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하는 것에 익숙해져가는 부부의 모습을 본다.

2011. 6. 2. 11:42★ 부부이야기

 

 

서방님이 술을 드시고 늦게 들어오셔도 화를 내거나 잔소리를 전혀 하지 않던 아내였던 적이 있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버스 정류장까지 마중을 나가서 눈비를 맞아가며 새벽 귀가를

하는 서방님을 맞이하던 것을 한 번도 거르지 않던 참한 새댁이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저 멀리 비틀거리며 걸어오는 서방님의 모습에, 내 얼굴에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미소가 절로 번지면서

그런 흐트러진 서방님의 모습이 너무 짠해서 훌쩍이던 착하디 착하기만 했던 아내였던 적이 내게도 있었다.

회사일이 잘못되서 결혼 1년즘후에 천만원이라는 돈을 서방님이 메꿔야 했을 때도 돈이 아깝다는 생각은 전혀 안 들고,

그 일로 서방님이 얼마나 고민하고 힘들어 했을지에 더 가슴 아파하기만 했던 아내일 때가 있었다.

남편 월급 98만원에서 50만원을 아버님 병원비로 대드리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서방님이 하지 못한 병원에서 먹고 자면서 아버님의 병수발을 하면서도, 서방님 마음이 아플까봐

그것만 더 걱정하던 순애보적인 사랑을 하기만 하던 착한 아내로 살던때가 내게도 있었다.

그 모든 노력을 하고도 알아주지 않는 어머님으로 인해 가슴 아파하면서도 그걸 남편에게 티내지

않고 참았던, 그야 말로 전형적인 멍청하고 착한 척 하는 아내로만 살던 때가 내게도 있었다.

과음으로 속이 쓰린 서방님이 빈 속으로 출근하려고 하면, 맨발로 뛰어가서 국물에 밥이라도 말아서

현관앞까지 쫓아가서 서너숟가락이라도 억지로 남편 입에 넣어 먹이던 새댁으로 살던 때가 내게도 있었다.

모든 것을 남편 위주로만 생각했으며, 모든 것을 남편에게 맞춰 살려고만 했던 적이 내게도 있었다.

 

 

 

 

잦은 술자리, 매번 이른 귀가를 하시는 서방님이 들어와도 등 돌리고 자는 척 하는 아내가 되었다.

어렵게 청한 내 잠을 깨우는 새벽녘의 서방님의 전화에 짜증을 내고, 차라리 밖에서 자고 들어왔으면 하는 마음을 갖기도 한다.

쓰린 속을 부여 잡고 출근을 하던지 말던지 신경을 안 쓰고,

해장국과 밥 그리고 양파즙은 달여놓되, 그걸 남편 손에 들려주거나, 억지로라도 먹이는 짓은 안하는 아내가 되었다.

어머님의 돈에 관한 징글징글한 한숨어린 이야기에도 귀를 닫고, 나보다 더 부자시면서 왜 저러실까?

하는 마음만 갖고, 그런 어머님의 걱정따위는 거의 하지 않는 며느리로 살고 있다.

그보다는 당장에 내 두 딸들이 보내달라는 피아노나 영어학원에 못 보내준 것이 더 미안할 뿐이다.

한 지붕 아래에서 살고 있으되, 맨 정신으로 얼굴을 마주 보는 날은 주말뿐이고

그런 날에도 자신의 건강을 위해 축구를 하고 그 회원들과 또 가끔 술자리를 하고 돌아오는 서방님,

아이들이 일어나기 전에 출근을 하고, 아이들이 잠든 후에 귀가를 하는 날이 대부분인 서방님을

돌 처럼 보고, 서로가 필요한 말도 낮에 아주 가끔씩 전화로만 해결하는 아내의 모습으로 살고 있다.

네 식구이되, 세 식구로 살고 있는 우리 가족의 모습에 익숙해지고,

아주 가끔씩 남편과 함께 하는 외식이나 나들이에 기뻐하는 아이들의 모습만으로 만족하며 살고 있다.

침묵하는 것에 익숙한 남편의 성격을 나도 닮아가고 있음을 요즘 들어 느끼고 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으되, 한 가족이 두 가족으로 살고 있는 듯한 모습에 나도 익숙해져가고 있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