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3. 26. 06:00ㆍ★ 나와 세상
요리를 하다가 실수로 칼에 손이 깊게 베어서 피가 좀 많이 난다고 호들갑을 떠는 여자는 아니었다.
학창시절, 곤충이나 벌레를 보고 놀래서 비명을 질러대던 여학생도 아니었다.
또래 남학생들이 나의 큰 키와 마른 체형을 가지고 낄낄대면서 놀려댄다고 화를 내며 반응을 보이던 여학생도 아니었다.
미혼시절 내가 좋아서 잠 못이룬다는 남자의 고백을 듣거나 연애편지를 받고 감동을 받던 처자도 아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피하는 채변봉투에 변담기나, 오바이트 한 내용물이 더럽다고 피하는 여자도 아니었다.
피비린내를 싫어하지 않았으며, 사람의 몸에서 나오는 대소변을 보면서 더럽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다.
물론 신체적으로 나오는 헛구역질은 했을 망정, 그런게 더럽다고 호들갑을 떨어 본 적은 없었다.
다만 내가 싫어하는 사람의 대소변 받아내는 것은 싫을 것 같고, 나의 게으름 때문에 못할수는 있다고 생각했었다.
친구들이나 회사동료가 술에 취해서 토해놓은 구토물을 고무장갑을 끼고 치우는 일 따위는 내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몸의 상처나 통증때문에 엄살을 부리는 사람도 아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위염으로 인한 구토증과 두통, 차멀미만은 참을 수 없어했었다.
목디스크때문에 어깨와 목언저리가 아플 때는 내 모가지를 내리쳐버리고 싶을만큼 답답함은 느낀 적은 있었다.
내가 사랑했던 남편과 아이들에게 받은 마음의 상처에는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심한 아픔을 느꼈던 적은 많았다.
수혈을 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하혈을 했던 첫 아이 출산때도 어지럼증과 두통에도 두려움따위는 전혀 느끼지 않았다.
난산이라고 겁을 줄 때도, 되려 나의 과다한 출혈때문에 병원측 관계자들의 부산한 움직임의 대해서 미안한 마음을 가졌던 산모였을뿐이었다.
원추절제술 후에 상처는 잘 아물었다고 했었다.
그 후, 폐경이 지나지 않는 나는 한 달에 한 번씩 하는 마술이 있었다.
그 때부터 시작된 유난한 허리뻐근함과 하혈이 열흘넘게 계속되었다. 물론 그 때도 겁을 내거나 걱정은 하지 않았다.
친정엄마가 계실때는 되도록 외출을 삼가했었고, 엄마가 내려가신 후에는 휴일이라서 병원을 갈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계속되는 하혈의 대해서 수술했던 병원에 문의해봐야겠다고만 생각했었다.
큰 걱정은 하지 않았지만 조금은 두려움도 있었을 것이다.
국립암센타 방문을 해서 기다리는 동안에는 긴장이 되었다.
보호자 없이 왔다고 뭐라고 하시던 의사선생님이 다음 진료일에는 꼭 보호자와 함께 오라고 재차 당부를 했다.
동생과 남편이 병원 진료일날 동행하겠다고 했지만 내가 단호하게 거절을 했었다.
나의 병을 누군가에게 의지하려는 나약한 내 마음을 내 스스로가 처음부터 다지고 싶어서였다.
내 병은, 나 혼자서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병으로 인해 다른 사람, 가족들에게 피해를 줘서는 안된다는 생각은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한 사람의 병 때문에 남은 가족들이 고생하고 힘들게 보내는 거, 내 경험으로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주체가 되고, 내가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가족은 나에게 응원과 힘은 줄 수는 있지만 그 이상의 힘겨움은 오로지 나만의 몫이다.
내가 그리도 싫어하고 나를 힘들게 했던 그 어떤 분과는 다른 방식으로 내 병을 이길 것이고, 다른 가족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것이다.
자궁적출은 좀 더 생각해보자는 의사선생님의 말씀에 희망을 갖게 되었다.
조직검사 슬라이드를 다시 검사해서 자궁적출을 할건지, 다시 한 번 원추 절개수술을 할건지는 전화로 알려준다고 했다.
암환자들만 있을것 같은 암센타 종합병원 대기실에서 눈물을 보이는 사람들을 여러 명 볼 수 있었다.
기다리는 시간이 더 힘들었던 것 같다. 긴장을 안하려고 하는데도 눈물이 자꾸 나올 것 같기도 했었다.
0기인 암인데도 이러한데..... 말기암환자들의 마음은 어떠할지...... 되도록 더 빨리 그 병원을 빠져나오고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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