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4. 6. 06:00ㆍ★ 나와 세상
친정엄마가 와계시는 동안 일정금액의 병원비와 생활비가 지출되었다.
그 비용의 상당부분을 둘째동생이 부담했다.
자식들에게 어떤 경우에도 경제적인 부담을 주지 않으시려는 친정엄마도
우리집에서 식사를 하시거나 엄마, 아빠 옷가지와 나와 동생들에게 줄 침구류를
구입하는데 지출된 비용의 전부를 나에게 주셨다.
사이버 대학이라도 대학생이 된 늙은 큰 딸의 입학선물이라고 바바리와 바지, 그리고 블라우스까지
사주셨으며, 올해 중학생이 된 작은 외손녀인 내 작은 딸의 입학 선물로 운동화 한컬레까지 사주셨다.
" 그래, 엄마,,,, 나는 가난하니까 엄마가 준 돈, 다 받을께.....나중에 부자되면 엄마한테 다 갚을께... "
하면서 나는 친정엄마가 주신 돈을 전부 다 받았다.
친정까지 모셔다 드렸을 때도, 엄마는 기름값 하라면서 아빠에게 받아서 10만원을 주셨고,
또 아빠 모르게 내 가방안에 만원짜리 열장을 꾸겨 넣어두셨다.
자존심이 상한 내가 얼굴이 벌개져서는 "엄마, 그만 좀 해..." 라고 소리를 질렀더니
엄마도 있는대로 인상을 쓰면서 소리를 지르셨다.
"이년아, 잔말 말고 받아, 올라가서 니가 살 생각을 해야지... 니 애미가 느그집에 가 있어서
니도 알게 모르게 쓴돈이 얼마나 많을텐데..." 하면서 어디서 났는지 5만원짜리 지폐 한장까지 내 바바리 주머니속에 쑤셔 넣어 주셨다.
엄마한테 받은 돈, 전부를 통장에 넣었다.
몇 해전(아마 내가 맞벌이를 시작하고부터였던것 같다)부터는 나도 친정엄마가 쑤셔넣어주시는 돈을 ,
한 푼도 쓰지 않고 친정엄마 통장을 관리하는 막내에게 줬었다.
오남리 수도공사에 도배장판 공사하는데 그 돈 보태라고 하시던 친정엄마의 말에 알았다고 대답은 했다.
나는 친정엄마에게는 죄 많은 딸년이었다. 살 안 찌고 몸이 약해서 엄마를 걱정하게 만들어서 나쁜 딸이고,
가난해서 죄송한 딸이었고, 곧이곧대로 살려고 하는 예민하고 까칠해서 죄송한 딸년이었다.
거기다가 잘하는 것도 없고, 말하는 것도 4가지인 나는 정말로 나쁜 큰 딸년이었다.
이번 상피암 진단을 위해 실행된 원추절제술 수술비가 20만원정도가 지출되었다.
수술당일 나와 동행한 보호자가 남편이 아니라 동생이었던 관계로 동생이 카드로 내 수술비를 결제했었다.
친정엄마의 병원비를 비롯한 다른 용돈까지 우리 세 자매중 둘째가 가장 많은 경제적인 지출이 있었다.
미안해하는 친정엄마와 나에게 매사에 똑 부러지고 야무진 둘째가 말했다.
" 엄마, 나는 언니처럼 안 살아. 나는 내게 부담이 되는 지출은 절대로 안해,
내가 해줄 형편이 되니까 해주는거야. 작년에 내 시어머니 무릎수술비로도 수백만원 넘게 썼어.
그것도 우리가 형편이 되니까 한거지, 나는 언니처럼 빚내고 대출받아서 부모님 병원비 대고 하는 짓은 절대로 안해..." 라고 말했다.
둘째가 조금 여유 있게 산다고 하더라도 동생네도 월급쟁이인 것은 별반 다르지 않다.
친정, 시댁에서 한 푼(진짜로 10원한장 안받았다)의 보조 없이 둘만의 힘으로 시작한 결혼생활에서
지금의 안정된 생활을 하게 될 때까지 동생과 제부의 알뜰함과 성실함을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둘째는 결혼해서 18년 넘게 시어머니의 생활비 30만원도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드리고 있는 큰 며느리다.
며느리로서 최선을 다하지만 동생은 부당한 일이나 공정하지 못한 일에도 무조건 참고 사는 며느리는 아니다.
그런 동생이기에 나의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답답해 했었고 자기가 더 미칠 것 같다는 말을 자주 했었다.
둘째가 작년7월부터 친정엄마에게도 달달이 10만원씩 보내기 시작했다.
동생은, 시댁으로는 무조건 달달이 용돈을 드리는 것은 너무 당연시 하면서도,
시골에서 힘들게 농사를 짓는 친정엄마에게는 조금 여유가 있다는 이유로
그동안 너무 친정엄마를 등한시해온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났고, 제부에게 서운한 마음이 쌓여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번 친정엄마의 병원비 일체(5,60만원정도)와 내 수술비까지 본인이 부담하려고 했었던 것 같다.
동생이 결제한 내 수술비 20만원을 동생 계좌로 부쳤다.
동생이 화를 냈다.
"언니가 왜 못사는 줄 알아? 내가 말했잖아. 나는 절대로 내 형편이 안되는데 무리해서는
시댁이든 친정이든 안 돕는다고, **씨(제부)도 언니 수술비 우리가 대자고 했어,
근데 왜 그 돈을 다시 보냈어? 언니는 아직도 정신 차리려면 멀었어.... 아직도 자존심 세우고 싶어?
그래서 언니가 가난하게 사는거야... 알아?"
속상해하는 동생의 마음,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언니의 상피암 소식에 제일 먼저 달려와주고, 항암효과가 있다는 비싼 버섯세트와
토마토 박스를 사들고 왔던 동생이었다.
그동안 언니의 어리숙하고 홧병을 키우는 시댁의 대한 어리석은 대처법에 가장 속상해하던 사람이었다.
차사고(내 수술받은 날 집으로 돌아가다가)가 난지 1주일도 안됐는데도
막내동생 생일이라고 차를 끌고와서 막내에게 점심을 사주고, 10여만원의 돈을 지출하고 간 둘째였다.
친정에서 가져온 시금치와 말린 나물들과 김장김치 한 통을 동생차에 실으면서
둘째 모르게 빈 김치통 귀퉁이에 만원짜리 5장을 꾸겨 넣었다.
막내동생 생일때문에 둘째가 지출한 비용이 걸려서였다.
그 날 밤, 막내동생의 생일상은 내가 차려줬다. 둘째가 사준 먹거리들로.....
둘째는 괜찮다고 말했지만, 둘째도 월급쟁이의 남편이랑 살고 있는 평범한 주부다.
이 날 이때까지 나의 시댁에서는 한 푼도 보태주지도 않으면서 늘 받기만 하려고 하는데
그 동안 나는 친정엄마와 동생들에게는 받기만 했던 큰 딸이었고, 큰 언니였다.
앞으로는 절대로 그런 언니로, 큰 딸로는 살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 일 때문에도, 둘째에게 엄청나게 욕을 먹어야 했다.
우리 세 자매중 본인이 가장 독립적이지만 가장 정이 없는 차가운 사람이라고 늘상 말하는 둘째지만
언니인 내가 보는 둘째동생은 결코 차가운 사람이 절대로 아니었다.
김치통에 동생 몰래 만원짜리 5장을 숨겨 놓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친정엄마를 따라하네....... 라고.... 생각에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새삼 내가 울 엄마 딸인것에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시어머님 같은 분의 딸이 아니라, 울 엄마 딸로 태어나서 울 엄마의 잔정을 닮아 있는 내가 좋았다.
조금은 가난하고 동생이나 엄마에게 욕을 먹는 언니이고 큰 딸이지만
내가 울 엄마 딸이고, 내 동생 언니인 것이 고맙게 생각됐다.
줄줄 모르고 늘 받으려고만 하는 시어머니를 닮지 않은 것이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다.
내게 두 여동생이 있는 것도 감사했고, 동생들이 기특하게도 바르고 속깊은 어른으로 자란 준것에도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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