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치 건너서 바라보면 정답이 보이는데....

2012. 4. 2. 15:33★ 나와 세상

 

 

 

 

부당하고 억울한 시집살이를 하는 친구의 하소연을 들으면서,

왜, 그렇게 사냐고, 시어머니의 그런 억지스러움의 부당함을 왜 참고만 사냐고,

조근조근 말을 해서, 너의 솔직한 마음을 말씀드리거나, 편지로라도 니 마음을 전해서

말도 안되는 시어머님의 요구를 들어주지 말고, 너와 아이들 그리고 남편과 살 생각을 최우선으로 하라고

객관적이고 논리적으로 그 친구에게 위로와 함께 충고의 이야기들을 들려주기도 했었다.

 

 

남편과의 잦은 다툼과 갈등으로 힘들어 하는 그 누구의 고민을 들으면서는

대화를 하라는 둥, 남편이 변하길 바라지 말고, 널 위해서 너 자신이 변해야 한다고,

남편하고 별개의 너 만의 생활을 하면서, 너 자신을 위해서 살라고 충고를 하기도 해줬다.

시간이 약이 되는 경우가 많고, 너만 그렇게 사는 게  아니고 세상의 대부분의 부부들은 약간의 갈등과

치열한 전쟁의 시간들을 겪으면서 살아가는거라는  위로와 충고를 해주기도 했었다.

 

 

 

 

 

 

아이가 원하는 일과 자신이 아이에게 원하는 게 서로 달라서 갈등하며  힘들어 하는 엄마의 하소연에도

내가 무슨 아동전문 상담가가 된 양, 아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인정해주고, 니 욕심은 버리고

정말로 니 아이가 행복해 하면서 일할 수 있는 진로를 선택하게끔 해주는게 현명한 부모의 역할이라고 말해줬었다.

니 아이는 너의 소유물이 아니고, 부모의 역할은 그저 내 아이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따스한 눈으로 지켜봐주고

가끔씩 길잡이가 되어주는 인생의 선배일 뿐, 아이는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권리가 있다는 충고도 해준 적이 있었다.

 

 

회사내에서의 부하직원의 일이나, 상사와의 갈등으로 힘든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경우에도

밖에서 바라보는 객관적인 시선으로 냉정한 충고를 해주는 경우도 있었다.

내가 좋아하고, 내가 일로 맺어진 사람이 아닌 사람을 바라 볼 땐, 그 사람의 장, 단점이 참,  잘 보인다.

나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사람을 바라볼 때는, 정확한 판단을 할 수가 있다.

그래서 나름, 나는 예전부터 나와 상관없는 사람을 바라볼 때는 정확하게 사람을 본다는 애길 자주 들은 적도 있었다.

 

 

그랬다. 지금까지 살면서, 나와 한 치  건너, 한 다리를 건너서 어떤 사람을 바라볼 때는

그 사람이 더 잘 보인다. 그래서 그 사람에 대한 판단을 더 정확히 할 수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런 복잡한 일이나 갈등이 내 일이 되면 잘못된 판단을 하기도 하고,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행동하지 못할 때가 너무나 자주 있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그렇고, 그런 관계에서 생겨나는 문제들을 해결하거나 결정을 할 때

요즘 들어서 내가 알고도 잘못된 선택을 하거나, 혹은 모르고 실수를 하는 경우가 참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