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5. 21. 06:00ㆍ★ 나와 세상
지독하게 내성적인 여학생으로 자란 나는, 칠순 넘은 할머니랑 단둘만 사는 이유도 있었지만
성격 자체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거나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는 행동을 피곤하게 여겼다.
한달이 넘는 방학동안에도 우리집 대문 밖으로 나가본적이 없이 지내던 여학생이었다.
그런 나를 보고 할머니도 혀를 내두르셨고 옆집에 사시던 다른 할머님들도 지독하다고 하셨다.
시골에서 태어나 19년동안을 살았으면서도 농사에 대해서 아는것도 없고,
학교에서 가는 소풍때 말곤 가본 고향의 유적이나 산 말고는 아는곳도 전혀 없었다.
학교와 집 말고는 다른 곳에 가본적도 없으며 가보고 싶어한적도 없었다..
12살적에는 자전거를 배운답시고 학교 친구들과 뒷신작로를 달리면서 친구집에
놀러가보기도 했고 중학교 3학년때는 친구 따라 버스를 타고 놀러간본적도 있긴 하지만
학창시절의 나는, 그렇게 다 쓰러져 가는 내가 살던 초가집에서만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었다.
공부를 열심한것도 아니었고, 내가 제일 좋아했던것은 순정만화를 읽는것과
책이 많은 친구집에 가서 동화책을 빌려와서 읽는 생활만으로 난 충분히 만족을 하면서 살았다.
그런 내가 중학교 2학년때였나보다.
내가 살던 집이 초가집이기는 했으나, 그래도 주소상으로는 읍내에 속했기 때문에
고등학생인 어떤 남매가 우리집 아래채 아랫방에서 자취를 하기 시작했다.
여고생이던 언니도 무척이나 이뻤으며, 오빠라는 남학생은 내가
그때까지 살면서 봐온 남학생들중에서 제일 잘생겼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미소년이었다.
아마 그때, 나는 처음으로 남학생 때문에 가슴 두근거림을 느끼게 된 것 같다.
말수가 적고 읍내에 있던 남자 고등학교에 다니던 그 오빠는
키도 나보다 크고( 당시에 나보다 큰 남학생 찾기 힘든 시골이었다)
얼굴도 하얗고 웃을때면 보조개가 생기는 그런 전형적인 꽃미남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던것 같다.
그때부터 나는 순정만화를 읽으면서 남자주인공을 아랫방 자취하던 그 잘생긴 오빠로 상상하기 시작했고,
꿈속에서도 가끔씩 그 오빠랑 손잡고 데이트를 하는 장면을 꾸기도 했었다.
대문 앞에서 그 오빠랑 마주치기라도 하는날엔 가슴이 터질것 같은 벅찬 감정을 느끼기도 했었다.
얼굴이 빨개지고, 내 곁을 지나갈때마다 그 오빠 교련복에서 풍기던 빨래 비누향도 왜 그리도 좋던지..
그렇게 몇개월동안을 그 오빠로 인한 가슴 앓이를 하면서 보냈던것 같다.
그렇지만 그런 내 감정은 오래 가지 못했고, 하얀 얼굴을 가진 잘생긴 남학생도 그때 내가 빠져 있던 하이틴 로맨스 소설속의 남자주인공들의
매력때문에 오랫동안은 지속되지 못한채, 시들해져 버렸고 다시금 하루에 한번씩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꿈울 꾸는 여학생으로 돌아갔었다.
그게 내 기억속의 내가 처음으로 이성으로 느끼는 남자에게서 느끼던 설레임이었다.
그런 그 잘생겼던, 교련복이 잘 어울렸던 그 남학생이 나의 첫사랑이었을까?
두번째의 내가 설레여 하던 남자(?)는 여고 시절 국어과목을 가르치시던 남자 선생님이셨다.
여학생들의 농담에도 귓볼까지 빨개지던, 웃을때도 책으로 입을 가리고 웃던 수줍음 많은 선생님이셨다.
그 선생님으로 인해 공부를 전혀 하지 않던 내가 국어공부만은 조금은 열심히 하게 되었고,
그 선생님에게 잘보이고 싶은 마음에 글짓기에서만이라도 잘하려고 노력을 했던것 같다.
국어 과목 들어 있는 날에 그 전날밤부터 잠을 설치기도 했었고,
수업시간에 그 선생님이 내 옆을 지나가기라도 하는 날엔 내 심장은 요동을 쳤다.
수업 도중 그 선생님이 내 책상에 손이라도 얹고 서 있는날엔 심장이 터져 나갈 버릴것 같았다.
내 심장박동 소리가 너무 커서 그 선생님 귀까지 들리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나는 그런 내 마음을 숨기고, 친구들에게는 철저하게 웅큼을 떨면서,
여학생들 에게 인기가 최고로 많은 그 선생님에게 무관심한 여학생처럼 굴었다.
학급일지를 쓰고, 선도부 일을 맡으면서 교무실을 들락거리면서 그 선생님이 나에게
가을날의 갸냘픈 코스모스 같다는 말에 그 이후부터 지금 마흔한살이 될때 까지도
가을날의 길가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코스모스를 볼때마다 그 잘생긴 국어선생님을 떠올린다.
키만 크고 뻣뻣하고 말라빠진 나의 외모를 보고 "마른장작" 이라고 별명을 지어주신
체육선생님하고는 비유 자체가 다른 그 선생님을 그렇게 혼자서 오랫동안 사모했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런 감정 또한 학년이 올라가면서 그 선생님의 대한 기억은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그 선생님을 향한 내 순정이 나의 첫사랑이었을까?
나이 마흔 한살에 나에게 첫사랑이 누구였는지, 얘기 해달라고 묻는 큰딸의 질문에
문득 지나간 나의 가슴을 설레이게 하던 첫사랑이 누구였는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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