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가면서 주변의 아픈 사람들이 늘어가는것을 실감한다.

2010. 6. 14. 06:00★ 나와 세상

 

 

 

 

                                                            올해 아흔 한살 되신 외할머님께서 가실날이 멀지 않는듯 하다고,

나와 남편보고 외할머니 장례에 참석할 준비를 하라고 했다.

아직 정신이 온전하실때  더보고 싶으면 내려오라는 큰외숙모님

말씀에 친정엄마는 지금 외할머니 곁에 계신다.

7년전즘에 돌아가신 친할머니의 부고 소식을 작은아버지를 통해 들었을때의

기억을 떠 올려 보면서, 머지 않아 외할머니의 부고 소식을 전해 듣게 될거라는

생각을 하니 씁쓸한 느낌을 받는다.

내 할머니와, 내 외할머님이신데도 이리 나는 담담하게 죽음을 받아들이는 모습에

내 자신이 참 정이 없는 손녀딸인가 보다 하는 죄책감을 갖게 된다.

눈물 많고 정이  헤프고, 오지랖이 넓디 넓은년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많은 죽음들과, 남의 불행에 눈시울을 적시던 나였음에도, 외할머니의 죽음을

기다려야 한다는 소식에도 실감도 안나고, 웬지 슬프기 보다는 그로 인해

내 친정엄마가 얼마나 아파 하실런지 그것이 더 걱정이 되었다.

 

 

 

저번에 뇌경색으로 쓰러지신 이모부님이 또 다시 쓰러지셨다는 소식을 접했다.

토요일 아침 7시경에 이모님의 전화를 받고 집안정리를 하고 나서 집을 나섰다.

2시간 넘게 버스와 전철을 갈아타고 도착한 하계동의 을지병원.

핼쓱한 얼굴과 화장을 하지 않는 얼굴에 밤새 한숨도 못주무신

올해 62세 되신 고운 이모 얼굴이 너무 안되어 보이셨다.

올해 72살 되신 이모부님은 전보다 더 안색이 안 좋아보이셨고 의사 표현을

하시는데도 어려움이 있어 보이셨다.

이모부와 이모님은 늘 가까이 살아서, 남다른 정이 있어서인지  이모님과 이모부님의

이번일로 앞으로의 두분의 생활에 어떤 변화가 있게 될지부터가 걱정이 되었다.

내가 알고 있는 분들중에서 가장 근면 성실하고 가정적이고, 정말로 생활력이

강하고, 자존심이 강하신 이모부님은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최고로 열심히 사신

분이셨으며 완고 하시고 깐깐하셨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그런 성품을 가지신 분들을

더 좋아해서인지 이번 이모부님의 두번째 병문안으로 마음이 너무 좋칠 않았다.

늙은 나이에 결혼을 하셔서 칠순이 넘어서 첫손주를 보신 이모부님이셨다.

자식도 대학 재학시절에 결혼을 시킨 아들 딱 한명밖에 없으신 이모부님이셨다.

담배도 안피셨고, 술도 한달에 한두잔 정도나 하실까, 그리고 쉬는날이면 이모님

손을 잡고 뚝방길 산책도 하시고, 사회생활을 하는 남자로서는 어쩌면 발을 넓히진

못했을 모르겠지만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는 최고의 남자였다고 생각되어진다.

칠순이 넘은 나이에도 이모님을 늘 사랑하셨고, 세상에서 이모님 말곤 여자라고는

모르고 사신 그런 분으로 알고 있다.

점점 주변 어르신들분들의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는 소식을 접하게 되는듯 하다.

생후 6개월정도 된 갓난아이를 안고 시아버님을 찾은 며느리 되는 앳된 며느리를

보니 왜 그리도 안스러운지, 괜히 그 며느리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10월이면 출산휴가를 마치고 복직을 한다는데 ..........

늘 어린애 같기만 했던 **가(이모아들) 이모부님 소변줄을 빼고 이모부님을 부축하고

눕혔다 하는 행동을 보면서 쟤가 언제 저렇게 컸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는 사이사이 지 딸내미를 보면서 웃어주고 안아주는것도 잊지 않는 **도

이젠 30에 접어든  한 집안의 가장이 되어 있었구나를 새삼 느꼈다.

정확하지 않는 발음으로 와줘서 고맙다고 손을 잡으시는 이모부님의 모습에

울컥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금요일 그렇게 병문안을 다녀와서 일요일에 보미, 혜미와 남편과 함께 다시

병문안을 다녀왔다. 훌쩍 큰 보미, 혜미를 보고는 반가우시면서 선뜻 손을

내밀지 못하시는 이모부님을 보고 보미와 혜미가 손을 잡아 드렸다.

손한번 잡아드리는것만 해도 좋아라 하시는 이모부님은 이미 할아버지 모습이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