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5. 10. 12:03ㆍ★ 나와 세상
토요일 새벽5시에 일어나 유부초밥을 싸서 6시경에 출발을 해서 아침 10시 30분경에 친정집에 도착을 했다.
나와 두동생들만 내려가는줄 알았는데 큰오빠, 큰언니, 세째 오빠 부부까지 다 내려온다고 했다.
친정엄마가 재혼을 하신지 벌써 햇수로는 20년이 다 되어가고 있지만, 가족 전체가 모이는 기회는 흔치가 않다.
올해 1월달에 큰오빠가 세째아이를 출산 했다는 얘길 듣고 도리상 엄마가 올라와 계시는 성남 큰오빠집에
들러 생후 3일된 아이를 보러 갔다가 큰언니와 세째오빠를 함께 보고 이번에 시골에서 다시 볼수있었다.
좋은 사람들이고 오빠라 칭하고 언니라고, 하고 올케라는 칭호를 사용하고 있으면서도
나는 아직도 마음속으로 아빠를 제외하고는 그쪽 가족들에게는 큰 동기간의 살가운 정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집에서 챙겨간 소소한 것들과 남편이 가져온 복분자 샘플 9박스와
일본소주라는 큰병을 3병을 가져갔고, 수입맥주라는것도 20개 챙겨 갔더니
우리가 차에 싣고 간 짐들이 너무 많게 느껴졌고 엄마는 그런 나를 보고 역시 큰딸밖에 없다고 말씀 하신다.
아빠는 이번에 자식들에게 들려 보낼 쑥떡을 하러 방앗간에 가셨고,
두딸내미들은 도착하자 마자 자전거를 타고 시골길을 내달리는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
우리를 이어 큰오빠 가족이 도착을 했고 이제 생후 4개월이 넘은 세째딸아이를 볼수 있었다.
올해 들어서 보미와 혜미가 내게 자주 여동생 한명 낳아 달라고 조르고 있었는데
두아이는 아이를 보고 나서부터는 아이에게 떨어질줄 모르고 뒤이어 온 막내동생 가족이
오고나서부터는 그 집 아이들까지 합세를 해서 4개월된 다빈이는 지나친 아이들의 관심으로
피곤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될 정도였다.
큰오빠네 중학생이 된 두 아들중 둘째는 작년에 성남시에서 주는 장학금을 받았는데
이번에는 전교에서 단한명에게 지급된다는 장학금을 받게 되었다고 했다.
보여지는 모습은 참 평범한데 수학부문에서 탁월한 실력을 가진 큰오빠 작은아들내미는
과학고를 걸쳐 훗날 물리학자가 되는게 꿈이라고 했다.
결혼해서 한해를 쉬지 않고 맞벌이를 하고 있는 올게도 대단해 보였으며,
참으로 아이들에게 투자를 안하는 큰오빠를 보면서 아이들의 공부가 전부
부모 영향이 크다는것이 틀린말일런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엄마는 쉬임없이 종종 걸음을 치시면서 사위들과 아들 내외를 위한 밥상 차리기 위한
분주한 발걸음으로 정신없이 바쁘셨다.
보성 참꼬막에, 오리탕에 세발 낙지에 돼지 삼겹살에 미나리 무침에 쭈꾸미 무침까지....
사위들이 어렵긴 어려운가보다. 그런 엄마를 거들면서 올케랑 나는 열심히 보조를 했지만
그래도 엄마는 정신이 없을정도로 마당으로 부엌으로...... 그런 엄마를 보고 있으면
우리 자식들이 이렇게 한꺼번에 왔다 가면 매번 몸살나시는게 당연할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식을 해도 친정에서는 체하지가 않는것은 참 신기한 일이다.
집에서는 과식을 좀 했다 하면 체해서 방바닥을 기어야 하는데
친정에서는 묵은지에 햇된장에 상치쌈만으로도 한공기를 순식간에 비운다.
그러고도 이것저것 쉬임없이 뭔가를 먹는다. 과일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는
친정에 가면 엄마가 끊임없이 내오는 먹거리들을 맛나게 먹으면서 보여지는
깡마른 딸이지만 먹는거라도 잘먹는다는 소리를 들을수 있게 된다.
마당에서 구워 먹은 오리고기나 삼겹살도 맛있었고 우리 남편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보성꼬막도 이번에도 나도 함께 먹었다.
이제까지 못본 여러가지 술의 샘플들을 가득 챙겨오고 일본 술도 회사 어르신에게
처갓집 간다고 애길하고 공수 받아온 이런저런 종류별로 다양한 술들이
이번 친정행에서는 오빠들과 제부들에게 인기가 짱이었다.
다음 수요일에 있는 친정아버지 기일날 볼 동생을 주기 위해 베란다에 남겨 놓고
온 술들까지 다 가져왔어야 하나보다 할 정도였다.
친정부모님들은 술을 전혀 안하시는데 제부들과 오빠들은 전부 술꾼들인듯 싶었다.
집으로 올라오는날 아침부터 엄마는 일곱명의 자식들에게 챙겨줄 먹거리들을 준비하르랴 분주하게 움직이셨다.
그런 엄마보고 난 안가져간다고 말했다가 욕만 바가지로 먹고 우리가 타고 차량 스포티지 뒷쪽이 푹 꺼질정도로
가득 먹거리들을 싣고 집으로 돌아왔다.
김장김치를 받아오면서는 다른 형제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했다.
김장김치는 나만 챙겨왔기 때문이다. 아버지 제사때 쓰라고 취나물 무친거랑, 엿기름도 챙겨주셨다.
친정아버지 제사때마다 올라오시지 못하는 엄마는 늘 매번 그렇게 우리 세자매에게 미안해 하신다.
그러시지 말라고 하는데도 엄마는 늘 우리 세자메에게 죄인처럼 그렇게 늘 미안해 하신다.
그런 엄마 모습에 가끔 속상해하면서 지금 아빠와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셨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이번에는 집에서 고추를 심어서 따먹으라고 고추 나무도 심어주셔서 챙겨주시는 아빠 주머니에
봉투를 넣어드리고 왔다.
물론 시댁에는 매달 30만원을 지출하고 있지만 친정에는 이렇게 1년에 두어번 정도만 용돈을 드리게
되는 여자라는, 주부라는 내 자리가 이런 친정행엔 참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지 않으려고 하지만 늘 시댁 제사엔 30만원이 넘게 들어가면서 친정 제사엔 5만원만
내는 속물스러운 나의 가증스러움도 참 싫다는 생각을 자주 하는데.
친정 행에도 용돈의 차이에 싫으면서 이번에도 아빠에게 10만원 봉투만 드릴수밖에 없었다.
올케되는 언니에게도 수고 하시고 애쓰셨다는 인삿말을 챙기고 집으로 돌아왔다.
친정에 다녀올때마다 그러지 않으려고 하는데 매번 딸년은 도둑년이라는 말이
왜 그리도 머리속에 자동으로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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