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운전과 망년회

2009. 12. 22. 17:59★ 부부이야기

 

 

 

 연말이면 술자리가 더 많아지는 남편으로 인해 내가 대리운전을 하는 횟수도 많아지고 있는 요즘이다.

운전하는게 이젠 좀 익숙해질때도 됐는데 여전히 초보운전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으며 늘 주차하는

일은 버벅대는 아줌마이며 남편에게 운전에 관해서는 잔소리를 들어야 하는 신세이다.

더럽고 치사하다는 생각이 들어도 예전엔 남편의 운전에 관한 잔소리만은  꾸욱 눌러 참고 들었던 훌륭한 수강생이었다.

그런데 이젠 술에 취해 남편이, 운전대를 잡은 나에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는것을 참기 힘들어한다.

자신의 목숨을 맡긴 주제에 잘난척(?)을 하시는 남편을 잔소리를 더 이상 참아내는 수강생은 사라지고 없다.

수시로 신호위반을 하라고 시키고, 또 어떨때는 신호를 못보고 건네는 일이라도 생기는날엔 죽을라고 환장을 했다고

버럭 소리를 지르고 무지하게 호들갑을 떨면서 평소답지 않게 잔소리를 해댄다. 

유일무일하에 남편이라는 남정네가 내 앞에서  큰소리를 칠수 있는 경우가 내가 운전대를 잡을때다.

지놈은 운전을 얼마나 잘한다고 저 잘난척을 해대시는건지 눈꼴시럽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해서 이젠  운전에 관해

충고를 하면 급브레이크를 잡아 남편의 몸이 요동을 치게 하거나, 방지턱에서도 감속도 안하고 주행하는 마누라가 되어선,

남편의 잘난척 하는 모습에 호되게 반항을 하는 모습을 보이는 수강생으로 변해 버렸다.

운전에 대한 남편의 잔소리는 다 날 위해 해주는 충고라는것도 알고 있으며  본인은 운전를 할때 과격하게 하지만

마누라인 내가 운전이 조금씩 과격해지는것에 심히 걱정을 하는 마음에서 그런 애기들을 해주는거라는것을 알고 있다.

남편의 운전하는 모습을 가장 많이 보고 배운 나인지라 나도 모르게 남편의 운전방식을 따라하는 경향이 있다.

교통법규를 너무나 꼬박꼬박 지키면 지킨다고 구박, 어기면 어긴다고 구박 어느 장단에 춤을 추라는건지~

그냥 내 방식대로 냅둬줬으면 좋겠다.

 

 

남편의 회사 망년회가 있던 토요일에 저녁6시경에 남편은 귀가를 했다.

그런데 축구모임 망년회가 6시반부터 있다면서 이미 취한 상태에서

2차로 축구모임 망년회를 가겠다고 그곳까지 데려다 달라고 했다.

부부 동반이라고 함께 가자고 했지만 그런 모임을 편하게 즐기지 못한

나는 거절을 했고 툴툴거리면서 2차 망년회가 있는 갈비집에 남편을 내려주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날엔 정말로 짜증이 난다.

허나 술취한 남자 앉혀놓고 아무리 떠들어봤자 절대로 고집을 꺾을수 없다는것을 이미 터득한 아내인지라 쉽게 포기하고 조금만 마시라고만 했다.

8시반이 되니까 다시 데리러 와달라고 전화질이다.

재미있게 보고 있던 수상한 삼형제 드라마 맥을 끊게 하는 남편의 전화였음에도 마음을 고쳐 먹고 두 딸들까지 함께 태우고 남편을 데리러 갔다.

두딸들은 야밤의 드라이브만으로도 즐거워 했지만 웬지 그날밤에 남편과 다투게 될것 같은 예감에  사로잡힌 나는 굳은 표정으로 운전을 하고 갔다.

 

 

 

다들 얼큰하게 취해 있는 사람들이 다들 인사를 한다.

표정 관리가 안되는 굳은 표정을 푸르랴 애써 웃어 보였지만 늘 멀쩡한 정신으로

술취한 사람들을 보는 나로서는 그런 술취한 사람들의 모습은 늘  생소하기만하다.

거기서 또 노래방을 간다고 자기만 부부동반 아니었다고 울상을 짓는 남편이

어찌나 한심하게 보이기만 하고 철없이 보이기만 하는지 눈꼬리가 올라갔다.

형수님... 제수씨 라고 부르면서 친근한척 하는 그 사람들과도  안면은 있었으나

그런 분위기에 전혀 적응을 하지 못하는 내 성격 또한 좋은 성격이라고

할수 없으나 그런 분위기에 억지스럽게 맞추고 싶은 마음은 들지가 않다.

그날 처음 본 어떤 아낙이 약간 벌개진 얼굴로 나를 보며 생글거리면서 웃는다.

내 남편을 형이라고 불러도 되겠냐면서 처음 보는 나에게 언니라고 한다.

노래방 같이 가자고 주변 사람들이 잡아 끌었지만 분위기를 망치던지 말든지

애써서 노력해서 만든 웃는 얼굴로 " 원체 제가 그런 자리를 좋아하지도 않고

전혀 어울리지도 못한 사람이라서요. 죄송합니다. " 만  했다.

좀 그런 자리가 싫어도 분위기도 맞춰주고 할 줄 알야 하는데 친하지 않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그런 자리, 이미 취할대로 취한

사람들뿐인 그런 자리에 먼정하니 앉아서 그들의 노는 모습을 구경하는것은 정말로 죽기 보다 싫기 때문에 어쩔수가 없다.

남편의 동료들이라고 했으면 그러지 않았을텐데 운동한다고 만난 사람들의 모임이고 그들하곤 겨우 얼굴 한두번 본게

전부인데다가 그날 처음 본 사람들도 수두룩 했고 다들 많이 취기가 올라 있는 상태였다.

기다려 달라는 남편의 부탁과 아이들이 그냥 차안에 있자고 하는 요청으로 차안에서 네비게이션으로 드라마를 보면서

1시간을 기다렸다가 취할대로 취하신 서방님을 모시고 집으로 돌아왔다.

일때문에 마시는 술, 요 며칠 계속 여기저기 망년회라 이름으로 만들어진 자리에 참석하르랴 하루를 거르지 않고

술을 들이붓고 있는 남편님은 그 취한 정신에도 냉장고를 뒤져서 양파즙 2봉지를 뜯어서 마시곤 대자로 뻗어버렸다.

두 딸들이 비닐장갑을 끼고 보미는 아빠의 양말을 벗기고 혜미는 수건에 뜨거운 물을 적시고 나에게 건네준다.

아빠의 얼굴과 손을 닦아주라는 신호이다. 맘같아선 확 한대 쥐어박고 싶은 남편이지만 신종 플루 걸린다고

꼭 아빠 손이랑 얼굴이랑 발은 씻어줘야 한단다. 세수대야에 물까지 떠온다.

그런것에 길들여지면 절대로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신혼때 잠깐 말곤  술에 취해 뻗은 남편을 씻어주는 일따위는

그만 두었는데 두 딸들로 인해 할수 없이 손과 얼굴을 닦아주고 대야에 남편 발 담궈서 대충 씻겼다.

그리고 주방에 대(大)자로 뻗어 있는 남편님을  이불을 펴서 그 위로  세여자가 낑낑대며

잡아 끌어서 드러 눕히고 작은아이는 아빠를 덮어줄 이불 한채도 가져와서 얌전하게 덮어준다.

그냥 냅두라고 하면 두딸들이 그러면 안된다고, 입이 돌아간다고 이불 꼭 깔아주고 덮어줘야 한다고....

너무 착한 딸들인것, 그 한마리의 고릴라처럼 뻗어서 주무시고 계시는 내 서방님도 알고는 계실거다.

한번도 그렇게 술에 취해 자는 사람을 남편 말곤 본적이 없는 나 인지라, 나또한 그렇게 술에 취해 씻지도 않고

자본 경험이 없는 사람인지라 그런 남편의 모습을 보는것엔 1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적응이 안된다.

지난달엔 두어번 내가 술취한 남편의 모습을 디카로 동영상으로 찍어서 남편에게 보여준적도 있었다.

부끄럽다는 말을 하고, 그런 쓰잘데기 없는것을 뭣하러 찍었냐고 난리를 치는 남편이었지만 여전히 이렇게 가끔씩

제대로 걷지도 못할정도로 취해서 들어오는것을 끊지를 못하고 계신다.

남편이 4년 가깝게 담배를 끊은것처럼 술도 좀 끊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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