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에 다녀와서

2009. 11. 30. 19:21★ 나와 세상

 

 친정에 다녀와서 몸살이 난건지 또 다시 쳇기 때문에 병원에 들러 위장약을 조제했다.

이 망할 만성적인 위염증상은 조금만 신경을 쓸 일이나 피곤하다 싶으면 바로 괴롭힌다.

명치끝을 누르면 찌르르 하는 그 아픔, 그리고 토할것 같은 구토증상과 만성적인 어지럼증은 요 몇년동안 나와 친숙한 증상들이다.

안면이 많은 동네 여의사도 내가 진료실을 들어서면 이젠 뭣때문에 왔는지 금방 안다.

1년에 한번씩 하는 위내시경 각종 암검사로 수시로 내 건강을 체크하는 부지런함을 떨고 있음에도 정작 나의 건강에 가장 필요한 그 "운동" 이라는것을 전혀 하지 않고 있기에 

이런 증상이 자주 온듯한다.

1주일치 약을 처방전을 받아 약국에서 약을 지어  집으로 돌아왔다.

예전엔 약처방전을 받으면 메모를 해서 그 약들을 인터넷으로 찾아보기도 했었다.

내몸이 약들에게 이미 점령을 당해서  면역력도 약해진것 같고, 장기간의 약복용으로 다른 부작용이 있을거라는 막연한 불안감은, TV매체 의학 다큐를 보면 더욱 증가하게 된다.

내 몸둥아리는 도대체  왜 이리도 부실한건지, 도대체 어디가 안좋아서 수시로 아파서

병원을 찾게 하고, 수시로 인공눈물을 넣어줘야 하고, 뻑 하면 체해서 약을 먹는건지...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이라는 친구의 말이 정말 일리가 있는듯 하다.

 

 

이번 친정행에서도 내가 한 일이 없었다.

집에서 새벽5시에 나섰지만 막내동생을 태우고 친정집에 도착한 아침 10시경엔 김장이

다  끝나서 김치통에 담고 있는 중이었다.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가서 차가 좀 밀린데다가 올해는 그나마 200포기를 채 담지 않아서  일찍 끝났다고 하셔서 그저 난 도착을 해서  내가 가지고 간 김치통과 동생 김치통에  완성된  김장 김치를 담고 엄마집 김치를 나르는 일만 했을뿐이다.

친정엄마는 이번 갑산성 때문에 고생을 해서 인지 너무 많이 늙으셨다.

물론 아빠도 올 8월달만 해도 그러지 않으셨는데 몇개월 사이에 너무 많이 늙어버리셨다.

막내동생은 엄마에게 가면서 돼지목살이랑 각종 빵들과 케익 그리고 엄마가 쓰실 모자,

그리고 소스를 만든다고 피망이랑 버섯 등등 시골에서 구할수 없는 야채들만 이마트에서

사가지고 2시간동안 온 정성을 들여서 고기를 삶아 야채들에 매실즙과 젓갈 그리고

식초등등을 섞어 소스를 만들어 엄마와 아빠에게 식사를 차려드렸다

그리고 밤엔 아빠 어깨와 팔을 주물려 드리고 엄마 어깨도 쉬임없이 주물러 드렸다.

광주에 사는 막내(아빠쪽 막내딸)는 여전히 엄마와 가장 친근하게 다투고 나의 막내동생은 가장 막내스럽지 않게 엄마 아빠에게 가장 필요한 효도를 해드렸다.

늘 그랬다. 우리집에서 그렇게 가장 실제적으로 효도를 행동으로 하는 사람은 내 막내동생이다.

엄마의 주방안 서랍을 다 정리하고 마루,  부엌 바닥을 닦는일, 엄마 아빠 피로를 풀어드리는 시원한 안마도 막내의 몫이었다.

수년전에 돌아가신 내 친할머니 대소변 수발을 1주일 넘게 한 유일한 손녀도

할머니의 사랑을 가장 받지 못하고 자란 내 막내동생이었다.

엄마와 아빠, 그리고 맹목적인 할머니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고 자란

나임에도 나는 할머니가 중풍으로 누워계신 둘째고모집에 가서 막내처럼 대소변 수발을

1주일을 해드린적도 한번도 없으며 그렇게 나는 무늬만 맏이라는것을 이번에도 느꼈다.

쓰던 냄배중에서 좋은거라고 사용하시던 냄비까지 엄마는 날 챙겨주셨다.

집에 있다고 했음에도 찹쌀, 고춧가루, 감자, 고구마 한푸대, 김치4통 , 참깨, 조선간장, 참기름, 고추장, 마늘 장아찌, 갓김치, 동치미,배푸 3포기, 무우 10개, 된장, 청국장까지 도대체 얼마나 많은것들을 싸들고 올라왔는지 집으로 그 짐들을 옮기면서 두 딸들이 시골할머니집 뭐먹고 사라고 다 가지고 와버렸나고 한다.(두딸들도 두세번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짐들을 날랐다)

남편이 환장하는 보성꼬막을 이번에도 엄마가 준비해놓으셨고 낙지볶음도 먹고 왔고

빙어라는 생선으로 끓인 국도 맛나게 먹고 올라왔다.

200포기를 채 담지 않아서 부족할것 같다면서 우리가 올라 온 다음에 엄마는 배추 100포기를 다시 뽑아서 소금에 절여 놓으셨다고 한다.

올라올때도 아빠쪽 큰언니, 작은오빠와 세째오빠집으로 부칠 김치들을 부지런히 박스로

포장을 했고 큰오빠는 처갓집에서 김장을 해서 필요없다고 했다는데도, 그래도 큰오빠를

주기위해 다시 100포기를 더 절여 놓으신다고 했다.

엄마의 노동양을 보면 나는 짐작조차  안된다.

엄마에게 드린 돈은 엄마의 손의 의해 우리 차안으로 던져졌고 이번에도 우린 톨게이트 비용말곤 든게 없을정도로 친정에 참으로 저렴하게 다녀왔다.

차에 넣는 기름까지도 아빠가 보일러에 넣는 기름을 우리차에 넣어주셨기 때문에....

아빠 입원하셨을때 아무도 돈 안부내줬는데 나만 부쳤다고 엄만 이번에 내가 드린 20만원을 끝끝내 우리 차안으로 집어 넣으면서 기여히 거부하셨다.

어찌나 우리 시어머님하곤 비교가 되는지, 올라오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다.

이번에도 나는 복분자 5박스 맥주 2박스 그리고 남자 여자 화장품 세트 그리고 폼크린싱,

샴푸와 린스  커피,  주방세제, 고무장갑, 면장갑, 비닐팩, 비닐장갑, 앞치마 2개, 김장비닐 10팩, 사탕 2봉다리, 과자들을 준비해서 내려갔다.

술을 전혀 안하시는 아빠는 군거짓로 가끔 과자나 커피, 사탕을 드시기에 자질구레한

군거짓거리들을 준비해서 내려갔다. 

올라오는길에 서해안 고속도로가 너무 막혀서 장작 10시간에 걸려서 상경을 했다.

고속도로 운전은 안해본 나도 이번엔 2시간정도 운전을 남편과 교대를 했으며,

막내를 집에 데려다주고 집에 도착을 하니 시간이 오후 6시가 훨씬 넘었다.

아침 9시에 출발을 했는데...... 그래도 다음달에 엄마 생일날 다시 내려가고 싶다.

그때는 나도 운전을 해서 교대를 하면서....

한번이라도 엄마가 그나마 지금처럼 건강하실때라도, 얼굴을 한번이라도 보러

내려가서 엄마의 밥상 한번이라도 내손으로 정성스레 차려드리고 올라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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