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부이야기

내가 생각하는 아버지, 남편이 생각하는 아버지

주부모델 2011. 10. 26. 06:00

 

 

 

 

 

내가 기억하는 나의 아버지는  방안에서만 주로 생활하셨으며,

가난한 우리집에서 유일하게 매끼니때마다 흰쌀밥을 드실 수 있는 어른이셨으며,

날씨가 추워지면 쿨럭거리는 기침을 쉬임 없이 하시는 분이었다.

내게 환하게 웃는 얼굴을 보여준 기억은 내게 존재하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내가 너무 어렸을 때 돌아가셨기 때문일런지도 모르겠다.

아버지의 손을 잡아본 적도 없었던 것 같고,

아버지와 엄마가 한 방에서 주무셨던 기억도 없다.

몸이 약하셨던 아버지는 할머니와 나와 함께 늘 큰 방에서 주무셨었다.

아버지가 아내인 엄마와 한 방에서 자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할 수 없는 8살난 어린 딸이었다.

으례히 다른 집도 엄마 아빠가 같은 방에서 잠은 안 잘거라고만 생각했었다.

아버지는 할머니의 아들이니까 한 방에서 자고, 나는 큰 딸이고, 큰 손녀라서 할머니랑 함께 자는가 보다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내 아버지와 엄마가 합방을 해서 나와 동생들이 이 세상에 나온게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하다.

아버지의 대한 기억은, 아버지의 아내였던 엄마와 나란히 서 계시는 그림은 전혀 떠오르지 않고,

할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나, 이렇게 세 명이 함께 하던 그림만 떠오를뿐이다.

동생들과 함께 했던 아버지의 모습이라던가, 웃으시거나 땀을 뻘뻘 흘리시며 일을 하시거나,

술을 드신다거나, 담배를 피던 아버지의 모습도 전혀 없으셨던,  언뜻 언뜻 수첩에다가 뭔가를 적으셨던

아버지의 모습과, 추운 겨울 날, 아주 가끔씩 너른 마당에 나오셔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가래침을 뱉으시던

쓸쓸하고 그리고 힘 없는 모습의 병약한 아버지의 모습만 떠오를뿐이다.

그리고 아버지와 함께 한 기억 중에는 늘 아버지에게 꾸중을 듣거나(ㄱ,ㄴ을 비뚤게 쓴다고) 혼난 기억이 대부분이다.

큰 딸인 내가 국민학교에 입학 한다고 새책가방을 사들고 온 엄마를 보고 버럭 소리를 지르시며

무슨 아이에게 이런 비싼 가방이 필요하냐면서 책가방을 마당에 집어던지던 아버지의 모습이

내 기억속에서 절대로 잊혀지지 않는 선명한 사진처럼 남아 있다.

 

 

 

 

 

 

남편이 기억하는 아버지(내겐 시아버지가 되시는 분)의 모습은 전혀 달랐다.

쉬는 날이면 남편과 시누들을 데리고 먹을 것들을 잔뜩 싸들고 놀러도 자주 다녔고,

집에서 함께 밥을 먹을 때도, 어렸을 때는 딸들인 시누들을 늘 무릎에 앉히고

입안에 반찬들을 넣어주시던 자상하고 늘 잘 웃고 유쾌했던 아버지였다고 기억한다고 했다.

술을 좋아하셨고 술에 취해서 들어오시는 날이면 늘 양손에 남편과 시누들이 좋아하는 과일이나

과자봉지가 들려 있었고, 지갑에서 용돈도 푸짐하게 꺼내주시던 아버지였다고 한다.

늘 노래를 흥얼거리셨고 지금 생각해도 자신의 아버지는 참 잘 생긴 미남이셨으며

(내가 봐도 시아버님은 신성일 못지 않는 미남이셨다)늘 잘 웃으셨던분이었다고 한다.

다만 남편이 조금씩 성장하면서 아버지가 좋아하는 술때문에 어머니랑 종종 다투는 횟수가

많아지는 모습을 보면서 남편은 사춘기에 접어들면서부터는 자긴 나중에 어른이 되도

절대로 술을 배우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의 다짐을 했다고 한다.

자기 평생에 아버지에게 손찌검을 당한 기억은 딱 한번, 있는데 그건 자신이 중학생 때,

그 날도 아버지와 어머니가 다투는 소리에 자다가 깬 남편이, 비몽사몽간에 마루로 나와서

"에이~~ 쒸~ 지긋지긋하니까 제발 그만 좀 싸우시라구요~"

라고 소리를 질렀다가 아버지에게 정신이  번쩍 날 정도로 귀싸대기를 한 대 맞았다고 한다.

그게 자신의 평생동안 아버지에게 당한 단 한 번의 매질이었다고 한다.

남편에게 아버지와 함께 추억을 기억하라고 하면 용돈 받아쓰거나,

가족끼리 어딘가로 먹을 것을 잔뜩 싸들고 놀러간 기억과 늘 잘 웃고 유쾌한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지만, 단 한 번도 아버지와 앉아서 대화를 한다거나, 둘만의 시간을 가져 본 적은 없었다고 한다.

 

 

 

 

내가 남편과 결혼을 결심했을 때, 나보다 더 오래 살 것 같고, 건강해 보여서 남편을 선택했을 것이다.

성격도 나처럼 뽀족하지 않고 둥글어 보이는 모습에서 편안함을 느꼈으며,

보여지는 외모 또한 삐쩍 말라서 예민해 보이는 나와는 다르기에 성격 또한 둥글 것이라고 확신을 했었다.

사람이 술에 취하면 얼마든지 그 모습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전혀 알지 못했다.

자라온 내 환경에서 술 취해서 비틀거리거나 주정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는

소설속에서나 읽을 수 있고, 동네에서 주정뱅이로 소문난 거렁뱅이 같은 아저씨들의 모습이 전부였기 때문이었다.

엄마나 할머니 그리고 나나 동생들이 술에 취한다거나, 주변 친척 어르신분들의 술 취한 모습을

실제로 본 기억은 없었기 때문에, 나는 술 취한 남자의 모습이 어떨거라는 것을 대략 짐작만 했던 것 같다.

은행에 근무하던 동생이, 회식에서 소주 몇 잔을 마시고 들어와서 술냄새를 풍기는 것조차

경멸하고, 그 동생 입에서 풍기는 술냄새가 타락의 냄새처럼 느끼던 내가, 술 회사의 영업을 시작하는

남자와 결혼을 해서 지금까지 15년 가깝게 살아오고 있는 것이다.

 

 

 

 

 

내 남편, 종종 술 한잔을 하고 늦게 귀가하는 날에 치킨이나 족발를 손에 들고 오기도 한다.

이른 퇴근(밤10시전)을 하는 날엔, 손에 과자로 가득 채워진 비닐 봉지가 들려져 있기도 하다.

날씨가 선선해지면서  집에 들어서는 남편의 손에는 사과나 귤이 담긴 검정색 봉지가 들려 있기도 하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언제부터인가 우리집 두 딸들은 현관문을 들어서는 남편의 손부터 살피기 시작한 것 같다.

 

 

두 딸들 한결같이 남편의 대해서 물으면 모두 같은 대답을 한다.

아빠는 술만 빼면 완벽하게 좋은 아빠야.....

아빠는 일단 잘 생겼고, 유머 감각도 있고, 잔소리도 안하고, 우리들이 사달라는 것 다 사주니까..

그리고 지금까지 한 번도 우리한테 매를 들거나 꾸중을 한 적이 없잖아....

 

 정말로 그랬던 것 같다.

남편은 지금까지 살면서 단 한번도 아이들에게 매를 들어 본 적도 없으며

윽박을 지른 적도 없었고 잔소리를 한 적도 없었고,

아이들이 사달라는 것은 다 사주라고 말했다. 그걸 중간에서 막은 사람이 나였을뿐이었다.

 

 

 

다만 술에 많이 취했을 때의 아빠의 모습은, 내 두 딸들도 무척이나 싫어한다.

내 아빠가 아닌 것 같다고~~~~~

아빠 입에서 풍기는 술냄새도 싫고, 자는 아이들을 가끔씩 깨워서 귀찮게 하는 것도 싫고,

무엇보다도 술 마신 일 때문에 엄마랑 다투는 일이 무엇보다도 싫다고 한다.

그리고 이제는 술 마시고 들어온 아빠의 모습을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에게 들킬까봐 걱정이

된다는 말까지 한다.

비틀거리는 걸음걸이, 충혈된 눈 그리고 딸들의 대한 애정 표현도 술에 취해서 하는 아빠는 싫다고 한다.

아빠가 힘들게 고생하는 것은 알지만, 담배를 끊은 것 처럼 술은 직업때문이니까 어쩔 수 없이 마시되

쪼금만 마셨으면 좋겠다는 말을 자주 하는 딸들이 되었다.

엄마, 이 시대의 아버지들이 마시는 술잔의 절반은 눈물이래~~ 아빠도 눈물이 날 것 같을 때 술을 마시는 걸까?

라는 질문을 한 적이 있는 14살된 큰 딸의 감수성을 생각해서라도,

이제는 정말로 남편이 우리 두 딸들에게 참 좋은 아빠로 기억되기를 바라면서 술을 좀 자제 해줬으면 한다.

술만 빼면 이미 남편은 나보다 딸들에게는 훨씬 완벽한 아빠로 존재하고 있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