맏이가 아니라 사람노릇하고 사는것

2005. 2. 11. 11:14★ 나와 세상

    밀린 빨래, 쏟아지는 졸음, 그리고 허리의 통증, 이런것들은 늘 명절이 지나가고 나면 내게 찾아오는 손님들이다. 오늘 오후엔 다시 시장을 봐서 전을 3가지 만들고, 나물도 3가지 무쳐놔야한다. 물론 식혜와 고기산적과 두부전도 만들어야할것이다. 내일은, 작년에 돌아가신 나의 할머니의 첫 기일이다. 혼자 계시는 작은아버지께서 할머니 제사준비를 하셔야 하기에 일부러 전화를 해서 이번엔 내가 제사음식 준비해갈테니 작은아버지께서는 과일과 유과들이나 그밖의 제사음식 시장을 봐두시라고 당부 말씀을 드렸다. 시골까지 다녀온 큰오빠부부에게(엄마 재혼하신 집 큰오빠) 안부전화를 하고 친정 이모댁에는 남편과 함께 찾아가 인사를 했다. 고모댁에는 새해인사를 전화로 대신했다. 내가 친정에서도 맏이라는 것, 잊지 않고 싶다. 역시 나는 그 맏이라는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큰오빠 부부, 나의 전화한통에 무지 고마워 한다. 이모부님과 이모님, 내겐 늘 고마워 하신다. 고모님도 역시 맏이는 다르다라는 칭찬같은 말씀도 하신다. 할머니가 요즘 꿈에 가끔 보인다. 나의 중요한 사춘기를 나와 보내주시고, 나에게만은 한없이 너그럽기만 하셨던 할머니와 시골에서 지낸 나의 어린시절이 요즘 들어 문득문득 날 추억에 잠기게 한다. 텃밭에 심은 오이와 상추쌈을 좋아하던 날 위해 겨울이면 안방 아랫목 이불밑에 데워둔 밥주발과 함께, 그 시대에 흔치 않던 비닐하우스에서 구한 상치와 오이를 같이 준비해서 상을 차려주셨던 나의 할머니, 시골에서 남의집 상가집이나 잔칫집에 다녀오신날이면 몸빼바지에 숨겨오신 약과와 떡을 동생들 몰래 나에게만 주시던 할머니의 그 험한 손등이 자꾸 생각이 난다. 푸세식 화장실에 들어가는 할머니를 따라 들어가, 볼일을 보시는 할머니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할머니 볼일이 다 끝날때까지 기다리던 나의 어린시절의 기억이 요즘 들어 자꾸 떠오르는것은, 시간이 갈수록, 나의 시집살이라는것을 겪을수록 할머니 살아생전에 자주 찾아가지 못한 후회스러움과 죄송스러움 때문일것이다. 등골 빠지게 날 그리 귀여워 하시면서 한없이 주기만 하셨던 할머니에게 손수 내가 직접 밥을 지어드린 기억이 없기때문에, 그런 밥상을 나의 남편과 남편의 어머니에겐 그리도 자주 차려드리고 있는데 정작 날 사랑으로 키워주신 할머님에게 단한번도 차려준 기억이 없기 때문일것이다. 내 앞에서 내 엄마 험담을 단한마디라도 하시면, 먹던 밥상을 엎어버리던 그 싸가지 없던 날, 그래도 큰손녀딸이라고, 두 동생들과는 확실하게 차별을 하시면서 이뻐해주시던 나의 할머님이셨다. 그런 할머니의 제사를 지내시게 된 작은아버지를 생각해도 난 마음이 안 좋다. 남편에게 작은아버지라고 소개하기도 부끄러운 모습으로 살고 계신다. 술때문에, 나약함때문에 이런저런 문제로 나의 작은아버지도 현재 내게 자랑스러운, 평범함도 아닌 모습으로 지내고 계신다. 이미 오래전에 도망간 작은엄마, 오래전에 집을 나간 딸, 스물몇살이 되어서도 아무런것도 자리잡혀 있지 않는 아들, 아직도 열몇평되는 좁아 터진 몇십년묵은 오래된 빌라전세로 한달 벌어 한달 버티고 살고 계시는 나의 작은아버지! 여직도 술을 끊지 않고 계시는 작은아버지를 이젠 나도 잊고 살고 싶다. 내 남편에게 유일하게 내 친정가족들중에서 소개하기가 당당할수 없는 분으로 존재하고 있다. 그런 내가 나쁜년이라 해도 난 솔직히 내 친정 식구들중에서 가난한것때문이 아니라 그런 상식에서 벗어난 삶을 살고 있는 어른이라는것이 남편에게 말하기가 부끄럽고 구차스런게 솔직한 마음이다. 내가 훗날 동생들에게, 동생들 아이들에게 이모라고, 언니부부라고 소개하시도 부끄러운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봐서 겁이 난다. 그 작은아버지도, 어린시절 나에겐 세상에 둘도 없이 자상하고 좋은 삼촌이었다. 명절이면 늘 나와 동생들 새옷을 사들고 오셨고, 아버지 산소에 성묘를 갈때에도 내가 중학생이 될때까지도 등에 엎고 다니시던, 어린 조카들에겐 둘도 없이 자상한 그런 삼촌이셨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한번인가 뵐때도 작은아버지는 나를 보고 어린시절 조카 보듯히 하셨고, 특히나 내 남편에게 거북스러울정도로 친근하게 구시던 술취한 모습을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나의 친정 어른분들께 나는 분명 그렇게 동생들과는 비교가 되게 차별화된 대우를 받으면서 자랐다. 그것은 내 아버지가 집안에서 큰아들이었고, 그런 아버지에게 아들이 없는 우리집에서 나는 맏이였기 때문이었다. 집안의 족보에 여자로서 유일하게 이름이 올라가 있다는 이유로, 딸이지만 친정쪽에서는 어른분들은 내게 많은 이런저런 기대를 하셨을것이다. 다 그런게 무슨 소용이라고 그분들이 그랬는지 난 모르겠지만, 그런 사고방식을 가진 어른분들을 보면서 나는 나도 모르게 그 맏이라는 콤플렉스에 걸린 사람으로 자라났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남편이 장남이라는 이유만으로 무리해서 맏며느리라는 굴레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지내는지도 모른다. 자리를 어느정도 잡고 살고 있는 내 바로 밑에 동생, 벌써 혼자 되서 살고 있는지가 4년째에 접어들고 있는 막내, 그 동생들과 함께 찾아가도 늘 고모들과 작은아버지 모두는 맏이인 내가 제일 잘살아야 한다는 말씀을 지금도 하신다. 그래야 집안이 바로 선다는 말씀도, 동생들은 아무리 잘살아도 소용없다고... 동생들과 함께 친정집안 경조사에 참석을 하면 난 자리에 앉아 있는 경우가 많고 동생들이 일은 더 하게 된다. 어쩌면 난 그런 친정집에서의 맏이로서의 대접이라 할수 있는 그런 기분에 친정 경조사엔 짜증이 나지 않는것인지도 모른다. 동생들도 언니가 큰딸이니까 제발 좀 잘살라고 입이 닳도록 한다. 그래야 자기네들도 힘을 얻는다고... 이번 명절 차롓상도 두동생이 준비를 했다. 막내는 내일 친정엄마에게 내려가기로 했다. 둘째는 그런 작은아버지 집에 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 둘째도 작은아버지 사는 모습, 자기 남편에게 별로 보이고 싶어하지 않는다. 나도 마음같아서 그런 마음이다. 하지만 엄마보다 더 오랫동안 키워주신 내 할머니 첫 제사에 나는 안 갈수가 없다. 두 동생들은 나처럼 할머니에게 정이 없다. 일찍부터 서울 올라와서 지냈고 어린시절에도 할머니는 동생들에게 그다지 애틋한 할머니가 아닌 모습이셨다. 난 그저 맏손녀라는 이유로 할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랐다. 시아버님이 묻혀 계시는 곳에서 1키로도 떨어지지 않는곳에 뿌려진 내 할머니를 저번에도 찾아가보질 못했다. 시어머니와 시누가 함께였기 때문에, 돌아오는 길에 있는 내 할머니 성묘를 다녀오지 못한게 내내 걸린다. 아, 나도 잘살고 싶다. 맏이라서 아니라 그냥 내가 잘살아야지만 내 주위 이런것들도 챙기면서 내가 생각하는 사람 노릇을 할수 있을것 같기 때문에, 나는 그 사람노릇 하고 사는 재미에 사는 사람인것 같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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