곳이니

허리  휘청거려가면서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나중에는 니가 한게 뭬 있냐 소리 들으면서 며느리인 니만  피눈물을 흘리게 될 거라고 ~ 했었다.

 

 

결혼 14년차에 접어든 주부인 나는 예전  습관들이 사라지고 기록 하는 것에도 점점 게을러지고 있음을 느낀다.

친구에게 편지를 부치는 행사를 안하게 된 것은 결혼 3년자 부터였고,

친척분들에게 연하장이나 카드를 보내는 것을 멈춘 것은 그보다 더 빠른 결혼2년차 부터 였다.

6년전즘엔가 시어머님에게 10장이 넘는 장문의 편지를 등기로 부치고 나서도 어머님과의 관계가 나아지지 않는 경험을 하고 나서는

나의 친필로 편지를 쓰는 행동은 움츠려 들기 시작 했으며, 나의 필력을 의심하고 더 이상 펜을 직접

들어서 편지라는 것을 작성하는 것에 즐거움을 전혀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여기 온라인상의 글에서는 나는 무척이나 야무지고 알뜰한 주부의 모습으로 비쳐지나보다.

현실에서의 나는 적당히 게으르고, 물도 안 아끼고, 전기나 가스 요금도 안 아낀다고 매번

엄마에게 잔소리를 무진장 듣고 사는한심한 딸로 존재하는데,  어디선가 내 글에서 과장이 들어 간건지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에 알뜰한 주부의 표본처럼 인식되어지는 것이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지금도 나는 바른 생활을 하는 사람이기는 하나, 알뜰살뜰하고 음식 잘하는 주부는 결단코 되지

못함에 많은 열등감도 가지고 있으며, 특히나 두 아이의 교육에 있어서는 다른 분들에게 많이 아주 많이 배우고 있는 부족한 엄마이다.

 

어젯밤에도 가계부 적는 것을 건너 뛰었다.

바른 생활 아줌마인척 하면서 나는 어제, 횡단보도를 건널 때, 신호등이 없는 줄 알고 무단 횡단을 했었다.

그러곤 혼자서 화들짝 놀래면서 혼자서 얼굴이 시뻘개져서 챙피해 했다. 혼자서~~

음식 쓰레기를 버리고 오면서 양파 껍질을 바닥에 흘리고 왔는데, 너무 추워서 안 줍고 그냥 들어왔다.

동생집에 가서 저녁을 준비하고 먹고 나서 집으로 돌아올 때, 너무너무 추워서 2,300원을 주고 택시를 타고 집에 왔다.

그렇게 나는 아주 알뜰하고 검소한 주부도 아니다.

 

 

 

 

 

스스로가 나는 늘 나는 모범적인 시민으로 살아야 하고, 모범적인 엄마로 살아야 하고

착한 며느리로 살아야 하며, 좋은 아내, 현명한 아내, 그리고 좋은 사람으로 존재해야 한다고

나 자신을 늘 채찍질을 하는 것 같다.

실제의 내 모습은 정반대의 모습일런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단점이 많다는 것을 알고는 있으면서도 그걸 고치려는 노력은 한다고 하면서도

지적 해주는 점들을 고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가도 참 많다.

 

 

변화를 해보려는 노력을 하면서도, 정작 나는 나의 예민한 부분중에서 고치고 싶지 않는 부분들을 발견한다.

남들은 그런 나의 답답함을 고치라고 진심으로 충고를 하지만 그 말을 머리로는 받아들이는데

마음에서는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런 그 답답한 모습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는 건데....

라는 마음이 들어서 쉽게 고치지를 못하는 나를 종종 발견하기도 한다.

현실에서는 초라하고, 좀 모자란 구석도 많은데 여기 블로그 안에서는 내 자신이 그럭 저럭

괜찮은 사람인 듯 싶은 마음이 들기 때문에 블로그를 계속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