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부터 나는 집에 있으면서 회사에 나가지 않았다.
첫날은 일요일이라서 남편과 아이들과 지내르랴 그저 나의
휴무날 쉬는거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밤근무라서 낮에도 잠을 잤는데
낮에 잠을 자지 않게 되는것이다.
왜냐하면 그날 나는 밤근무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것을 되새김하게 되었으니까.
조금은 이상했고 조금은 어색한 그런 느낌이었다.
출근해야 하는 밤8시 30분이 되자 괜히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으며
새벽시간에도 몸은 피곤한데 잠이 오질 않고 시계만 보면서
아, 지금이 12시 40분이니까 하1, 상1 근무자들이 자러
들어갔겠지.... , 12시 마감을 했을거구~ 등등 영업소 그림이
그려지면서 그런 것들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너무 많이 나는 이곳 3교대 톨게이트 생활에 적응이 되어 있었나보다.
월요일부터는 계속 한의원을 다녔다.
목의 뻣뻣함과 쳇기 때문에... 침을 맞으면서 약도 먹었다.
가래는 삭혀 지고 목도 조금씩 풀어졌지만 늘 두통이 힘들었다.
그만두는날부터 다른일을 뭘 해야 하는를 걱정을 했었다.
그저 편한 마음으로 당분간은 쉰다고 했으면서 내 스스로
앞으로의 수입이 줄어든만큼 어디에서 절약을 해야 하나를
신경쓰면서 그렇게 불편한 마음으로 있어서였는지 속이 편칠 않았다.
그래서 날 보고 예민하다고, 까칠하다고 사람들이 하나보다.
이곳 톨게이트를 그만두고 나서 내게 남은것은 다이어리
4권과 내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는 수십명의 동료들의 전화번호인가보다.
주임님들과 대리님들이 으례적으로 얼마동안 병과 내서 한달까지
쉬게 해줄테니 그만 두지는 말라고 말해줬지만 그또한 나의
마음을 잡아주진 못했다.
근무번호가 18번이었던 나는 지난주 화요일부터 사무실의 3명의
대리들과 4명의 주임님과 사무장님, 그리고 나보다 나이 많은 동료 언니들중
사십넘고 내가 편하게 생각하고 마음이 가는 언니들에게 편지를 썼다.
나의 톨게이트 생활이 기록되어 있는 다이어리 4권을 뒤적거리면서 2007년
부터 시작해서 그만두는 2009년 1월 31일중에서 그녀들이 기록되어 있는 부분과
그날의 식당메뉴와 영업소의 근무일지 같은 기록도 함께 편지와 동봉했다.
추억을 더듬는 마음으로 나는 그렇게 15명의 옛동료들에게 A4용지 2매를 가득
메운 편지들을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열심히 썼었다.
그리고 제일 먼저 한게 인터넷 라디오 SBS파워 FM 프로에 간식 신청을
불암산 영업소 이름으로 사연을 올리는 일이었다.
뜻밖에도 사연 올린 바로 다음날 담당 작가가 전화가 왔고
아침 7시에 전화연결을 해서 DJ 이숙영씨와 재미나는 인터뷰를
해야 한다고 해서 떨리는 마음으로 많이 버벅거렸지만 무사히 마치고
그로인해 나는 사무실에서 여러번의 전화를 받았다.
구리 톨게이트 소장님이 그 방송을 출근하면서 우연히 듣고
우리 소장님에게 직접 전화를 하고 다른 영업소 관리자분들이 몇몇이
그 방송을 듣곤 사무실로 안부 전화를 많이 하고 아마 그로 인해
우리 영업소 입지가 높아졌나보다.
그전에도 그 라디오에 사연 한번 나가고 나면 고객들이나
다른 영업소의 관리자들의 부러운 전화를 받았던가보다.
이번엔 10만원권 놀부보쌈 외식상품권과 한뿌리 음료가
우리집으로 오나보다.
작년에도 피자 티켓과 한뿌리 4박스와 커피 등등을 받았는데 그것들은
전부 영업소로 와서 전부 동료들과 나눠 먹었는데 이번엔 내가
가질까 생각중이다.
나의 오지랍은 그렇듯 퇴사를 하고도 계속되었고 지난 주말에
시댁을 가는길에 들린 나의 전 근무지에 내가 입었던 세탁을 마친 유니폼을
갖다주면서 근무자들과 대리와 주임들에게 전할 편지들도 사무실에서
봉투를 얻어서 각자의 이름을 써서 전달을 했다.
얼마만에 받아본 편지인지 모르겠다고 내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내준 대리와 언니들로 인해 나는 허영스러운 행복감을 만끽했다.
그런면에서 나는 참으로 허영스러운 사람인듯 싶었다.
사무실에 들러 근무자들에게 줄 술샘플들과 핸드크림, 그리고 2월에
있을 점검때 사용할 1회용 마스크와 빅사이즈 검정면티셔츠 4벌도
함께 대리님에게 헌납을 했다.
어차피 우리집에 있어봤자 사용하지 않을 물품들이기도 했지만
끝까지 나는 회사에서 좋은사람, 사람냄새나는 정많은 근무자로
남고 싶은 그런 허영심의 발로에서 나는 그런 행동을 했다.
어제도 회사 언니 두명이 우리집 근처로 와서 비싼 저녁을
사주었고, 그만두기 며칠전에도 근무자들 9명이 나의 송별식을
해준다면서 초번 근무를 끝나고 분위기 있는 한식집에서 식사를 함께 했다.
그리고 내일은 주임님중 한분이 밥사준다고 회사근처로 나오라고 한다.
내가 그만두고 나니 회사 화장실 쓰레기통과 탈의실 휴지통이 넘친다고,
그걸 치우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그럴대마다 내 생각이 너무 많이 난다면서
나의 빈자리를 너무 크게 느낀다고 말해주는 언니들을 어제 만났다.
나도 여기 톨게이트 근무는 많은 힘든일들이 많았음에도
정이 너무 많이 들었다.
마지막 근무날이 중번 교대였는데 퇴근하면서 대리님과 주임님이
섭섭해서 어쩌냐고 마지막 악수를 청하셨을때는 가슴이 울컥해서
눈물이 날뻔 했었다. 너무 그리울것 같았다.
다시 이 3교대 일은 하기 싫치만 지나 모든것들이 나에겐 커다란
추억들로 자리잡을것 같았다.
시어머니는 만세를 부르고 싶다고 하셨다.
보름이라고 오곡밥 먹으러 오라고 하셔서 지난 주말에 다녀왔다.
이젠 남편의 차를 얻어타지 않고 시댁 가는것쯤은 일도 아닌것이 되었다.
차를 운전하다보니 이젠 버스 타고 다니는 일이 쉬 피곤하게 느껴진다.
여전히 주차와 후진은 완전초보인데도.......
차를 팔아야지 하면서 무슨일을 할지 몰라 망설이게 된다.
하지만 아마도 3월달엔 팔아야 할것 같다.
작은아이는 너무 좋아하는데 벌서 큰아이는 나의 퇴사를 그리 달가워
하지 않는 모양새로 요즘 친구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지고 있다.
지금까지도 나는 잠을 많이 잔다. 이젠 남편의 귀가하곤 상관없이
밤10시가 넘어가면 눈꺼풀이 무거워지고 아이들 아침 챙겨 먹이고 나면
다시 두어시간 또 자고 그때서야 일어난다.
그제부터 두통이 사라지고 나서부터 나는 비로서 쉰다는 기분을
만끽하면서 하루하루 바삐 보내려 애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