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9. 21. 08:53ㆍ★ 아이들 이야기
지금 중학생인 보미가, 6살 때즘에 백화점 승강기 문틈에 손가락이 끼여서 다친 적이 있었다.-흉터 안 남았음
7살 때즘에 아파트 단지 앞에서 뛰어가다가 넘어져서 이마를 다쳐서 크게 부풀어 오른 적이 있었다.-흉터 안 남았음
8살 때즘에는 집 앞에서 자전거를 타고 놀다가 같은 반 남자애가 밀어서 넘어지면서 무릎이 까졌다.-흉터가 지금껏 크게 선명하게 남아 있다.
12살 때즘엔 교실에서 책상모서리에 부딫혀서 오른쪽 팔에 기브스를 2주 정도 한 적이 있었다.-인대가 좀 늘어나서 반기브스만 했었다.
보미의 4번의 자잘한 사고들 모두가 엄마인 내가 보미 옆에 없을 때, 일어난 사고들이었다.
6살 사고는 내 막내동생이 , 7살 때 사고는 둘째 동생이 보미를 데리고 나갔다가 일어난 사고들이었다.
8살때의 자전거 사고는, 보미를 다치게 한 남자애 엄마가 바로 옆에 있었을 때 일어난 사고들이었다.
12살 때 사고도 학교에서 쉬는 시간에 책상모서리에 부딫혀서 다친거로 엄마인 내가,보미 옆에 없을 때 일어난 사고들이다.
기타 등등의 다른 작은 사고들도 있었지만 모두가 엄마인 내가 보미 옆에 없을 때, 다친 것들이었다.
그런 사고들이 있었을 때, 엄마인 나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
성격인지도 모르겠지만 보미가 첫 아이였음에도 아이 다친것에 호들갑을 떠는 엄마는 아니었다.
나 또한 칼에 손에 크게 베거나, 혹은 다쳐서 ,
하물며 두 아이 출산했을 때 심한 출혈이 있어서 수혈을 해야 할 상황이 되서 피를 좀 과하게 보게 되는 상황에서도
놀라거나 호들갑을 떨어져 본 적이 없었다. 성격인 것 같다.
보미가 다쳤을 때 그 자리에 있었던 내 동생들은, 나에게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했는데
정작 엄마인 나는, 그깐 일 때문에 웬 호들갑? 이냐고 했었다.
여자애라 얼굴이 다쳤다면 모를까......요즘 엄마들처럼 자기 아이 다쳤다고 유난을 떠는 좋은, 따뜻한 엄마는 아니었던 것 같다.
다만 보미가 8살 때, 보미를 밀어서 다치게 한 같은 반 남자애와 그 아이 엄마의 태도는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성인이 되서는 성형을 해야 할지도 모를 정도로 다리에 큰 흉터를 남기게 했음에도 별로 미안해 하지 않았던,
평소에도 자기아들만 귀한 줄만 알던 내 기억속의 그 엄마는, 내가 유일하게 만나본 비교육적인 엄마로 기억된다.
자기 귀한 아들이 결혼하면, 꼭 한 집에서 데리고 살겠다던 굳은 결의를 자주 내비치던 그 엄마, 지금은
어떤 식으로 자기 귀한 아들을 양육하고 있을지...
돈을 받고 내가 봐주고 있는, 지희가 나와 함게 있는 시간에 발가락을 다쳐서 기브스를 했다.
나와 2미터의 거리도 떨어져 있지 않았고 학교 운동장에서 논다고 말한지 15분도 안됐을때 일어난 사고였다.
운동장 귀퉁이에 떨어져 있는 제법 큰 돌멩이를 들다가 무거워서 떨어트리면서 오른쪽 깨끼 발가락이 다쳤다.
순식간에 일어난 사고였고 그 순간, 나는 머릿속이 하해지면서 가슴이 벌렁거리고 당황스러워 어쩔 줄을 몰라 했었다.
내가 돌보는 시간에 일어난 사고, 그 사고의 경중을 떠나서 내 책임이라는 생각에 어찌나 무섭고 떨리던지....
남의 집 귀한 아이를 내가 제대로 돌보지 않아서 그런 사고가 일어난 것만 같고, 여하튼 미안함과 두려움만 가득했었다.
놀라고 아파서 우는 아이를 달래서 아이의 책가방과 실내화 가방 그리고 내가 들고 있는 가방까지 들고
아이까지 등에 들쳐 업고 가까운 동네 소아과로 종종걸음을 치는 동안에도 내 머릿속은 오만 걱정들로 가득 했었다.
어깨가 빠질 것처럼 아팠지만 그 당시에는 그보다는 가슴이 너무 벌렁거려서 심장마비로 죽을 것 같았다.
병원 점심시간이었다.
1시부터 2시까지 점심시간이라는 안내장이랑 함께 소아과 문이 닫혀 있었다.
아이를 들쳐 업은 내 등짝은 이미 땀으로 젖어 있었고, 택시를 타고 다시 2차 병원으로 갔다.
그 즘에 지희의 울음은 이미 그쳐 있었고, 상처도 자세히 보니 크게 다친 것 같지는 않고, 타박상정도인 것 같았다.
지희가 물었다. " 이모, 나 무거워서 힘들지? 이모, 손이 막 떨려..." 하고 내 손을 잡아주는 지희였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아이를 들쳐 업은 내 등짝은 땀으로 쩔어 있었고 그 때서야 내 손과 다리가 떨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아이가 아니라서 그랬을 것이다. 나는 내 두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가 다쳐서 그렇게 떨어본 적이 없던 엄마였다.
내 아이가 그리 다쳤다면, 나는 절대로 그렇게 긴장하거나 두려워 하지 않았을 것이다. 절대로............
그런데 내 아이가 아닌 다른 집 아이가 내가 돌보는 시간에 다친거였다.
내가 다치게 한 것은 아니지만 내가 돌보는 시간동안엔 아이의 안전은 당연히 내 책임이라는 걸
너무 강하게 갖고 있는 나, 그래서 아이의 작은 상처에도 하늘이 무너지는 무서움을 느꼈을 것이다.
진료를 받기 위해서는 아이의 주민번호를 알아야 했다.
직장에서 일하고 있는 지희 어머니에게 통화를 해서 물어봐야 했다.
전화를 하는 내 손이 덜덜 떨렸다.
"언니,(지희 엄마를 나는 그리 불렀다) 놀라지 마세요..."
로 시작하고 죄인처럼 상황을 설명했다. 지희 엄마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되려 지희 다친 것 때문에 내가 고생한다고 말해줬다.
진료를 기다리면서 지희는 언제 지가 울었냐는 식으로 평소처럼 재잘재잘 애길 하면서 색다른 경험을 한 것을 되려 재미있어 했었다.
"이모, 많이 놀랬어? 난 처음에 아파서 울었는데 이모가 나보다 더 놀란 것 같아.
이모는 정말로 나를 많이 사랑하나봐. 그러니까 그렇게 놀라지... 울 언니는 아마 내가 다친 것 알아도 걱정도 안할거야.."
그리고 보미, 혜미 언니들은 다친 적 없냐면서 또 보미, 혜미 언니 이야기를 또 해달라고 졸랐다. 지희는 이야기를 참 좋아하는 아이다.
소아과에서 정형외과로 가보라고 해서 또 아이를 들쳐 업고 인근 정형외과로 또 옮겼다.
처음부터 정형외과를 갔어야 했는데 그 생각조차 못한 나의 어리석음이 새삼 화가 났다.
엑스레이까지 찍었다.
신경이나 인대에도 별 이상은 없고 신경이 좀 놀랜것 뿐이라고 했다.
허나 손이 아닌 발이라서 최대한 움직임이 적도록 반 기브스를 해주는 게 좋다고 해서 그렇게 했다.
그 즘엔 지희는,이미 자신의 기브스한 다리를 보면서, 자기 기브스 한 모습을
얼른 엄마 아빠에게 보여줘서 엄마 아빠가 어떻게 반응할지를 얼른 보고 싶다는 아이다운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리고 언니가 자기 기브스 한 것 보면 뭐라고 할까를 궁금해하면서 재미있는 체험을 해보는 아이의 모습만 보였다.
걸어도 된다는 의사 말을 무시하고 집으로 가면서도, 지희를 들쳐 업고 갔다.
그 날 밤, 나의 목디스크 때문인지 아이를 잠깐 들쳐 업고 뛴 것이 무리가 간건지 밤새 끙끙 앓아야 했다.
젊은(?) 나도 아이 잠깐 들쳐 업고 뛰었다고 이리 힘든데 나이 드신 분들에게
어린아이 맡기고 일 나가는 직장맘들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실감했다.
이래서 남의 집 아이 봐주는 게 힘든거구나... 그리고 내 손자손녀라도 아이 봐주는 일, 정말로 힘들구나를...
내 아이가 다쳤다면 나는 그 처럼 허둥대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렇게까지 놀라지도 않았을 것이다.
언꺼푸 괜찮다고, 애들이 당연히 다치면서 크는것 아니냐고 말해준 지희 엄마의 말에도
나는, 앞으로는 남의집 아이를 봐주는 일은 두 번 다신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내 아이를 마구잡이로 키운 것은 아니지만, 내 아이가 다쳤을 때 이리 당황한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남의 아이를 돈을 받고 봐주는 일을 하면서는
정말로 그 책임감 때문에 내가 머리가 돌아 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게 안되는 것 같다. 아이들은 다 그러면서 크는거라는 게 남의 집 아이를 봐주는 것에는 적용되지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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