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차려준 밥상, 아내가 차려준 밥상

2011. 1. 29. 06:00★ 부부이야기

 

 

결혼을 하기 전에도 남편의 식성은 까다롭지 않았다고 한다.

김치 한 가지와 고추장만 있으면 되는 그런 아들이라고 했었다.

그런 어머님은, 우리가 시댁에 가는 날에는 큰 아들의 밥상을 직접 차려주고 싶어하시는 경우가 있다.

지금은 그런 것도 귀찮다고 애미 니가 차려줘라 하시지만 얼마전까지만 해도

손수 마흔살이 훨씬 넘은 아들의 밥상을 직접 차려주고 싶어하시던 그런 엄마였다.

밤12시가 넘어서 집에 들어와도 어머님은 아들의 저녁밥을 먹었는지를 늘 챙기셨다.

어쩌다가 저녁을 안먹었다고 대답하는 날에는 애가 닳아서 자정이 넘은 시각에도

밥상을 차려주면서 한술 뜨고 자라고 하시는 이 시대의 평범한 엄마의 모습을 갖고 계셨다.

 

휴일날 밥상을 차릴 때도 아들의 김치찌게 국그릇에 돼지고기가 얼마 들어있지 않으면

농담하듯이 " 애미, 너는 왜 보미애비 국에 고기를 이리 쪼끔 넣었냐?" 라는 말씀도 하셨다.

밤10시가 너머 입이 심심하다고 해서 밥상이라도 차리는 날에, 공기그릇이  가득 밥을 푸지 않으면

왜 이것밖에 안주냐고도 면박을 주기도 하셨다.

그리고 고기 반찬이 없는 밥상은 늘 허술하다고 그런 밥상을 받는 아들을 한없이 안스럽게 쳐다보셨다.

 

 

 

 

 

 

 

나의 음식솜씨가 그다지 좋치 않는 이유중의 하나가 남편의 소탈한 식성때문이기도 하다.

늦은 밤에 귀가한 남편이 밥상을 차려달라고 했을 때, 아내인 나는 야채위주의 밥상을 차려준다.

김치찌게를 풀때도 고기는 되도록 빼고 남편의  국그릇을 채운다.

밥의 양도 조금만 푼다. 늦은밤의 과식은 결코 건강에 좋치 않기 때문이며,

늦은 밤에 먹고 싶은대로 배부르게 먹고 나면 남편이 밤에 자면서 속이 좀 불편함을 호소하기 때문이다.

고기 반찬보다는 생선 반찬을 차리려고 하고, 해조류나 야채위주의 식단으로 차려주려고 한다.

성인병 예방과  지방간이 조금 있다는 진단을 받았기 때문에, 반찬들을 보면서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주는 음식들인가 하는 생각은 한두번은 하고 밥상을 차려내게 된다.

매번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밥상을 차려내는 철저한 아내는 아니지만

오래된 습관중의 하나인, "단, 칼, 비, 탄, 지" 영양소가 골고루 섞여 있는지는

가끔씩은 살피는 아줌마가 되어 있다.

여학교, 가정 시간에 배웠던 5대 영양소인 " 단, 칼, 비, 탄, 지"를 생각하면서 밥상을

차리는 경우가 많아진 것은, 술과 지나치게 가까운 남편 덕분이기도 하다.

 

 

 

친정엄마가  딸인 내게 고기밥상을 더 차려주고 싶어 하셨던 것 처럼,

어머님도 아들인 남편에게 건강위주의  식단보다는 고기반찬이 가득한 밥상을

차려주고 싶어하시는 그런  평범한 엄마로 존재하신다.

31년을 엄마 밥상을 받던 남편이, 14년동안 아내인 내가 차려준 밥상을 받더니

지금은 요리솜씨가 별로인 아내가 차려준 밥상에 입맛이 길들여져 있는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