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3. 22. 06:30ㆍ★ 부부이야기
2006년 6월, 내가 맞벌이를 시작해야겠다는 결심을 한 가장 큰 이유는,
시간이 갈수록 늘어만 가는 카드빚들과 대출금들이 더 이상은 감당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보다 더 큰 이유는 남편의 대한 심한 집착에 나 스스로가 겁이 났기 때문이었다.
하루 종일 남편 퇴근 시간만 기다리고, 술로 인한 여러가지 문제들로 다투는 날에는
하루 진종일 그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물한모금도 마시지 못한채, 하루 24시간동안을
미래가 불안하기만 하는 남편과 늘어가는 우리가 안고 있는 빚만 생각 했었다.
그런 우와중에서 나에게 며느리 역할을 바라시는 시어머님으로 인해
하루하루 사는게 지옥처럼 느껴졌고, 피가 마르고 체중은 점점 줄어 들고, 위염증상도 심해졌다.
그로 인해 내 몰골은 점점 더 해골같은 형상으로 변해 갔으며, 몸도 맘도 모두 쇠약해져만 갔다.
서서히 말라가면서 시들어져가는 내 모습에 나 자신이 제일 많이 지쳐갔으며,
영혼마저 서서히 죽어가면서 표나지 않게 조금씩 미쳐가고 있는듯한 내 모습이 너무 무서웠다.
그런 내 모습을 지켜보던 이웃 친한 두명의 언니들도 그런 나를 안타까워 했고,
직장 생활 할것을 조심스럽게 권했으며, 그러면서 쉬임없이 해오던 부업일을 그만두고
적극적으로 취업을 위한 마음의 준비를 하기 시작했었다.
그런 힘겨운 생활에서 가장 벗어나고 싶은 사람은 다름 아닌 바로 나 자신이었다.
그렇게 그런 지옥 같은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은 강한 욕망이 절정에 달했을때
선택한 일이 바로 생소한 3교대 톨게이트 수납사원이라는 직업이었다.
그게 2006년 6월, 결혼9년차에 접어들고 있을때였으며 내가 가장 지쳐있을때였다.
그당시 우리가 살고 있던 22평 아파트 가격은 시세가 7천만원이었고,
우리가 안고 있는 부채가 8천만원 가깝게 이르렀을때였으며, 살던 집은
팔기 위해 부동산에 내놓은 상태였으며, 내 체중은 46키로를 밑돌고 있을때였다.
그리고 내 나이 서른 일곱이었고 보미가 9살, 혜미가 유치원생인 7살때였다.
나의 직장생활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준 이웃의 두 언니가 없었다면,
운전 면허증도 없는 나를 3개월동안이나 출퇴근을 도와주는 남편이 없었다면,
감히 고속도로 톨게이트 수납사원 3교대 일을 절대로 시작할수조차 없었을것이다.
열흘정도의 교육을 마치고 고속도로 개통 전날 그 넓디 넓은 고속도로와 차로들의 청소와
20개 넘는 부스들의 대청소를 마친 다음날, 벌써 교육생중 2명은 힘들다고 출근을 하지 않는 일도 있었다.
그리고, 개통 첫날엔 새벽5시에 출근을 해서 밤12시가 넘어서 퇴근을 했다.
그리고 두어시간 자고 다시 새벽4시에 일어나서 출근 준비를 시작했다.
힘든 개통 첫날 다음날에도 두명의 직원이 또 출근을 하지 않는 일이 발생했다.
사무실로 어떤 직원의 남편되는 사람이 전화를 해서 욕을 하는 일도 있었다.
새벽 5시가 나간 마누라가 밤 12시가 넘도록 퇴근을 안하니 그 남편이 있는대로 열이 받았던 모양이다.
운좋게도 내 직장이 남편의 사무실과 5분거리에 위치한 톨게이트라서 남편 회사사장님의 배려로
나의 출퇴근을 남편이 적극 도울수 있었으며, 남편에게 일이 있어서 데리러 오지 못하는 날엔
나와 안면이 익숙한 남편 회사 직원이나, 전무님까지 나서서 나의 톨게이트 3교대 직장생활을 후원(?)해줬다.
그때도 여전히 술자리가 자주 있던 남편은 나의 출퇴근때문에 체력적으로 많이 힘든 시간을 보냈다.
어떻게 시간이 가는지조차 모를정도로 빠르게 보낼수 있어서 나는 많은 잡념들에서 벗어날수 있었다.
이웃의 두 언니들은 내 딸들을 친조카처럼 챙겨주면서 나의 직장 생활의
적극적인 후원자가 되어 주면서 나를 열렬히 응원해주었다.
중간중간 그만 두고 싶을때도 많았지만 달달이 내 명의로 된 통장으로 입금되는 월급을 기대하면서
한달을 버텼고, 내 심경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에, 체력적으로 힘이 들었음에도 더 열심히 일을 했다.
운전면허를 따고 남편의 대리운전을 하면서 남편의 술자리에 참석하는 횟수가 많아지고,
내 남편과 같은 한 가정의 가장인, 남자직원들의 힘든 직장생활의 모습을 내 직장에서 직접 보면서,
아,,,,, 내 남편도 직장에서 저러겠지.... 더럽고 치사해도 내 남편도 저렇게 참고 견디는거겠지..
남편의 회사 생활의 대한 고달픔을 머리가 아닌 눈으로 몸으로 느끼기 시작하면서
남편을 바라보는 내 시선과 마음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일을 할수 있어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남편을 닥달하는 시간도 부족했으며,
3교대 근무 조건으로 남편하고 얼굴을 대하는 시간도 적어졌고,
그러면서 조금씩 나는 남편에게 무심해지기 시작했다.
그럴 시간엔 차라리 1시간 더 잠을 자기에 바쁘고,
그런 나의 변화에 남편도 편안함을 느끼기 시작했던것 같다.
남편으로 인해 속상한 일이 있어도, 그 생각에 집착하다보면,
당장에 날마다 돈을 만지는 직업이다보니 많게는 몇천원이,
적게는 몇백원이 마이너스가 나니, 힘들게 일하고도 월급에서 1,2만원이 공제가 되는
불상사가 일어나기 때문에, 남편과의 싸운 기억도 오랫동안 간직할수가 없었다.
그래서 더더욱 일을 그만 두지 않아야지 결심하면서 1년을 보냈고, 또 버티다 보니 2년이라는
시간이 흘러서 어느덧 나는 그곳에 몇 안되는 개통멤버로 자리를 굳히고 여러명의 신입사원들의
선배가 되어, 고참 사원으로 어느 정도 자리 매김까지 할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자아실현이 아닌, 우리집 빚을 갚기 위해서, 남편의 집착에서 벗어나고 싶은
간절함으로 맞벌이를 시작하게 된게 가장 큰 이유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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