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4. 20. 06:31ㆍ★ 부부이야기
매일매일 늦은 귀가를 하시던 서방님이 일찍(자정을 10분이나 남긴시각) 들어오셨다.
평일날 판촉자리가 없는 날, 축구를 하고 왔다고 했었다.
맨 정신의 남편을 얼굴을 보는 것은 이젠 어색함을 느껴야 하는 부부사이가 되었다.
마누라와 그런 관계로 변해버린 남편의 손에 뭔가가 들려져 있었다.
여자 가방이었다. 옅은 갈색 계통의 평범한 가방이었다.
묻지도 않았는데 오래간만에 맨 정신의 내 서방님이 설명을 해주셨다.
낮에 거래처 갔다가 길거리에서 2만원씩 팔길래, 함께 있던 직원이랑
자기들 마누라한테 하나씩 사주자고 하면서 샀다고 했다.
" 백화점에 들어가던 물건이래..... 2만원 짜리지만 괜찮치 않냐?" 하면서
생뚱 맞은 표정으로 그 가방을 내 손에 들려주고 휑 ~ 하니 욕실로 들어가는 남편의 뒷통수가 어색했다.
아마도 2만원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다음 날, 또 한 잔의 술에 적당히 취가가 오른 서방님이 자정이 훨씬 넘은 시각에 들어오셨다.
현관문 앞에 엎어진 서방님이 혼잣말 처럼 중얼거리셨다.
" 자기야... 나, 외롭다..... !!"
이부자리 위에 누워서 TV시청을 하던 부시시한 마누라는 그런 남편을 멀건 눈으로 쳐다만 봤다.
"저 남자가 지금 뭐시라고 하는겨..? "하는 눈빛으로....~~~
" 난, 지금도 자기 처음 만났을 때 그 모습으로 자길 기억하고 있는데.. 자긴 아니지? "
그런 남편의 혼잣말 같은 묵은 고백을 진지하고 단정하게 들어줘야지 하는 마음이 들다가도,
내 심신이 피곤하다는 생각과 저 남자가 그냥 조용히 잠이나 자 줬으면 마음만 간절했다.
술 취해서 하는 말들은 그게 무슨 말이든간에 다 듣기 싫고, 그 다음날이면 기억조차 못할 것 같기 때문에~~
결혼 14년이 넘었음에도, 남편이 나를 부를 때는 "자기야~~" 라고 부른다.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그 호칭 때문에 우리 부부가 무척이나 사이가 좋아보인다고 착각할런지도 모르겠다.
나이 40대 중반이(올해로 46살이다) 넘어가니 남편도 외로운가보다.
그 전부터 외로웠을 것이다. 마누라도 전 같지 않게 냉랭하고 뭔가 분위기도 예전 같지 않다는 걸 느낄 것이다.
밖에서 그 많은 사람들과 술자리를 하지만 그 안에서 더 철저하게 혼자라는 사실에 더 외로웠을지도 모른다.
술로 맺어진, 일로 맺어진 관계가 얼마나 깊을까나..............
처자식들이 가끔씩 남편에게 힘이 되기도 하겠지만, 인간 본연의 외로움은 아무도 없애줄 수가 없다.
남편 본인 스스로가 그 징그러울만큼 지독한 외로움에서 벗어나길 진심으로 바라며 지켜보는 것만 할 것 같다.
나도 외롭다는 생각을 자주 했으며, 지금도 문득문득 그런 사치스러운 감정을 느낄 때도 있지만,
요즘의 나는 외롭지 않다고 스스로를 세뇌하기도 하며 늘 스스로에게 주문을 외우면서 살고 있다.
아직도 세상에서 내 자신이 제일로 소중하다라는 생각이 자리 매김을 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예전보다는 조금씩 나 스스로가 변화되려는 노력을 많이 하고 있는 중이다.
나보다 훨씬 로맨틱하고 여린 구석도 있는 남편이다.
나란 여자는 감수성이 풍부하긴 하나, 남편에게는 살갑거나 다정함을 표현해주는 아내는 못된다.
남편의 봉양(?)의 최선을 다하려는 노력은 하지만, 그것은 아내로서의 당연한 의무이고
책임감이고 도리이기 때문에 하는거다.
하루는 밉고, 하루는 안스럽고, 하루는 남편이 그립기도 하다.
불쌍하고 짠하고 그리고 미안하고, 그러다가 꼴도 뵈기 싫어지고, 어디다가 버리고 싶어지는
그런 남자가 지금까지 나랑 살고 있는 내 남편이다.
주정처럼 내게 내 뱉은 남편의 14년 묵은 그 사랑의 고백이 진심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예쁜 모습으로 받아주지 못한 내 모양이 참 못마땅하고, 그리고 그런 내 남편이 짠한 날이기도 했었다.
** 내일이 시어버님의 기일이라서 어제 겉저리김치를 시작으로 지금은 식혜를 끓이고 있습니다. 오늘 오후부터는(오전엔 컴수업)밥반찬 들과 전 종류들을 만드려면 답글을 늦게 달런지도 모르겠습니다. 내일 하루는 컴퓨터 수업도 하루 빠져야 할 것 같아서 결석계라는 것을 오늘 쓰고 와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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