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5. 13. 06:00ㆍ★ 부부이야기
남편은 말수가 없는 편이기는 절대로 무뚝뚝한 남자는 아니다.
나보다 훨씬 로맨틱한면도 많고 의외로 자상한 면이 많은 남자이기도 하다.
아주 썰렁하기는 하나 종종 어디선가 듣거나 읽은 유머를 들려줘서 나와 두 딸들에게 어이 없는 웃음을 주기도 한다.
밖에서 아이들과 함께 외식을 하는 날이면 고기를 굽고 반찬들을 아이들 입에 넣어주는 행동이 자연스러운 그런 아빠이다.
다만 집에서 거의 말이 없는 사람으로 변해서(술을 안마시면)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좀 있을뿐이다.
영업을 오랜 시간동안 해 온 남편인지라 사람과의 대화 하는 것에도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주는 재주도 있다.
아마 그런 면에서 나의 큰 딸은 오랜 시간을 함께 하는 엄마인 나보다, 아빠를 더 좋아하는 것일 것이다.
어떤 조건도 없이, 어떤 요구도 없는 아빠를 보미가 좋아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 당연한 일이다.
며칠 전에 남편 회사 야유회 사진을 보면서 아빠 회사 아저씨들 중에서 객관적으로 봐도 우리 아빠가 젤로
잘 생겼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우리집 큰 딸이다.
친구들 아빠들은 다 늙어 보이는데 우리 아빠는 지금도 30대 처럼 보인다고(진짜 모습은 아무리 봐도 그냥 아저씨인데)
그래서, 친구들에게 내 아빠라고 자랑하고 싶다고 말을 하는 14살 중학생 딸로 존재하고 있다.
두 딸들이 한참 귀엽고 이쁜 모습일 때, 나는 남편이 들어오는 시간에 맞춰 머리를 감기고 제일로 이쁜 옷들을 입혀서
현관앞에 서서 밖에서 힘들고 지쳤을 남편을 향해 이쁜 모습의 딸들의 미소를 보여주려는 노력을 했던 아내였다.
아들 없는 허전함을 남편이 느끼지 않기 바라는 마음으로, 늘 술자리로 밖으로 도는 듯한 남편의 마음을 잡아보는 노력으로,
그리고 밖에서 남들에게 머리 조아리며 비굴하게 느낄 수 있는 남편이 집에서만큼은 대접 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작은아이에 비해서 큰 아이에게 내가 더 미안한 마음을 갖게 되고, 늘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데에는,
지난 시간 남편과 숱하게 싸우고 힘든 시간을 보내던 시간에, 못난 엄마 아빠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준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아빠를 원망하고 흐느껴 우는 엄마의 모습을 너무 어린 내 큰 딸에게 자주 보여줬고 그로 인해
어리디 어린 큰 아이의 마음에는 고스란히 상처로 남았을거라는 마음으로 늘 큰 아이에게는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
그러면서도 아빠의 대한 강한 집착하는 모습의 엄마도 봤을 것이고,
중간중간에 또 수습하르랴 아빠가 얼마나 밖에서 힘들게 일을 하는데 엄마가 철이 없음에 대해서도 그 어린
딸에게 설명을 했던 불안정한 엄마의 모습을 자주 보여 주기도 했었다.
그래서 그런지 보미는 나이에 비해 아빠의 밖에서의 사회생활의 고달픔을 이해할 수 있는 속깊은 딸이 되어버렸다.
보미는 짧은 나의 맞벌이로 인해 9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쌀을 씻어 밥을 하기도 했으며, 7살이 난 혜미 손을 잡고 유치원 앞까지
데려다 주고 학교에 가는 언니로써의 역할을 해야만 했던, 외로운 시간들을 보내기도 했었다.
보미의 대한 내 감정은 그래서 조금은 더 특별하며 맞벌이를 다시 시작하는데에도 많은 망설임을 지금까지도 갖고 있다.
이런 마음은 남편도 나와 같을 것이다.
다른 사람 앞에서는 절대로 그런 표현을 못하는 남편, 집에 들어와서 아주 가끔씩 불쑥 그런 말들을 했었다.
어딜 가도 우리 딸들만큼 이쁜 딸들은 없는 것 같다고~~~
내 딸들이라서가 아니라 객관적으로 봐도 우리 딸들이 젤로 이쁜 것 같다고~~(돌잔치나 결혼식 등등에 다녀오면 특히 이런말 자주 한다)
그러다가도 누군가가 딸들의 대한 칭찬이라도 하면,
뭘요.. 요즘 애들은 다 이쁘지요... 잘하는 것도 없는데요.. 평범한 애들이죠..
라면서 겸손한 아빠인 척 하는 것을 절대로 잊지 않는다.
오로지 기럭지 하나 때문에 쥬니어 모델을 시켜보라는 방송계에 종사하고 있는 지인들의 지나가는 말에도
혼자서는 으쓱 하면서도 겉으로는 남들 앞에서는 티를 내지 않는 아빠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내년쯤이면 아마도 나와 남편, 모두가 중학생인 내 딸을 올려다 보면서 이야기를 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기럭지가 긴 보미를 보면서 내 남편의 눈에는 기특함과 뿌듯함이 담겨져 있음을 문득문득 느낀다.
일 때문에, 다른 이유들로 보미와 함께 하는 시간이 부족함에 미안함을 느끼는 남편의 마음을 엄마인 내가
대신해서 보미에게 수시로 설명해준 것이 아니더라도,
내가 남편을 많이 좋아하는 것 처럼, 나를 많이 닮아 있는 보미의 아빠의 대한 애정은 남다른듯 하다.
14살 딸이 볶아준 김치볶음밥을 맛있게 먹어주는 아빠를 위해서 요즘에도 보미는 행복해하는 아빠를
위해 요리하는 것을 즐거워 하는 딸로 변신하는 경우가 많다.
잔소리 많은 엄마를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는 말은 절대로 하지 않치만, 아빠에게 실망을 주지 않기
위해서는 뭐든 노력하고 열심히 하겠다는 포부는 자주 표현하고 있는 우리집 큰 딸이다.
그런 아빠의 대한 보미의 마음이 앞으로도 변치 않고 계속될 수 있도록 엄마인 내 노력도 계속 되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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