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심한 놈, 건방진 놈, 불쌍한 놈, 그 놈이랑 함께 사는 *

2011. 3. 10. 11:35★ 부부이야기

        

 

 

 남편의 술자리는 처음에는  분명히 일 때문에 시작된다.

하지만 술자리가 길어지고 눈동자가 풀릴 때쯤이면 그 목적이 없어진다.

함께 술자리를 하는 멤버들도 하나 둘씩 바뀌는 경우도 많다.(전화통화하다가 오라고 한다)

얼마전까지 수도 없이 남편의 대리운전을 하면서 남편의 술자리에 참석해 본 마누라로서

술자리의 이동 경로와 남편과 술자리를 자주 하는 멤버들의 술자리 매너도 잘 알 수 있게 되었다.

첫 눈에도 이마에 " 보수적, 완고함, 깐깐함" (남편의 표현) 이라고 붙혀 놓은 듯한  인상을 가진 나를 의식해서,

술자리에 함께 하던 남편의 지인들도 행동거지를 처음에는 조심들을 했었다.

하지만 만취를 하게 되면 본 모습들이 슬슬  다 나온다.

술자리에서의 내 서방 술버릇도 너무너무 잘 알고 있는 나다.

내 서방, 술이 많이 취하면, 집에서는 헤벌레 퍼질러지는  스타일이지만

밖에서는 아무리 취해도 절대로, 어떤 경우에도 실수를 하거나(특히 말실수) 흐트러진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아마 그것은 남편의 오랜 시간동안 영업을 하는 직장인으로서 몸에 밴 오랜 습관인 것 같다.

여러 형태의 술자리의 모습을 마누라인 나에게 다 구경 시켜 준 남편은 어쩌면 순진한 남편일런지도 모른다.

아가씨를 부르는 가라오케나 단란주점 룸안까지 구경 시켜준 남자니까....

그런면에서 남편의 지인들은 남편에게 그런 말을 했을지도 모른다.

자네, 큰 실수 한거야~ 마누라에게 그런 것까지 다 보여주면 어떡하냐고~

 

 

 

 

            자정이 넘은 시각에  남편이 전화를 했었다.

1차 2차 판촉자리를 서울 경희대 근처에서 끝내고 3차를 강남쪽으로 넘어간다고~

컴퓨터 앞에서 열심히 키보드 두드려대던 나는 건성으로 알았다고만 대답을 했었다,

출발할 때 제발 전화하지 말고 들어와서 조용히 자라고만  당부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전화벨 소리가 아닌 생리현상 때문에 눈을 뜬 나, 화장실에 다녀왔다.

시계를 보니 새벽4시가 넘었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서 물어봤다. 언제 들어올거냐고~

발음도 잘 되지 않는 옹알이 같은 남편의 혀 꼬부라진 목소리와 왁자지껄하는 주변의 소음들이 생생하게 들렸다.

40대 중반의 아저씨인 내 서방이,  또 술자리의 목적을 잃어버린 상태가 된 것이다.

한심한 놈~ 언제까지 저리 살려고 저러나.... 안 봐도 그 술집 안의 풍경이 절로 그려진다.

주변에서 깔깔대는 여인네들의 소리들도 들린다. 그 밖의 다른 남정네들의 혀 꼬인 목소리도 들렸다.

그 때부터, 해탈 경지에 오르는 스님의 마음으로 내 마음을 채우려는 시스템이 작동이 된다.

그 안에 있는 남자중의 한 명이 내 남편이다. 내 두 딸들의 아빠인 남자가 그 무리안에  섞여있었다.

그 사실만으로 온몸이 부르르 떨려서  치욕스러운 모욕감을 느끼게 된다.

싫다. 그 느낌은 절대로 버려지지가 않는다. 아마 평생동안 그 느낌은 못 버리고 살 것 같다.

일때문이라고?  일, 좋아하시네, 웃기지마~ 

우리나라 영업의 술문화가 잘못된 것이지, 일 때문이라고? 진짜로 웃긴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머릿속에서  나는 스스로를 열심히 세뇌를 시키고 있었다.

술 취해서 의식도 별로 없는 이 남자한테 지금 말해봐도 소용 없다. 싸우지 말자... 그렇게~ 주문을 했었다.

그리고 전화를 끊고 잠을 청해보지만 안된다. 그래서 나는 유일한 내 친구이고,

세상 사람들과 유일하게 소통하는 컴퓨터를 켜고 글이라는 형식을 빌어 푸념들을 해대는 경우가 많았다.

 

 

    

 

 

            

            동이 틀 때즘에 들어온 남편, 미안한 기색도 없다. 간땡이가 부은 남자가 되서 기어 들어왔다.

술 취한 남편은  평소에 내가 알고 있는 내 남자의 모습이 아니었다.

뻔뻔하게 밥 차려달라고 말하는 간이 배 밖으로 튀어 나온 건방진 이 된다.

밥? 당연히  안 차려주고 싶었다, 맘 같아서는 2단 옆차기로 발로 차주고 싶고,  온 몸둥아리를 다 잡아 뜯어 놓고 싶었다.

손톱으로 할쿼주고도 싶었다. 하지만 가여운 나의 짧은 손톱들은 그런 행동을 하기에 날이 서 있지가 못하다.

세상을 살면서 내가 주워 들은 온갖 욕들을 남편에게  다 퍼부어주고  싶었다.

니기미~ 씨버럴~ 하믄서. 나도 맘 먹고 하면 욕, 아주 잘 할 수 있는 *이다.

근데 그  남자가 내가 지금까지 함께 살고 있는 내 남편이다.

내가 선택한 내 남자이고, 내 이쁜 두 딸들의 아빠인 것이다.

그 사실을 새삼 깨닫는  순간 깊은 절망과 처연한 슬픔을 느끼게 된다.

저 남자를 내가 씹으면 씹을 수록, 저 남자를 한심하고 초라한 놈으로 만들 수록

나도 내 아이들도, 우리 가족 모두가 함께 한심한 사람들이 되는거다.

내가 아무리 괜찮은 사람으로 살려고 노력을 해도,

저 남자를  내가 난도질을 하면서 한심하고 나쁜놈을 만들수록

나는 절대로 남편과는 별개인, 참 괜찮은 사람은 되지 못한다는 진실을 깨닫게 된다.

진짜로 그 느낌이 너무너무 싫다,

모든 것들을 해탈하고 담담하게 바라보려는 노력을 해도

내 남편을 한심하고 나쁜 놈으로 만들어서 씹을 수록 나도 함께 그런 사람이 되고 마는거다.

 

 

 

 

            술 냄새가 온 방안을 진동하게 만들면서 2시간 정도를 자고 나서  내가 깨우지 않아도 서방놈은 지가 알아서 일어났다.

머리가 아프다고, 속이 쓰리다는 표현도 못하고 욕실에 들어가서 씻는다. 서슬 퍼런 마누라 눈초리가 무서워서.....

푸석푸석한 얼굴, 충혈된 눈, 어제 출산을 한 산모의 모습 마냥, 얼굴이 푸대대 했다.

군소리 한 마디 없이, 출근 준비를 하는  그 남자를 보면서,

술은 입술에 축이지도 않고도 생골이 아팠던 나는 어젯밤에 끓여 놓은 김치찌게를 데웠다.

그런 나를 속으로 스스로를 한심한 년이라고 생각하면서~~

술마시고 늦게 (아니 너무 일찍 들어온) 들어온 죄로

슬금슬금 마누라 눈치를 보는 그 불쌍한 놈을 위해서 아침상을 차려줬다.

 

그 불쌍한 놈이 눈치의 해장국을 먹고 있을 동안 외출 준비를 하고

나는 컴 앞에 앉아 어젯밤에 올린  글들의 댓글에 답글을 달았고 그 서너분들의 블방에 들러서 댓글을 다는 차분함을 찾았다.

이 곳으로 이사와서는 두 어번만 해주던 대리 운전을 위해 채비를 했었다.

속으로, 말한다. 야~. 너란 년,  진짜로 성질 좋다 하믄서...

처자식 벌어 먹으르랴 일터로 향하는 그 불쌍한 놈을 옆자리에 태우고 사동을 걸었다. 이 한심한 년이...

그리고 지난 달에도 그런 식으로 그 한심한 놈을 소재로 글을 써서 받은 돈 30만원을 생각하면서,

친정엄마 말대로 정말로 다시 맞벌이를 해야 하나를 심각하게 생각하면서, 어제 다녀온 고용보험센타를 떠 올린다.

 아직도 초보 운전 티를  벗지 못한 그 불쌍한 년은

조수석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그 불쌍한 놈 한테, 변치 않는 선생님의 설교조로 훈계를 시작했었다.

아마 그 불쌍한 놈은, 그 한심한 년이 떠들던 말을 전혀 듣지도 않았을 것이다. 꾸벅꾸벅 조르랴...

40여분동안 달려서 도착한  남자의 회사 앞에서 그 잘난 년은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버스를 기다렸다. 2시간 넘는 시간이  걸려서 집으로 돌아가야 하니까~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울컥 하는 기분에 눈물이 났다.

안 울려고 하는데, 니기미~ 눈물이 막 쏟아졌다. 인적이 드문 버스정류장인게 얼마나 다행인지..

침을 삼킬때마다 목젖이 아프다, 억지로 감정을 억누르다 보면 그런 증상이 생긴다.

내가 아주 불행한 것도 아닌데, 그렇게 초라한 옷차림으로 남편을 대리운전 시켜주고 나서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려고 기다릴 때마다 그 멀대 같은 여자는 도로변에서 질질 짜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가끔씩은 버리고 싶어도, 버리고는 더 못 살 것 같아서 애를 쓰면서 살고 있는 한심한 년처럼,

저 불쌍한 놈도, 이제는 정말로 정신을 차리고 좀 생각이라는 것을 좀 하고 살아줬으면 좋겠다.

그 한심한 년보다 훨씬 좋은 점이 많은 남자임에도 그렇게 가끔씩, 아직도 볼품 없는 42살 먹은

본인의 마누라의 마음을 한 없이 비참하게 만드는 경우가 있는 나쁜 놈이 될 때가 있다.

그 한심한 년의 마음을 이리 비참하게 만드는 짓꺼리는 더 이상 안해줬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가져 보는

2011년 3월 10일날의 아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