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싸움의 증거 자료로 사용되던 우리집 가계부

2010. 5. 28. 06:00★ 부부이야기

 

2000년 5월 28일 (일요일)

' 남편 조기축구 외출, 새벽 02:30분 상계동에서 김** 만남,

' 시母님 보험료 송금, 시父 친구자제분 결혼식 참석(휘경동)

' 여고 친구 명희의 전화 연락 받음, 이모댁 가서 열무김치 가져옴

' 태릉시장에서 보미 원피스 한벌 구입.(15,000원)

' 저녁 김치찌게와 함께 소주 한병 혼자 비우는 남편.

' 본인은 중독 아니라고 했으나, 내 판단으로는 알콜 중독 같아 보임.

' 어제 마신 술로 종일 집에서  뒹구는 남편 - 밥돌이로 보였음

' 보미와 목욕탕 다녀옴(둘째 임신 3개월차 체중은 45키로인 내 체중)

 

그러했었다. 나에게 있는 가계부 13권중(1999년도 가계부 분실) 대부분은 이런식으로 그날 그날 우리집

수입 지출이 철저하게 기재 되어 있으며 남편과의 모든 일들이 철저하게 기록으로 남겨져 있다.

그 짓을 나는 결혼 10년이 넘을때까지 지치지도 않고 끊임없이 집착하면서 남편의 일거수 일투족을 기록으로 남겨놓는 아내였다.

10년전인 2000년도에 나는,  작은아이 혜미를 배속에 임신한지 3개월차에 접어든 임산부였으며,

임신 기간 동안 까탈스럽지는 않는, 순한 임산부였으나 원래 체중인 47키로에서  약간의 입덧이 있어서

45키로로 내려가 있는 상태였으며, 큰아이 보미는 3살이 되서 세발 자전거를 처음 탈즘이었던것 같다.

남편이 직장에서 금전적인 첫 손실 금액인 천만원을 메꾸고, 시댁이 안고 있는 빚 1100만원을 내가 나서서 가져와,  떠안고 있었고

시아버님의 당뇨로 인한 병원 입퇴원은 반복되고 있었고, 그로 인한 병원비 감당도 버거웟으며,

남편은 주류 영업에서  헤매고 있는 상태 였으며  이미 한차례의 술값으로 3개의 카드값  

5백만원이 내게 들통이 나서 큰 회오리를  한차례 치룬 다음이었던 해였다.

 

 

하루를 거르지 않고 술자리가 지속되던 엊그제 점잖은 목소리로 남편에게

타일렀다. " 이제는 몸 생각해서 술을 좀 줄여야 하지 않겠어요? "

지난주에 시작한 남편에게 높임말 사용하는것을 포기하지 않기에

아주 교양있고(?)  차분한 목소리로 타이르자 내 서방님이 근래 들어

늘 자기가 일때문에 마셨다면서 오늘은 편한 사람들 만나 한잔 한거라고

하면서 알아 듣기도 힘든 말들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근래 들어서 술자리가 너무 많았다는 내 얘기에 크게 반박을 하는 남편은,

언제 그랬냐면서 그놈의 증거 대라는 소리를 하신다.

그리곤 " 자기 가계부 있지? 찾아봐, 내가 최근에 친목을 이유로 술을 마신적인 언제였는지 찾아봐,

자기 가계부 보면 다 알수 있잖아! 증거 증거 대보라고, 뭐든 다 적혀 있는 가계부 찾아보면 되잖아.."

그랬다, 나는 3년전까지만 해도 그런 모든것들을 다 가계부에 적어 놓는 아내였고,

작은 다툼이 있을때도 뻑 하면 가계부를 남편 앞에 들이밀면서

남편과의 부부 싸움을 하면서 나에게 어떤 말과 행동들로 상처를 줬으며, 그날 무슨 일때문에 싸웠고, 싸운 시각까지 다 철저하게 기록을 했었다.

그런데 최근 3년간은 남편의 대한것들은 기록을 하지 않고 있었다. 아니 기록은 하고 있었으되 예전처럼 철저하게 기록을 안하고 있었다.

그만큼 이제는 남편에게 집착을 하지 않게 되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그걸 알고 있는 내 서방님은 그렇게 유치하고 비열하게 내 가계부를

증거로 제출하라고 큰소리를 뻥뻥 치는거였다. 그동안 아마도 이렇게 나에게 큰소리 치고 싶어서 어떻게 참았나 모르겠다. 유치한넘 ~ ㅎㅎㅎㅎ

아~ 옛날이여~ 라는 유행가 제목이 절로 생각 났다.

그랬다. 이제는 최근 3년간의 내 가계부에는 남편에 관한 기록들이 부족해서

증거가 없어서 나는 처음으로 남편 앞에서  말이 막히는 마누라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적어대는 것 좋아하고 철저하게 기록 해 놓는것 좋아하고, 증거 좋아하고, 부부싸움 할때마다 과거의 남편이 나에게 했던 말들과 행동

그리고 수없이 남발했던 각서들과 공증 받은 각서들까지 차곡차곡 쌓아 놓았던 마누라였던 나, 그런 내 앞에서는 입이 열개라도

할말 없던 남편이었는데 이제는 최근 기록 하는것을 게을리 하고 나니 그런 증거들이 없어서 가끔씩은 이렇게 남편이 유치찬란하게

나오면은 가계부를 들이 밀수 없는 상황이 오는 날도 있게 되었다.

아마도 내 사랑하는 서방님이 옛날, 그 지옥같은 시절로 돌아가서 내가 다시금 모든 일거수 일투족을 철저하게 기록을 해서

아무라 사소한 다툼이라도 내가 한마디 하면서 기나긴 말도 필요  없이, 남편이  나에게 했던 만행(?) 들과 망언들이 기록되어

있는 증빙 서류 앞에서 꼼짝 못하고 싶어지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