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0. 22. 06:00ㆍ★ 부부이야기
월요일날 밤에 너무 심하게 달려서 화요일 새벽에 들어오신 술이 덜 깬듯한
서방님의 하룻동안의 운전기사 노릇을 해주는 선심을 썼었다.
화요일엔, 늦은 출근을 해서 외부 손님들을 만나는 일들과 서류들을 떼러 여기저기를 다니는 일만 하고
사무실에 들어가서 사장님의 결재만 받으면 된다는 이야기에 서너시간이면 끝날 줄 알고 대리 운전비를 받지 않고,
내 한몸, 서방님을 위해 희생해주리라 결심 하고 따라 나서는 선행(?)을 베풀었다.
제일 먼저 들린 곳이 구리시, 그 다음이 서울 동대문구 신설동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서방님이 손님을 만나는 동안의 40여분을 차 안에서 혼자서 죽치고 기다려야만 했었다.
그렇게 남편을 기다리는 동안 쓸데없는 시간을 죽이고 있는 내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했었고,
새삼스레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개인 운전기사라는 직업의 대해서도 생각 해봤다.
참 죽을 맛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설동 로타리에서 죄회전 하는 방향으로 50여미터 간 다음, 무슨 호프집 앞에서 그렇게 나는 40 분동안을
서방님이 일을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결혼을 하고 나서는 늘 나만 서방을 기다리는 일만 반복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술마시는 서방님 기다리지, 이렇게 운전기사 노릇 하면서 또 서방님을 기다려야 하는 내 신세야...!
연애시절에는 단 한번도 내가 지금의 서방님을 기다려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은데.............
남편의 대리운전을 자주 하는 나를 사람들은 내 운전솜씨가 좋다고 착각들을 한다.
하지만 나는 운전할 때는 절대로 핸드폰도 받지 못하는, 앞으로 직진만 하는 주행에만 익숙한
여전히 초보 운전자에 지나지 않는 아줌마로 존재하고 있다.
주차에도 버벅대고, 절대로 운전으로 밥 벌어 먹는 일은 내 인생에 없을 것이고,
평생을 운전에 있어서만은 한없이 겸손한 사람으로 살 것 같은 느낌을 갖고 있다.
신설동까지 가기 까지 청량리와 제기동의 경동시장을 지나쳐 가면서 오래전 그 곳의 모습과 비교 해보기도 했었다.
조수석에 앉아서 열심히 울려 대는 핸드폰을 받고 계시는내 서방님, 마누라가 운전기사 노릇 해준 게 고마운지
말하지도 않았는데 내 카메라로 열심히 여기저기 사진을 찍어주시는 친절을 베풀어 주셨다.
마누라가 운전해주니 너무 편하고 좋다고 하면서, 내게 고맙다는 말과, 매일 이렇게 함께 다녔으면
좋겠다는 진심인지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남편을 보니, 웬지 마음이 짠해졌었다.
집에서 구리까지 40여분이 소요 되었고, 구리에서 신설동 까지는 30여분 그리고 그 곳에서 사람을 만나는 데
40여분이 소요 되었으며, 신설동에서 다시금 부평역을 향해 출발을 했었다.
부평역까지는 1시간 30분정도의 시간이 소요 되었다. 아마도 서방님이 운전을 했다면 그 정도는 안 걸렸을 것이다
내가 운전하는 내내 남편의 핸드폰은 끊임없이 울렸으며, 그런 남편을 보면서, 내가 없을 때는
저 많은 전화통화를 운전을 하면서 받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새삼 남편의 신상이 심하게 걱정이 되었다.
운전중에 핸드폰 통화 하는 것도 불법인데....말이다. 벌금도 있고..
남편에게 걸려 오는 전화는 대부분이 거래처 사장들의 대출을 부탁하는 것이 대부분이었으며,
거래처에 걸린 채권들의 관한 문제들로 직원들과의 전화통화에, 거래 조건들을 제시하는
거래처 사장들의 문의 전화가 빗발쳤다.
참 더럽고 구차스럽고, 별의별 인간들의 단상을 내 서방님은 많이도 상대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다시 한번 새삼 하게 되었다.
예전에도 물론 알고는 있었지만 이 날, 8시간동안을 남편을 태우고 다니면서 내가 느낀 것은
정말로 대한민국 수 많은 직업중에서 영업 직종에 있는 직업이 젤로 더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죽어도 영업 같은 것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되었다.
전화 상담으로도 충분히 끝낼 수 있는 상담이었음에도 회사 방침에 따라 1시간 30분을 달려서 도착한 부평역의
한 거래처 사장과의 면담은 1시간 남짓 걸렸던 것 같다.
하지만 앞으로의 남편의 회사와의 거래 여부는 거의 불가능 할 것으로 보여졌다.
그 동안 나는 생전 처음 가 본 부평역전 쇼핑물에서 건성으로 이것 저것들을 쇼핑 했지만,
원래가 쇼핑 자체를 즐기거나 좋아하는 성격이 아닌 나는 20분동안 억지로 돌아다니다가 쇼핑물 앞에서 앉아서 기다렸다.
멍 하니 앉아 있기가 그래서 괜히 서방님이 그 날 찍어준 어설픈 사진들을 보면서 삭제도 하고, 웃기도 하면서... 앉아 있었다.
그런 시간이면 나도 정말로 노트 북, 꼭 한 대 갖고 싶다라는 바램을 간절하게 하게 된다.
욕심이 너무 과하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리고 오후 5시가 되서야 부평역 다음 목적지인 서울 봉천동에 도착을 했고,
30여분 손님을 만난 서방님을 기다렸다가 오후 5시 30분이 되서야, 서방님은 그 날의
첫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나는 아침을 먹지 않으면 활동을 전혀 못하는 사람인지라
집을 나서면서 나 혼자 늦은 아침을 챙겨 먹었지만, 남편은 도저히 밥을 넘길 수가 없다고 해서
먹지 못하고, 차 안에서도 계속, 벌나무 끓인물만 딥다 마셔댔었다.
참으로 불쌍한 내 서방님이었다,
무엇을 위해 그리 술을 마시고, 무엇을 위해 하루의 첫 끼니를 오후 5시 반이 되서야 먹어야 한단 말인가?
괜히 울컥 했지만 남편 앞에서느 그런 티를 내지 않았다.
아직까지는 한번도 그런 적 없다고 말하는 남편의 모습이 더 안스러웠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 내 서방님은 이젠 운전에 좀 자신 좀 붙었어? 하고 웃으면서도 묻는다.
맛있다고 소문난 족발집이라고 마누라를 데려 간 내 서방님은 나보고 운전기사 노릇 하르랴 고생 했다고
족발, 많이 먹으란다..
그 날밤에 먹은 족발이 나의 그 날, 기사 노릇 해준 것의 대한 일당인 셈이었다. 19,000원의 계산서가 나왔다.
눈물나게 배가 고팠지만, 전날 술마시고 그 때까지 한 끼도 먹지 못한 내 서방도 있는데....라는 생각에..
정작 나는 그 날 저녁 식사를 맛있게 먹지 못했고, 남편에게 말하지 못했지만 그 날 먹은 족발은 얹히고 말았다.
그리고 절반 이상은 남은 족발을 싸들고 집에 와서 남편과 아이들이 먹었다.
그리고 오후 6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서울 봉천동에서 남편의 사무실을 향해 달렸다.
구리시 갈매동을 향해서... 그 때는 운전대를 남편에게 맡겼다.
하지만 도중에 자꾸 눈이 감긴다는 남편의 말 떄문에 도로변 갓길에 차를 세우고
다시금 내가 운전대를 잡고 남편 사무실까지 운전을 해서 밤 7시가 넘은 시각에 도착을 했다.
도로는 이미 어둠이 내려 앉았고, 한강 도로변의 가로등불들은 달리는 차안에서 보니 무지하게 아름답게만 보였다.
그런 내 옆에는, 피곤한 내 서방님이 미숙한 운전 실력을 가진 마누라를 믿고 잠이 들어 있었다.
왜 그런 모습에서 나는 머리가 아프고 온 몸이 피곤하면서도 가슴이 아팠는지 모른다.
그냥 그랬다.
뭐라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들이 마구 밀려 오는데, 그 느낌은 조금은 많이 서글펐다.
생전 그렇게 오랫동안 운전한 적이 없는 나로서는, 그 날의 7,8시간정도의 운전으로 뒷목이 뻐근하고
어깨도 아프고, 머리도 아프고, 온 삭씬이 다 쑤셨다.
얼마나 긴장을 하고 운전대를 잡았는지.....모른다.
사무실에 도착한 서방님은 나를 이리저리 끌고 다니면서 익숙한 얼굴의 직원들에게 인사를 시킨다.
그 날은 뵙기 힘들다는 남편의 사장님이라는 분도 뵐 수 있었다.
그리고 남편이 사장님이라는 분께 결재 서류 받으러 다녀 올 때까지 나는 무슨 사무실인지 모르는
방에 앉아서 열심히 블로그 답글들을 달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퇴근을 자처 한 남편과 함께 회사 문을 잠그고 마지막까지
운전대를 잡고 집에 돌아온 나는 저녁을 이미 먹은 아이들에게 양치질 할 것만
당부하고, 피곤에 지친 내 몸둥아리를 씻고 이불속으로 들어가 잠이 들었다.
올 10월달에 들어 처음으로 밤 10시가 되기전에 그렇게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너무너무 피곤하고 머리가 아프고 목이 매어서.... 그리고 수 많은 생각들을 뒤로 하고 잠을 청했다.
그 날, 하룻동안의 남편과의 동행은 나에게 많은 감정들을 느끼게 해 주었다.
'★ 부부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편이 사들고 오는 밤참의 메뉴가 다양해지고 있다. (0) | 2010.10.26 |
---|---|
어설픈 전업주부가 바라본 어느 부지런한 전업주부의 하루 (0) | 2010.10.23 |
내려 갈 때는 빈손으로, 올라 올 때는 양손 가득한 친정나들이 (1) | 2010.10.21 |
나는 얼마나 많이, 얼마나 자주 뻥을 치고 살고 있을 까? (0) | 2010.10.20 |
블로거의 필수품인 디카가 두 번째로 고장이 났어요 (0) | 2010.10.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