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웬수 같던 남편이 가장 가까운 사람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2010. 12. 21. 06:00★ 부부이야기

 

 

남편이 미울 때마다  남편의 대한 좋은 기억들을 생각하며 남편을 용서하면서 살았던 것 같다.

첫 아이 보미를 낳을 때, 허약해 보이는 마누라가 잘못 될까봐서 진통을 겪는 내내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내 손을 잡아주던 남편의 모습을 떠 올리며 용서했다.

첫 출산 후 몸조리를 할 때, 천기저귀를 빨겠다고 좁은 욕실에 엉거주춤 쭈그리고

앉아 있던 남편의 모습을 떠 올리며 용서했다.

둘째를 낳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미역이랑 고기만 넣고 끓여 놓은 미역국을 대령하고,

집 앞 슈퍼에서 마누라가 쓸 생리대 한 박스를 사들고 와서 산골 청년처럼 웃던

그 순박한 모습을 오랫동안 기억하며 남편의 많은 만행들을 눈감을 수 있었을 것이다.

면허증도 없는 내가 톨게이트의 3교대 직장을 다닐 때, 3개월동안을 자기의 회사

스케줄에 상관 없이 어떤 불평도 없이 나의 출퇴근을 도와준 남편을 생각하며 용서했었다.

보미가 5살때, 어린이집에 처음 등원 하던 날, 내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토끼 케릭터가 그려져

있는 분홍색의 가방을 들고 와서 울 보미를 번쩍 안아 들고 " 우리 보미가 벌써 이렇게 컸어?"

말하면서 미소 짓던 남편의 모습을 기억하며, 남편의 만행들을 용서하며 버틸 수 있었다.

눈이 펑펑 내리던 어느 해의 12월달에, 겨울 외투 한벌이 없는 마누라를 생각해서  

도로변 상인에게 샀다는 길거리표 빨간색의 촌스러운 체크무늬 외투를 사들고 왔던 벌건 얼굴의 남편을 기억하고,

시골에 계신 장모님이 올라오신 날, 퇴근 길에 장모님이 드실 족발 한 봉지를 사들고 와준 딱 한번의 기억 때문에

나는 이제까지 남편과의 다툼이 있거나, 남편이 찢어 죽이고 싶을 때마다 버틸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만의  아이가 아니라 남편과 나의 우리들의 아이임에도 늘 나는 남편이 우리집 두 딸들과 잘 지내는

모습이나 관심을 가져주는 모습을 보면 나 혼자서 크게 감동을 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경우가 많았다.

남편이 우러러 뵈거나 존경스럽다는 생각이 들 때는, 세상의 대부분의 아내가 제일로 좋아한다는 두툼한

돈뭉치를 내 손에 쥐어 줄 때가 아니라, 내가 아끼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내 주변의 사람들을 소중하게

생각해주고 있구나, 혹은 그 들을 위해 작은 관심을 보여 줄 때 나는 크게 감동을 하며 남편이 우러러뵌다.

내 엄마, 내 동생들 친구들도 미처 모르는 나의 일면을 너무 잘 알고 있는 남편을 볼 때, 나는 남편이 너무나 좋다.

시아버님의 장례식에서 입관하는 모습과 화장하는 모습에서 통곡을 하는 내 모습에서,

다른 사람들처럼 시아버님의 죽음 때문에서 통곡하는 며느리가 아니라,

내가 어릴 때 돌아가신 내 친정아버지의 초라했던 장례식을 기억하고 통곡을 한다는 것을

알아주는 내 남편의 한마디는 지금까지도 절대로 잊혀지지 않는 내 남편의 가장 고마운 기억으로 존재하고 있다.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에 사교적이지 못하는 내 성격의 일면을 걱정은 하되 절대로 나무라지 않으며,

그런 일면이 나쁠 수도 있지만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데 있어서 되려 바르게 클 수 있는 버팀목이

되었다는 것을 알아주는 세상의 유일한 사람이 내 남편이기도 하다.

어떤 일을 하고 사회생활을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하여금 쪼끔은 까칠하고 보수적인 인상은 줄 수 있지만,

그 어떤 사람보다 성실하고 정직할 수 있는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깊은 신뢰감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우리 마누라 라고 생각해주는,  세상에서 무조건 나를 믿어주는 유일한 사람이 바로,

과거속에 내게 때때로 철천지 웬수 였던 존재,  내 남편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