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0. 19. 06:00ㆍ★ 부부이야기
주류계통의 영업직에 종사하는, 남편이 올해 2월달에 회사에서 "상무"로 승진했다.
정말로 술 상무가 된 것이다.
아내인 나, 남편의 승진 소식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고, 승진한 만큼 남편의 월급이 얼마나 더 오를까? 만에 더 궁금해 했었다.
남편에게 이 계통을 벗어나라고 했었다. 집에서 백수로 놀아도 되니까 제발 좀 주류(술) 계통에서 벗어나길 10년 넘게 졸랐던 아내였다.
내가 운전대를 잡을 줄 알게 되면서부터 간간히 하고 있는 남편의 대리운전을 할 때가 있다.
대리운전을 처음 시작하던 초에 남편의 술자리에서 만난 남자들의 말들이 생각난다.
고지혈증을 방지하기 위해, 회사에서 지급해준 약까지 복용하면서 영업을 해야 하는 양주회사의 영업사원들,
술 마시다가 피를 토하고 응급실에 실려간 애기, 술자리가 끝나고 새벽시간에 집으로 가는 길에 차사고로 사망한 어느 영업사원,
잦은 술자리로 간경화 및 기타 등등의 질환을 얻게 된 주류계통 영업사원들 이야기들도 모두 남편의 지인들을 통해 들을 수 있었다.
주류 계통에서 일하고 있는 남자들의 아내들 중에, 신혼부부를 제외하고는
새벽까지 이어지는 술자리에 있는 남편에게 전화를 하는 아내는 없다고 했었다.
그리고 그 남편들은 말했었다. 자기 아내도 처음에는 남편의 귀가시간에 집착하고 뻔질나게 전화를 해서
서로 다투는 일이 많았지만 지금은, 자기 직업을 이해하고 집에 몇 시에 들어가든 전화 같은 것은 절대로 안한다고 말했었다.
나, 속으로 비웃었다. 그 남자들의 편리한 해석을 듣고 기막혀 하면서 혼자 웃었다.
술 회사 영업직에 몸담고 있는 남편을 둔 결혼 16년차에 접어든 아내인 나,
지금까지도 남편의 새벽귀가를 이해해주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다.
앞으로도 그런 술자리에 대해서 이해해주고 싶은 마음도 없다.
우리나라의 음주문화가 그런 걸 어쩌냐고, 남편 직업이 그런거니 어쩔 수 없다는 것도 다 핑계로 생각한다.
이해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잘못된 문화는 고쳐져야 하는거지 이해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술자리에 참석해서 고주망태가 되어 들어오는 남편의 모습에
눈시울을 적신 적도 많았고, 그런 힘든 남편을 위해 묵묵히 해장국을 끓여주고
숙취 해독에 좋은 여러가지 먹거리들과, 술에 지친 간 해독에 좋다는 먹거리들을 대령하는 아내로 살아야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간혹 새벽시간까지 이어지는 남편의 술자리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하는 속좁은(?)아내로도 살고 있다.
내 마음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 포기 했거나 체념 했다고 표현하는 거는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것을 이해라고 표현하는 것은 내 기준에서는 틀린 표현이다.
그걸 아직까지도 이해해 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나도, 참 지독한 사람일런지도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난, 술로 인한 실수들이나 핑계들을 대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살 것 같다.
지금껏 술을 마시고도 실수나 핑계를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뭐라 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적당히 마신다는 기준도 나와 남편은 다르다. 아마도 술을 마시는 모든 사람들의 기준과, 나의 적당한 음주의 기준도 분명히 다를 것이다.
여느 사람보다는 술을 쉽게 구할 수 있고 선물로 술을 가장 많이 받은 사람으로 살면서
여전히 술이라고는 입술에 축이는 것조차, 치를 떨어하는 여자로 사는 내가 가끔은 치가 떨리게 싫기도 하다.
이 번 추석에도 와인을 비롯해 곡주들과 양주들이 선물로 들어왔었다.
그런 술들은 들어옴과 동시에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급하게 나눠줘 버리고
내가 살고 있는 집에는 절대로 술이라는 것을 두고 싶지도 않는 사람으로 살고 있다.
간헐적으로 건강을 이유로 20일 이상의 금주를 하기도 하는 남편이다.
하지만 그 기간이 지나면 또 술자리는 이어지고, 그런 술자리 중에는 새벽까지 이어지는 자리가 아직도 존재하고 있다.
아내인 나는 그 동안, 성인 남자로는 감당하기 힘든 엄청난 잔소리 폭풍과, 노후를 담보로 협박을 남편에게 해보기도 했었고
유신시대의 악랄한 안기부 직원이나 강력계 형사가 되어서 지독한 취조를 하기도 했었고 고문도 해봤지만
주류 계통에서 근무하고 있는 남편에게는 별로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런데 그 계통에서 일한 댓가로 받은 돈으로, 우리 가족은 생활하고 있다.
몸서리 치게 참 싫치만, 본인 몸도 힘들고 그 남자랑 사는 아내인 나도 참으로 힘들었지만
이 계통에서 완전하게 벗어나 다른 새로운 일을 시작해서 돈을 버는 것은,
지금으로서는 장사(자영업)를 시작하기전에는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보여진다.
본인 스스로가 결심하지 않는 이상, 나의 힘으로는 남편의 술과의 관계에는 영향을 줄 수 없음을
절실하게 인정하고, 모든 것을 체념하고 나 편한대로 살기로 다시 한 번 결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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