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많은 어른이라고 무조건 옳은 것은 아니다

2011. 5. 17. 06:00★ 부부이야기

 

 

 

 

나는 지금도 전철을 타거나 시내 버스를 타면 웬만해서는 의자에 않지 않고 서서 간다.

손가락으로 헤일 수 있을 정도의 좌석만 남아 있을 때는 자리에 앉지 않는다. 자리가 텅텅 비워 있을때만 좌석에 앉는다.

왜냐하면, 자리에 앉았다가 어르신이 타면 자리를 양보해야 할 상황이 되고,

그럴 때면 야기 될  수 있는 예전의 기억들 때문에 끝까지 서서 가는 아줌마로 존재하고 있다.

 

시골에서 여고를 졸업하고 스물살 때부터 서울에 올라와 두 동생들과 자취생활을 시작했었다.

부모님 없이 세 자매만 자취를 했던지라 맏이인 나는 두 여동생의 대한 보호자로써 그 책임감을 강하게 느끼던 시절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두 여동생과  함께 수원에 있는 집안 친지분의  결혼식에 참석하게 되었다.

청량리역에서 출발한 1호선 전철을 타고 수원까지 가는 시간은 1시간 30분 가량이 걸렸던 것 같다.

청량리에서 탔기 때문에 빈 전철에 올라탄 우리 자매는 앉아서 갈 수가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역에서부터인지 기억은 안 나는데, 따사로운 봄햇살에 우리 자매는 깜박 졸았고,

전철이 덜컹거리는 소리에 눈을 떴고 그 때는 이미 전철안은 많은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졸다가 눈을 뜬 처자들인지라 민망하기도 하고(침도 좀 흘렸던 것도 같아서)

어색함에 잠시 머리를 매만지고 앞을 바라보니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이 서 계신 것을 발견하고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서 자리를 양보하는데, 갑자기 그 어르신분이 전철안이 떠나갈 듯이 언성을 높히시며

우리 세 자매를 향해 심한 꾸지람을 하시기 시작했었다.

아마도 그 분은 우리 자매가 어른분이 앞에 서 계시는 것을 알고도 꾸벅꾸벅 조는 척 했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았다.

밖에서는 극소심하고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처자였고, 바른 생활의 선두주자처럼 살던 나는

피부색이 보이는 모든 부분은 시뻘개져서, 머리를 조아리며, 죄송하다고, 제가 깜박 조르랴 못봤다고 작은소리로 우물거렸다.

그 전철안의 모든 사람들의 시선들은 우리 세 자매에게 향했고, 순식간에 우리 세 자매는 버르장머리 없고 어른도 몰라보는

느자구 없는 처자들로 돌변해 버렸고, 그런 시선을 받는 가운데 그 어르신분의 목청은 더 높아졌고,

우리 자매은 합동으로 죄송하다고 몇 번이나 사과를 했었다.

억울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 당시에는 우리들이 진짜 어른에게 자리도 양보 안한 버릇 없는 처자들로 비쳐지는 것에

더 수치심을 느꼈고, 어떤 이유로든 간에 그 전철안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것에서부터 벗어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우리들의 연속적인 사과의 말과 몸짓에 보다 못해  그 전철안의 다른 어떤 어르신이 한 마디 거들어 주셨다.

"허~~ 참... 어르신, 그 처자들이 미안하다고 하잖소, 그리고 내가 보기에도 조는척 한 게 아니라

진짜 졸았던 것 같은데 웬만히 하셔야지요. 어르신이 너무 하시는 것 같소..."

그 분의 변호에 우리 자매들에게 고래고래 언성을 높히시던 그 어르신은 헛기침을 한번 하시더니

요즘 젊은 것들은 어른들을 몰라보고, 허허. 세상이 말세야. 세상이 어찌 돌아갈런지..

젊은 것들이 앉아서 가고 늙은 늙은들이 서서 가는 세상이 됐으니..."

하는 말들을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면서 끝까지 우리 세 자매를 그 전철칸에 서 있지 못하게 하셨다.

지금만 같으면, 고스란히 가만히 듣고만 있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부당하게

그 당시의 우리는 아무 말도 못하고 그 자리를 피하는 비겁한 방법으로 다른 전철 칸으로 옮기는 행동으로 마무리를 했었다.

 

 

 

 

 

 

요즘 시대를 살고 있는  요즘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요즘 엄마에 속해 있는 나,

밖을 다니다가 아직도 종종 이런 어르신을 보는 경우가 있다.

"니놈은 애미 애비도 없냐?" 로 시작해서 " 내 나이가 지금 몇 살인지 아느냐?"

"요즘 애기 엄마들은, 어쩌고 저쩌고,,,,,," " 요즘 아이들은...."

그리고 나 또한 나도 모르게 " 요즘 아이들은..." 라는 말을 사용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내가 원하지 않았음에도 나도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기성세대로 존재하게 되었다.

밖에서는 어떤 경우에도 타인과의 다툼이나 언쟁을 가져 본 적도 없으며, 그런 건수를 만들지

않으려고 애쓰며 살았던  나의 비겁함으로 여직 나이가 드신 분과의 다툼은 없었지만,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장담을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14살, 12살된 두 딸들과 애길 하다 보면 내가 어쩔 수 없는 기성세대라는 것을 실감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은연중에 나의 사고방식을 두 딸들에게 강요하는 엄마의 모습도 자주 본다.

하지만 두 어린 딸들에게 내가 배우는 경우도 참 많이 있다.

나이가 많다고, 아이들보다 내가 인생을 더 살았다고 해서 내 생각이 전부 옳을 수만은 없다는 것도 종종 느낀다.

어른이라고 부당한 일에도 네네 하며 일관하는 모습도 나의 비겁함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다.

어른에게는 옳치 않는 것을 옳치 않다고 말하는 그 자체만으로 버릇이 없는것이 되고, 말대답을 하는

괘씸한 젊은 것이 된다는 교육을 받고 자란 나는, 아직도 종종 비겁함으로 늘 움츠려 들고

부당하고 옳치 않는 일에도 어른에게는 분명하게 입바른 소리를 하는 것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제는 나이가 많다고 무조건 어른 대접을 받으려는 사고방식 자체가 시대에 뒤떨어지고 있음을

자주 느끼는 요즘 세태를 참 자주 보게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