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던 시인에게 빠졌다

2013. 6. 4. 15:07글쓰기 공부, 연습

 

 

 

 

문창과 공부를 시작하기 전까지 유명하다는  시인 "고은"이 누구인지도 몰랐다.

중고교 시절 교과서에 실린 시와 시인 말고는 시의 대해서는 아는 게 거의 없었다.

소설은 좀 읽었지만 "시" 와는 거리가 먼 사람으로 살았다.

문창과 공부를 시작한지 4개월 째에 접어 들고 있지만, "시" 는 여전히 내겐 어렵게 느껴진다.

감동적이고 훌륭한 시라고 칭송 받는 요즘 시를 읽고, 감동을 느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신춘문예나 무슨 문예지에 당선작이라고 올라온 시와 소설들을 읽고  

재밌다거나 훌륭하다는 느낌을 받아본 적도 없었다.

 

시동아리 교수님에게 용기를 내서 이런 나의 무식함을 드러내는 질문을 했었다.

왜, 전 시가 어렵고 시를 읽고도 전혀 감동을 받지 못하는거냐고,

제가 정서적으로 넘 메마른 사람이라 그러는 것이냐고............

그건  살면서 내가 시를 자주 읽지 않아서, 시를 읽는 눈을 갖지 못해서라고 하셨다.

시를 많이 읽고, 가까이 하다보면 조금씩 시를 읽는 재미를 알아가게 될거라고 하셨다.

이렇 듯 시를 어려워 하고, 시를 좋아하지 않는 내가 요즘 들어 시인 "윤동주" 에게 빠져 들고 있다.

 

 

 

 

 

 

 

 

지난 일요일에 서울 종로구에 있는 "윤동주 문학관"을 다녀왔다.

" 문학기행 창작의 산실을 찾아서" 과목의 과제 때문에 남편과 작은 딸과 함께 짧은 나들이를 했었다.

과제제출기한은 6월 18일까지인데, 이 번주 금요일에 가슴 혹 제거 수술을 하게 되면

최소 1주일동안은 상체를 움직이는 게 불편할거라는 의사말이 생각나서 미리 다녀온 것이다.

그리고 그제께 6시간이 넘는 시간동안을 노트북 앞에 앉아서 기행문을 작성을 해서 과제를 제출했다.

요즘 나는 6주차 강의에서 배웠던 민족시인 윤동주의 시에 빠져 있다.

대한민국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던 국민이라면 누구나가 알고 있는 시

 "서시" 와 "별 헤이는 밤" 을 하루에도 몇 번씩 읊으면서 가슴 저림을 느끼고 있는 중이다.

열 네살 된 작은 딸에게 부끄럼을 아는 순수한 청년시인 윤동주에 대해서 나 혼자 들떠서 설명을 하기도 한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작은딸에게 윤동주시인의 "서시"를 수도 없이 낭독해주면서 나 혼자만의 열정에 들떠 있기도 하다.


"혜미야, 얼마나 순수하고 강직하면 나뭇잎 사이에 이는 바람에도 부끄러워할까?

얼마나 순수하고 맑은 사람이면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걸까?

엄마도 학교 다닐 때는 가을하늘처럼 맑고 순수한 마음으로 이 세상을 살고 싶었는데...

옥살이를 하면서 하루 종일 노동에 시달리고 생체실험대상이 되서 말라 죽어가면서도

윤동주시인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문학공부를 위해 일본 유학을 결정하고 어쩔 수 없이 창씨 개명을 할 수 밖에 없는 윤동주 시인의 심정이

어떠 했을지 생각해 본 적 있니? 그런 마음을 고스란히 읊은 시가 "참회록" 이란다.

나라 없는 설움에 이 젊은 아저씨가 얼마나 가슴 아파 했을을까? 혜미야, 너 나라 없는 설움이 뭔지 아니?

혜미도 그 날 문학관에서 진열되어 있는 윤동주 시인의 친필 원고 봤지? 필체만 봐도 알겠지...?

그 아저씨가 얼마나 영혼이 맑은 사람인지.............................."

 

혼자 감동받아서 들떠있고 흥분 하는 마흔 네살의 엄마모습을 조금은 어이없어하던 작은 아이가 물었다.

"엄마, 그 시인의 대해서도 국어시험에 자주 나와? "라고 물어본다.

뎅~~~

중1인 작은 아이 국어교과서엔 윤동주의 "새로운 문" 이라는 시가 실려 있다.

그랬다.

중학생인 작은 딸에게는 시도 소설도, 모든 문학작품, 시인과 작가들도

연도별로 분류를 하고, 그 작품이 쓰여질 당시의 시대적인 배경과 작품세계에 대해서

이론적으로 머릿속에 주입해서 외워야 하는 국어공부의 일부로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안타까웠다.

하지만 나도 학창시절엔 그랬을 것이다.

시는 국어과목중 좀 이해하기 힘든 부문이었고, 문맥상으로 맞는 말인지, 어떤 비유법으로 표현되었으며

어느 문구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는, 교과서의 내용으로만 생각했을 것이다.

중3인 큰 딸도, 윤동주 시인의 대해 아는 거라고는 국어교과에서 배웠던 이론적인 지식외에는 아는 게 없었다.

김소월 시인도 그랬고, 중1, 중 3 내 두 딸들에게는  "시"와 "시인"들은 국어교과서에 배운 공부의 일부일 뿐이고

시험문제 출제 빈도가 몇%나 되는지가 더  중요할 뿐, 학창시절 한 두편의 시 정도는 외우는 낭만적이고 감수성이 풍부한 여학생의 모습은 없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서시의 이 부분은 읊을 때마다 눈물이 날 것 같다.

학창시절에 이 시를 읽을 때는 지금처럼 가슴이 저리진 않았다.

마흔 네살이 된 지금에 와서 소리내서 이 시를 읊으면 눈물이 날 것 같아서 목소리가 떨려서 나온다.

새삼 너무 세속적이고 속물로 변한 내 자신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일 것이다.

내 두 딸들도 어떤 시라도 좋으니, 가끔 즐겨 낭독하고 좋아하고 감동 받은 시 한 편이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