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고 나서 들리는 친정은 가장 편안한 쉼터가 되어준다.

2012. 1. 12. 06:00★ 나와 세상

 

 

 

 

화요일 아침에 집을 나섰다.

아침 8시 50분에 출발하는 고속버스를 타기 위해 20분쯤을 걸어서 부천 소풍터미널에 도착을 했었다.

이번 방학을 놓치면 아이들과 함께 친정에 들릴 수 있는 기회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없을 것 같았다.

작년에는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큰 딸의 졸업식을 보려고  친정엄마가 올라오셨다.

외갓집이 멀다는 이유로 외손녀들을 친정엄마는 1년에 한 번이나 볼 수 있는 외할머니로 존재하고 계신다.

 

 

 

 

시골은 늘 그 모습 그대로 간직해주고 있다.

5시간동안 고속버스를 타고 내려간 친정집은 20년전 그 모습 그대로인 것 같았다.

내가 태어난 고향은 이제 더 이상 내 고향이 아닌 것 같다.

내 나이 스물 두 살에 내 친정은 전라남도 장흥에서 영암으로 변했다.(엄마가 재혼을 그 때 하셨기 때문에)

돌아가신 친정아버지의 묘지 이장까지 이루어진 뒤로는, 나는 한 번도 내 고향에 가보질 못했다.

 

 

 

 

 

 

김장하러 내려 왔을 때는 엄마 아빠 모두 얼굴이 안 좋으셨다.

수백포기 배추들을 절이고 양념을 버무르랴 피곤에 누적되셨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친정행에서는 두 분의 얼굴이 그 때보다 훨씬 좋아 보여서 다소 마음이 놓였다.

3남 6녀의 대가족을 이루게 된지도 이제 어연 20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나의 친정집이다.

그 많은 자식들 중에서 친정 부모님 가까이에 사는 자식은 광주에 사는 막내딸 말곤 한 명도 없다.

 

 

 

 

 

 

나도 내 시누처럼  친정 가까이 살면서 하루에 한 번씩 친정엄마 얼굴을 볼 수 있는 딸로 살고 싶다.

엄마가 병원에 갈 일이 있으면 나도 내가 엄마 모시고 병원에 함께 가 드리고 싶다.

명절이면 나도 친정에서 아침밥을 먹어 보는게 소원이다.

명절날 친정집에 다녀오라고 말씀 안해주시는 시어머니에게 서운해 하는 며느리도 이제는 안하려고 한다.

내 친정엄마, 내가 이제부터 챙기면서 살고 싶어진다.

 

 

 

 

 

시골에서 잠을 자고 일어나면 머리도 아프지가 않고, 아무리 많이 먹어도 소화가 잘된다.

같은 김장김치를 먹는데도 우리집에서 먹는 김치맛과 친정집에서 먹는 김치의 맛이 다른 이유를 아직도 모르겠다.

아침을 먹고도 엄마는 내게 뭔가를 끊임없이 먹이신다.

검은콩 물도 먹이고, 단감을 갈아서 요쿠르트랑 갈아서도 먹이고 과일도 먹으라고 쉬임없이 먹기를 요구하신다.

울 엄마는 큰 딸인 내가 오동통하게 살찐 모습을 한 번이라도 보시는게 평생 소원이신 것 같다.

 

 

 

 

 

 

나도 내 딸, 자주 보고 싶다고 말씀하신 친정엄마의 말씀이 오래 오래 남는다.

시어머님이 남편을 자주 보고 싶다고 말씀 하신 거랑 상통하는건가...? 라는 생각을 해봤다.

먹고 싶은 것 뭐든 말하라고....... 나와 내 딸들에게 수시로 물어보는 울 엄마....

세뱃돈 미리 준다고 하시면서 꾸낏꾸깃하게 접혀진 5만원권 지폐 한 장을 내 가방에 넣어주신 울 엄마,

친정 오르랴 고속버스비 들었다고 그걸 안스러워하는 울 엄마....

 

 

 

 

 

 

나는 왜 울 엄마의 부지런함을 닮지 못했을까?

시골의 밤은 길기도 길었다.

하루 세 끼의 식사준비를 매번 새로 하시는 울 엄마,

비실비실 하고, 까칠하고 예민하고, 없는 것이 자존심만 살아선 쓸데없는 돈을 쓴다고 늘 나를 나무라신다.

나만 보면 이기적으로 사는 딸이 되라고 매번 강조하시는 울 엄마....

 

 

 

 

 

 

컴퓨터가 없는 할머니집이 재미 없다고, 외할머니집은 너무 멀다고 말하던 딸들이었다.

밥을 많이 안 먹으면 야단치는 할머니가 싫다고, 자기들을 보고 욕하는 외할머니가 싫다고 하던 내 딸들이었다.

그런 딸들이 이제는 친할머니보다 외할머니인 울 엄마를 훨씬 좋아하게 되었다.

뭐든 챙겨주려고 하고, 엄마가 쥐어드리는 돈을 뿌리치며 "이년아. 이런 돈 있으면 니 빚이라 갚어!!"

보미, 혜미 잘 먹이고 잘가르치는 것 말곤 딴 것은 생각하지도 말어.라고 말하는 외할머니의 진심을 알게 된 걸까?

 

 

 

 

 

 

 

 

 

 

 

 

 

 

 

 

 

 

친정아버지 산소에 다녀와서 아빠가 건네주신 고구마를 먹었다.

아궁이에서 장작으로 찐 고구마를 간식으로 먹었다.

이번 처럼 내 아이들과 함께 3박4일동안이나 머물수 있는 기회는 두 번 다시 없을거라는 생각을 했다.

배추들과 무우 그리고 내가 올라온날 방앗간에 뺀 떡국은 엄마가 택배로 보내주셨다.

나도 울 엄마가 살고 계시는 시골에서 가까운 곳에서 딸 노릇 하면서 살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