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3. 31. 00:01ㆍ★ 나와 세상
경찰서에 다녀왔습니다.
사건 정황들과 범인 검거 추적 과정의 대한 담당형사의 설명만 듣고 왔습니다.
시끄러운 언성이 오가는 풍경도 연출 하지 않았고, 가해자 가족을 보고 잡아 뜯는 일 따위도 없었습니다.
가해자의 대한 신상정보는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그 가족들 누구도 볼 수 없었고 연락조차 받지 않았습니다. 겨우 가해자가 젊은 사람이고, 작은아버지와 같은 동네에 사는 사람이라는 것만 겨우 알았을뿐입니다. 가해자의 진술에 의해서 작성된 진술서 내용도 들었습니다. 몰랐다고, 사람이(작은아버지 키 176에 80키로즘) 누워 있는 줄 몰랐다고 합니다. 뭔가 덜컹 했던 것은 기억이 나지만 사람인은 전혀 몰랐다고, 그걸 모를 수 있을까? 가해자가 운전 당시 음주상태인지도 지금 와서는 확인 할 수도 없습니다. 목격자가 없기 때문에, 부검 결과도 누워 있는 상태에서 차가 밟고 지나가서 직접적인 사인은 갈비뼈가 으스러지면서 장기들에 손상을 준 것 때문이라고 합니다. 차에 부딫혀서 넘어진 게 아니고, 도로에 넘어져 있는 작은아버지를 가해 차량이 타고 넘어간걸로만 결론이 난 것 같습니다. 희미한 CCTV상의 영상도 그걸 뒷받침 해주지만, 사건 당일날, 비도 내리고, 영상이 너무 희미해서 확인 할 순 없지만, 가해 차량이 지난 간 다음, 3분 후에 주행하던 차량이, 작은 아버지께서 쓰러져 있던 자리에서 정지를 해서 119에 신고를 했고, 신고자 차량 뒤로 바로 2대의 차량들이 사건 현장을 비켜가는 모습들을 CCTV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담당형사가 처리할 일은 다 했고, 가해자 진술의 대한 반박을 하려면, 민사를 걸어야 할 것 같습니다. 피해자 가해자 과실률이나 그로 인한 보상 문제는 보험회사와 해결 할 일이고, 개인간의 합의 할일만 남았고, 형량 결정은 경찰 조사와 이런 저런 증거들과 정황들을 보고 판사가 읽어보고 결정을 한다고 합니다. 뺑소니에 사망 사고라서 당연히 구속수사가 기본 일줄 알았는데, 진술끝나고 가해자는 풀려났다는 말에,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반박해봤지만 그건 형사 권한이 아닌 판사가 결정한 것이니, 어떤 근거로 불구속 수사가 되었는지는 피해자 가족인 에게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형사는 모른답니다. 형사가 해야 할 일은 다 끝났고 그 사람 손에서 떠났고 검사나 판사 손으로 넘어간 것 같습니다. 답답함과 억울함 그리고 작은아버지의(CCTV상에서 작은아버지로 추정됨) 살아계실때 걸어가실 때의 마지막 모습에 조카가 눈물을 보였고, 저 또한 다시 한 번 울컥 했습니다. 참, 깔끔한 형사님의 사건 설명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자기가 해야 할 일은 충분히 다 했습니다. 그 나중 처리들과 판결은 이제 검찰 담당이 되었습니다. 상상했던 험상 궃고 날카로운 눈빛을 가진 형사도 아니었습니다. 부드럽고 온화한 인상을 가진, 형사였습니다. 그런데도 그 형사의 철저한 자기 역할에 충실한 모습에 왜 그리도 서운함과 울컥함이 느껴졌는지 모르겠습니다. 반박과 잘잘못을 따지기 위해 피해자 가족들을 부른 게 아니고, 단지 사건 정황들과 그 동안 조사 과정 및 결과를 설명해주기 위해 부른거라는, 철저한 프로다운 면모를 보여주신 형사님이셨는데, 왜 그리도 그 모습이 차갑고 냉정하게만 느껴졌던 걸까요? 아주 세세하고 친절하게 설명해줬는데도 왜 그랬을까요? 많은 말들과 생각들의 사람들속에서 조카가 마지막으로 결정을 했습니다. 아들로서 적어도 아버지의 죽음이 최소한 억울하지는 않게 법률사무소에 의뢰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어릴 때 친구가 그리 멀지 않는 곳에 변호사 사무실을 개원했다고, 그 친구에게 맡긴다고 결정을 했다고 합니다. 더 이상은 저도 동생도, 손을 놓기로 했습니다. 저희가 생각했던만큼, 조카는 철 없는 것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했으며, 돈이, 보상금이 문제가 아니라, 가해자의 대한 괘씸함과 아버지의 대한 억울함을 풀기 위해서 조카가 결정한 것에 대해 존중해주기로 했습니다. 이번 일로 둘째 외삼촌의 아들이, 군대에서 소령으로 전역을 하고 나서 서초동 변호사 사무실에서 사무장으로 근무를 하게 되었다는 것도 기억해 낼 수 있게 되었고, 작은 아버지의 사건으로 그 동안 소홀하게 지내던 둘째 고모님과도 왕래를 조금은 더 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조카가 이번 일로 훌쩍 성장할 수 있다면, 작은아버지의 죽음으로 얻어진 보상금보다 더 크고 귀한것을 얻는거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작은어머니의 상속포기 각서도, 쉽게 정리가 될 것같습니다. 이번 기회에 작은어머니와도 서로 왕래를 하면서 지낼 수 있기도 간절하게 바래봅니다.
누나들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하고, 이럴 때일수록 밥 잘 챙겨 먹고, 외롭다고 생각하지 말고, 기운 내서 씩씩하게 지내라는 문자를 조카에게 보내는 것을 마지막으로 어제 저의 일과를 마무리 했습니다. 작은아버지 장례식때 참석해준 고모집의 4명의 오빠들과 올케들에게 전화를 해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챙겼습니다. 남편에게 부탁해서 수고를 해준 둘째 고모집 큰 오빠에게는 맥주 한 박스를 드렸습니다. 김해에서 올라오고 그곳에서 이번 일을 알아보신 막내고모집 오빠에게도 작은 선물(표고버섯)을 보내드렸습니다. 그 오빠들에게는 외삼촌이시지만 제겐 작은아버지라서 그런지 작은아버지의 일은, 웬지 제가 챙겨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례식때도 그런 생각은 떠나지 않았기에 장례식장을 3일내내 지켰던 것 같습니다. 오래전부터 사는 형편하고는 상관없이, 저희 집에서는 제가 큰 아들인 제 아버지의 큰 딸인 제가 해야 되는 당연한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인사를 챙기는 것만이라도 맏이인 제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이 번일에 가장 애를 쓰고 고생을 한 것은 제 동생이었습니다. 동생과 저, 이 번일을 겪으면서 다시 한 번 저희가 자매라는 것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희에게 오빠가 있었다면 분명히 오빠의 부인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집에 오빠나 남동생이 없는게 서운할 때도 분명히 있었지만, 때론 우리 집에 아들이 없고 딸만 있어서 저희 세 자매가 이리 뭉쳐서 한 마음으로 움직일 수 있는 것에 감사하게 생각되는 경우가 여러 번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은 광주 시고모님 자제분의 결혼식이 있어서 어머님을 모시고 내려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친정에서 맏이인 것 처럼, 남편도 시가에서는 맏이이기 때문에 가봐야 하는 것이겠지요. 시누들은 안 가봐도 되지만, 맏이인 남편은 당연히 가봐야 하니까요. 어머님이 못 가시더라도 남편은 가봐야 하는 거니까요. 저희 결혼식에도 와주신 시고모님이시니까요... 그 시고모님이 10년전에 돌아가셨다고 안 가는 것은 안되는 거라고 말했습니다. 어머님에게... 사람들 사는 모습들이 다들 이리 비슷하겠지요. 요즘엔 사람 노릇 하고 사는 게 조금은 피곤하다고 느껴지는 게 솔직한 제 마음이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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