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로도 오랫동안 후유증을 남기는 상처

2011. 6. 1. 06:00★ 부부이야기

 

 

남자가 없는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인지, 나에게  남자라는 존재는 조금은 어렵고 두려운 대상이었다.

아빠도 없었고 오빠나 남동생이 없어서였는지 어려서부터 남자란 내게는 뭔가 불편하고 어려운 존재였다.

그런 내게 학창시절의 안 좋았던 남자들의 대한 단편적인 몇 개의 기억들과,

20대때 버스와 전철안에서, 우연찮게 경험하게 된 몇 몇의 변태적인 남자와의 부딫힘으로 인해

나는 남편을 만나기 까지, 세상의 모든  남자를 두려워 했으며,

그런 내 마음을 들키기 싫어서 더 쌀쌀맞고 차가운 모습으로 남자들을 대했는지도 모른다.

 

 

사춘기시절을 나와 단 둘이 사시던 할머니가 늘 그런 말씀을 하셨다.

내가 자란 시골 마을에서 여학생 성추행(그때는 강간이라고 했다)사건이 있을 때면

가해자인 남자를 욕하는 게 아니고, 다 여자 탓이라고만 하시던 할머니의 모습이 생각난다.

왜 가스나들이 밤에 늦게 싸돌아다니냐고,  밤늦게 싸돌아다녀서 그런 일을 당했으니 당해도 싸다는  식으로~

그런 일을 당한 여자는 인생 끝장 난 거라고~~(결혼전에  순결을 잃으면 죽어도 할 말 없다는 할머님이셨다)

그런 할머니의 모습에 화도 내고, 짜증을 내면서 대드는 반항을 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은연중의 그런 가치관이 내 머릿속에 깊이 박혀 있게 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학창시절, 처음으로 브래지어를 착용하면서부터 여고를 졸업할 때까지 브래지어는 두 개씩 착용하고 다녔고,

속바지도 절대로 빠트리지 않고 입고 다녔으며, 짧은 치마나  반바지 따위를 입고 다닐 엄두는 내지도 못했으며

겨울에는 내의도 두 벌씩 입고 다녔고,  양말까지 늘 두 컬레씩 신고 다니는 여학생으로 살았다.

가슴이 절벽인 것이 편했으며, 성적으로 매력이 없는 내 깡마른 몸매도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었다.

일찍이 다른 친구들보다 연애소설을 비롯해, 남자 여자의 신체적인 이론 교육에 통달을 했음에도

남자와의 교제에서는  여자가 매사에 조심을 해야 하고 모든 마지막 책임은 여자가 져야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 이유로 나는 동네 남자동창이나 오빠 할 것 없이 아는 체하며 눈인사 하는 것조차도 하지 않고 살았다.

 

 

그러던 열아홉살이던   고3 이던 시절, 자율학습을 마치고 돌아오는 밤10시가 넘은 시간에

칠흑같이 어둔 밤길에 내 손목을 잡아 비틀던 술냄새를 풍기던 까까머리의 군인인지 방위인지

모를 남자와의 짧은 부딫힘만으로 나는 그 자리에서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었다.

" 저... 그게 아니고요..." 라는 술 냄새 풍기던 그 남자의 목소리는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당시 열아홉 여고생인 내게는 전혀 모르는 남자에게 손목이 잡혔다는 그 사실과,

 그와 함께 풍기던 술냄새 만으로도, 그 자리에서 혀 깨물고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었다.

잡힌 손목을 뿌리치고 죽을 힘을 다해 집으로 달려와서도 떨리는 가슴은 진정이 안되었고

한 방에서 자던 할머니에게조차 그 말을 못하고 밤새 울던 그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래서 술 하면, 그 날밤의 두렵던 기억이 떠 올라서 치를 떨면서 싫어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 한 번의 기억으로, 남자들의 대한 두려움이 가시지 않던 내가, 스물살때부터 시작 한 서울생활에서

버스안과 전철안에서  내 등뒤에 서서 지 놈의  몸이되  조절를 못하는 음탕한  변태들을 몇 차례 경험하고 나니

이 세상의 모든 남자들이 다 그렇고 그런 놈들로만 보였다.

거기다가 그런 비정상적인 짓꺼리를 하던 놈들의 겉모습은 아주아주, 지나치게 멀쩡하게 단정해보이던

평범한 남자들이었기 때문에 나의 남자들의 대한 이미지는 쉽게 좋아지지가 않았다.

그래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할 때까지,이 세상의 남자들은 다 강간범이 될 수 있는 놈들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 나의 생각을 고치기 위한 노력으로 스무살부터 시작 된 남자들과의 수 많은 만남에서도, 남자의 대한 근본적인 두려움을 떨치지 못했다.

내 남편이 연애시절, 내게 먼저 어줍찮은 남자의 욕정내지 욕망을 겉으로 드러냈다면 나는 결코

남편과 결혼을 하지 않았을뿐 아니라 지금까지도 밤이면 허벅다리를 바늘로 찔러가며 초라한 싱글로 살고 있었을런지도 모를 일이다.

 

 

 

 

 

두 딸들을 키운 엄마로써, 나는 늘 기도하게 된다.

우리 딸들에게는 절대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혹시라도 그와 비슷한 일을 겪게 된다 해도, 그런 작은 사고때문에  세상 모든 남자들을

오랫동안  경계 하던  나 처럼은 살지 않게  엄마인 내가 가르쳐 줄 것이다.

그런일은 절대로  여자 때문이라는 아니라는 것과, 몇 몇의 비정상적인 변태들만 그런 짓꺼리를 하는거라고~

요즘에는 여자애들이 더 드세고 되려 남자애들을 가지고 논다는 말을 하는 엄마들을 보기도 한다.

그래서 피해자가 되려 가해자가 되는 경우가 있으며,

여학생이 먼저 꼬리를 쳤네 마네하는 말을 하는 부모들도 가끔씩은   보게 된다.

내가 아들만 둘 있는 엄마였다면, 어떤 식으로 내 아들들을 성교육을 시켰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내가 여느 여학생보다는 기질적으로 조금은 더 예민해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

사춘기 시절 성의 대한 안 좋은 기억은 그게 하찮은 거라도  그 후유증은 생각보다 오래 갈 수 있으며,

그로 인해 이성에 대한 이유 없는 두려움과 거부감을 오랫동안 갖게 할 수도 있다.

이런 나의 사고방식은 남자가 아니라서, 혹은 현재 딸만 둘을 키우는 엄마로써의 생각의 한계일 수도 있다.

날로 아이들이나 청소년의 대한 성범죄가 늘어가는 현실에서 부모로서 자식들에게 가르치는 성교육의 중요성이

점점 더 중요하다는 것과, 그런 일에 우리 부모들이 대처하는 태도에 따라 우리 아이들은 성의 대한 가치관이

달라 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그런 부분에서 좀 더 책임감을 느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