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받아서 드린 3백만원 보다, 내가 번 돈 10만원이 내 진심이었다

2011. 8. 2. 06:00★ 부부이야기

 

 

시어머님이 허리 수술을 받으시고 퇴원을 하셨다.

아직도 움직이시는 것이 불편하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검사비로 우리가 부담했던 백만원, 간병비와 보조대비로 백만원 가까운 경비가 지출 되었고

병원비가 270만원이 나왔다는 애길 시누 입을 통해 들었고, 그 애길 나는 남편을 통해 다시 들었다.

그렇게 어머님의 이번 허리 수술로 들어간 경비는 총 5백만원 정도가 지출 되었나 보다.

 

엊그제, 토요일날 퇴원하셔서 집에 계시는 어머님을 뵈러 갔었다.

어머님의 두 딸들인 시누들이 일을 하면서 어머님을 보살피고 있는게 현실이었고 아들인

남편은 병원 오가는 문제만 해결해드리고 있었을 뿐, 자식 노릇 한게 없었다.

철저한 이방인 며느리인, 나 직장 댕기고 나 살기 바빴으며, 지난 날, 나만의 입장에서

어머님에게 받은 상처들이 너무 커서 오래전에 어머님의 대한 내 마음은 얼음이 되어 있었다.

 

 

 

 

 

금요일 저녁, 퇴근을 하고 시장을 봐서 음식들을 몇 가지들을 만들었다.

사먹는 것에 질려(시누들도 일을 하기에)어머님이 드시고 싶다는 김밥이랑 호박죽을 만들어 봤다.

토요일날 새벽 1시 20분까지 음식을 만들었고, 그 날 새벽6시에 다시 일어나서 김밥을 만들었다.

나름 고생을 해서 만들어 간 음식들이었는데, 김밥 두개 드시더니 "애미야, 음식 좀 싱겁게 해라.. 짜다!"

미혼인 막내시누는 나랑 눈도 마주치지도 않았다.  결혼한 큰 시누가 와서야 나를 상대해줬다.

 

 

자기 남편의 혈압때문에 음식을 싱겁게 먹는 큰 시누가, 깁밥을 먹어보더니 맛있다고, 하나도 안 짠데 엄마는 왜 그래?

언니, 대단해요. 직장 다니면서  언제 이런 것들을 만들었냐고, 난 죽어도 이런 것 못한다고... 내 편을 들어주는 응원의 말을 해준다.

그녀도 큰며느리로 존재했었고, 자신의 시어머니에게 자신이 가진 마음이 어떠 했는지를 아직은 잊지 않았기에...

청소도 해야 하고, 세탁기도 돌려야 하고, 욕실 청소도 해야 하고, 냉장고 청소도 해야 한다는 시어머님,

무뚝뚝하고 표정 없는 차가운 며느리인 나는 말 없이 시댁의 집안 구석구석 청소를 하는 도우미가 되었다.

 

 

 

 

 

 

하룻밤 자고 가길 바라시는 어머님에게 어딜 들러야 한다고 거짓말을 했다.

여름에 1주일동안 씻지도 못한 어머님의 머리를 감겨드리기 위해, 침대 끝에 어머님을 뉘이고,

큰 시누에게 함께 머리 감기자고 해서, 남편에게 비닐 깔게 하고 페트병에 물을 담아서

샴푸를 해서 머리를 감겨 드렸다.  머리를 감기면서 큰 시누는 계속 뭐라고 떠들었다. 딸이니까 그럴 수 있을 것이다.

며느리인 나는 " 허리 불편하시면 말씀하세요.. "는 말만 하고 표정 없는 얼굴로 생전 처음 어른의 머리를 감겨 드리는 일을 해봤다.

 

 

 

불편한 허리 때문에 움직이는게 불편하신 어머님이셨기에 머리를 1주일만에 감겨드리니 시원하셨나보다.

머리 물기를 말리시던 수건을, 방바닥 물기를 닦고 있는 내게 휙~ 던지셧나보다. 일부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근데 그 모습을 본, 내 딸 보미가, 집에 오면서 할머니 정말 싫다고~ 왜 엄마한데 수건을 던지냐고...

왜 엄마를 식모처럼 부리냐고~~~

아니라고, 할머니가 일부러가 아니라고, 엄마가 있는 줄 모르고 그런신거라고~~~말해줬지만 보미는 단단히 화가 난 것 같았다.

우리 보미도 어머님 머리 감겨 드릴 때 침대에 올라가서 손을 잡아 드렸다. 혜미도 함께.... 시댁 걸레질도 돕던 딸들이었다.

그날 시댁을 나오면서 대출 받은 2백만원을 큰 시누 손에 쥐어 주고 왔다.

그렇게 이번 어머님 아프신걸로 3백만원을 대출 받아서 드렸지만 난, 어머님에게 고맙다는 한 마디도 듣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건 자식으로서 당연하다고 생각하시는 어머님의 생각 때문이실지도 모른다.

 

 

 

 

 

 

깜짝 놀라면서 절대로 받을 수 없다는 큰 시누, 절대로 한 마디도 사양을 하지 않으시는 어머님이 표정에는

혹시라도 며느리가 쥐고 있던 봉투를 다시금 가방으로 집어 넣을까봐 막내시누가 요즘 고생한다는 말만 연꺼푸 하셨다.

막내시누 주라고 하고, 시댁 청소와 반찬들을 배달해주고 , 4가지가 바가지인 며느리인 나는,

다음주에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시댁 이라는, 나에게는 멍에 같은 공간에서 빠져 나왔다.

눈물이 날 것은 난, 옆에 앉아 있는 내 두 딸들을 보고 울음을 삼키고 내 친정엄마를 생각했다.

 

 

그리고 그 날, 나는 내가 받은 첫 월급에서 10만원을 친정엄마에게 부쳐 드렸다.

"엄마, 내 서방이 번 돈이 아니고, 엄마 딸이 일해서 번 돈이야~~

엄마 그 돈으로 엄마 맛난것도 사드시고, 좋은 옷도 사 입으시고, 좋은 곳에 놀러도 다녀오세요!!!!"

엄마가 말씀 하셨다.

"미친 년, 빚이나 갚으라니까... 염병할년!!!   벼룩의 간을 빼먹고 내가 맘이 편할런지 몰겄다!

그 큰 돈 10만원을 내가 어찌 쓸지 모르겠다만 이번에는 고맙게 받아서 맛난 것도 먹고, 좋은 옷도 사고 하마"

 

 

 

 

시어머님 병원비 보태르랴 은행권에서 300만원 대출 받은 돈은 내 진심이 아니었다.

허리가 불편하신 어머님의 머리를 감겨드리겟다고 고집 부렸던 것도 내 진심이 아니었다.

그건 남편의 어머님의 대한 하나의 도리 내지 의무감에서 했던 행동이었음을 고백한다.

그 분이 드실 음식들을 만들어 간것도 의무감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친정엄마에게 부쳐드린 10만원은 내 진심이었다.

그리고 다부진 미래의 내 결심이기도 했다. 내 엄마가 편찮으시면 내 서방도 버리고

내 시어머니도 버리고 울 엄마 머리도 내가 감겨드리고 목욕도 시켜드릴거라는~~~

요리 책에서 배운 요리들도 만들어서 엄마에게 떠먹여드리는 것도 나는 진심으로 할 것이다라는

나의 진심을 담아서, 내가 번 돈 10만원을 엄마에게 보내 드렸다.

 

 

 

 

 

내게 시어머님을 진심으로 대하지 않는다고 못며느라고 욕하는 사람들,

그들에게 나는 뭐라고 하고 싶지 않다. 그 사람들 말이 맞을지도 모르니까............

그래도 나는 가식적으로라도, 의무감에서라도 그렇게라도 한다.

그리고 그 대출금을 갚기 위해 돈을 벌러 일을 시작한 며느리이기 때문에,

나보고 심한 욕은 하지 않아줫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가져본다.

적어도 나는 남편의 어머님이시기에 과거의 내가 받은 상처들은 다 두고

가식적으로라도 그렇게라도 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