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현모양처와 악처가 공존하고 있다.
남편을 대하는 나의 행동이 안과 밖에서 너무 다름을 느끼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매일 매일, 혹은 이틀에 한번씩 집에서 양파 대여섯개씩 즙을 내서 남편을 챙기고 있다.
늦은밤에 남편의 밥상을 차릴 때, 남편의 체질에 맞는 식단을 차리려는 노력을 한다.
아침에 기지개를 펴는 남편의 뒷목을 습관적으로 주물러 주면서 누적된 피로감을 줄여주려 애를 쓴다.
시어머님과 시누들에게 일이 생기면 늘 남편보다 먼저 나서서 챙기게 된다.
시어머님의 안부전화나 시댁방문이 남편 입에서 나오기전에 먼저 나서서 챙기는 아내이다.
친정 엄마에게는 김서방이라도 되니, 니 같은 여자랑 살아주는거다.. 라는 말을 듣게 해주는 연극을 잘도 한다.
남편의 일 관련된 애기를 들을 때도, 무조건 남편이 옳고 당신은 참 괜찮은 사람이라는 힘을 주는 말도 잘 해준다.
아빠의 대한 불만을 애기하는 딸들에겐 아빠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도 수시로 인지시켜주는 엄마가 된다.
남편의 지인들과 동석하는 자리에서도 우리집 세모녀가 얼마나 남편을 좋아하고, 인정하는지를 표현해주기도 한다.
편지와 선물을 남편 회사로 보내서, 보여주는 애정표현(?)도 해서 동료들의 부러움을 받게도 해줬다.
시댁에서나 친정 부모님 앞에서는 조신한 아내인양 급얌전을 떠는 것에 비해,
남편과 단 둘이 있을 때의 나의 남편의 대하는 태도는 너무나도 불량하다.
특히 술취해 들어온 남편이랑 맞닥트릴 때 더욱 그러하다.
술 한잔을 하고 온 남편이 장난을 칠때면, 장난을 전혀 받아주지 않는 아내이다.
술 취한 남편의 농담을 절대로 농담으로 받아주지도 않는다.
모든 것을 너무나도 진지하게만 받아들이는 나의 성격으로 인해 남편을 즐겁게는 해주지 못한 아내이다.
안주냄새와 술냄새가 짬뽕으로 섞인 악취를 풍기면서 거친 숨을 내쉬며, 내 몸을 더듬기라도 하면
발길질은 기본이고, 남편을 다 잡아 뜯을 기세로 쌈닭으로 변하는 아내이기도 한다.
술에 취해서 옹알이를 하듯히 주절대는 남편의 주정하는 모습에, 뭔가 확~ 치밀어 오르는 분노심마저 느낀다.
코를 골며 푸푸 거리며 한마리의 거친 들짐승처럼 잠자는 남편의 코를 잡아 비틀어서 바닥으로 밀쳐내기도 한다.
그러데도 스멀스멀 내 옆으로 가까이 오는 남편의 몸뚱아리를 발로 밀쳐내는 경우도 허다하게 많았다.
술냄새 지독하게 풍기는 남편의 모습을 볼 때면, 그 남자가 내 남자가 아니었으면 한다.
그런 때의 내 모습은 영락 없는 폭군이자 쌈닭 같은 아내의 모습이며 악처, 바로 그것이다.
부드러운 말투, 얌전한 행동이 남편 앞에서는 잘 안된다.
과격해지고, 조금이라도 나를 귀찮게 할라치면 어찌나 모질게 남편을 내치는지 모른다.
가끔씩은 내가 생각해도 술에 취했다 해도, 남편이 너무 무안하겠다 싶은 경우가 많다.
나는 그런 아내가 절대로적으로 아니었는데.... 왜 시간의 흐름은 이런 부작용을 낳게 했는지...
"이리와 봐~ 서방님~ " 하면서 팔을 뻗어 거만하게 남편을 보고 팔을 뻗으면 다람쥐 마냥 쪼르르 달려오는 남편을 볼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내 자신이 너무 터프하다 못해 과격한 아줌마 처럼 느껴져서 웬지 남자와 여자의 행동이 뒤바뀐 느낌을 받는 경우가 있다.
집에서 내가 남편에게 이렇게 터프하고 무식하고 과격하게 대한다는 것을 그 누가 알겠는가?
내가 술취한 남편에게 그런 과격한 행동을 한다고 말을 해도,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
남편을 어린 아들 대하는, 과격한 엄마처럼 변하는 것 같은 내 모습이 싫을 때가 많다.
그러면서도 남편을 위해 아내의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
아침마다 양파즙을 내려서 대령하는 행동이나 해장국을 끓여주는 행동은 어째, 좀 위선적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참으로 많다.
내 안에는 조신하고 얌전한 현모양처와, 과격하고 쌈닭 같은 악처가 늘 함께 공존하고 있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