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을 가까이하면, 시를 이해할 수 있을까?

2013. 6. 14. 15:57글쓰기 공부, 연습

 

 

 

달팽이가 사는 법

                                              오 봉 옥

 

 

나도 한때는 눈물 많은 짐승이었다. 이슬 한 방울도 누군가의 눈물인 것 같아 쉬이 햝지 못했다.

하지만 난 햇살이 떠오르면 숨어야만 하는 존재로 태어났다. 어둠 속에 갇혀 홀로 세상을 그려야 하고,

때론 고개를 파묻고 깊숙이 울어야만 한다.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 그런 천형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인가, 등에 진 집이 너무도 무겁다.

음지에서, 뒤편에서 몰래몰래 움직이다보면 괜시리 서럽다는 생각이 들고, 괜시리 또 세상에 복수하고 싶어진다.

난 지금 폐허를 만들고 싶어 당신들의 풋풋한 살을 야금야금 베어 먹는다.

 

 

 

<문예창착 첫 걸음> 과목을 강의하시는 교수님의 시집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시다.

나는 슬프고 어두운 시를 좋아하는 것 같다. 그런 시만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미있고 밝은 시를 읽고도  경쾌하다거나 아름답다고 느끼지 못한다.

활달하고 밝은 사람보다는 어둡고 깊은 슬픔이 느껴지는 사람에게더  끌리는 것처럼 시도 그런 것 같다.

시를 많이 읽지는 못하고 있지만, 예전에 비해서는  드문드문이나마 시집을 펼쳐 읽는 경우가 생겼다.

수필집도 읽고, 좋아하던 쟝르가 아닌 책들도 찾아서 다양하게 읽으려는 노력도 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기쁜 것은 작은 딸이 <시>를 외우려는 모습을 보이는거였다.

어젯밤에 작은 딸이 그런 말을 했다.

도덕시간에 선생님이 윤동주 시인에 대해 조사해 올 사람과

서울에 있는 윤동주 문학관에 다녀온 사람 있으면  손을 들어보라고 해서 작은 딸이 손을 들었고,

윤동주 시인의 시 중에서 알고 있는 시 있으면 말해보라고 했단다.

그래서 엄마가 잠들때까지  떠들던 <서시>와 <참회록>을 발표해서 혼자 뿌듯함을 느꼈다고.....

 <참회록>이라는 시를 엄마한테 이야기를 듣고나서 읽으니 굉장히 슬펐다고 했다.

선생님에게 칭찬을 들어서 기쁜게 아니라, 엄마가 말해준 시인의 시를 그저 단순히

교과서에 실린 분석하고 외워야 하는 이론이 아니라, 슬프다는 느낌을 알 것 같다는 작은 딸의

변화가 너무 기뻤다. 그리고 나와 <시>에 대해서 짧지만 그런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행복했다.

 

 

 

 

 

 

 

 

시는 5편, 단편소설은 2편, 장편소설은 1편 중에서 선택해서  한 가지라도 제출하라는 문자를 3주일전즘에 받았다.

하지만 난, 점수하고는 관계가 없고, 과제도 아닌 것 같아서 한 편도 제출하지 않았다.

아니 제출 하지 못했다.

설명을 들을때는 시도 수필처럼 쓰고나서, 쳐내면(다듬고 잘라냄) 된다고 생각하는데

막상 <시> 를 쓰려고 하면  머릿속이 하애진다.

여전히 <시> 에 대한 고정관념을  갖고 있어서다.

기말고사로 대체하는 과제물 제출은 이 번주 화요일을 마지막으로 마쳤다.

마지막 한 과목만 내일부터 정해진 시간에 시험을 치루면 올해 문창과 1학기 수업은 끝이 난다.

글쓰기에 자신감이 없어지고  세상에는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은 수두룩 하다는 걸

문창과 1학기 수업을 들으면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절실하게  느꼈다.

그럼에도 계속 배워보고 싶다는 바램은 여전하다. 욕심일 수 있고 뭘 이뤄내지 못하더라도  조금 더 해보고 싶다.

2013년 상반기 내 생활의 활력소가 되어줬던 서울 디지털 대학 문창과 강의였다.

동아리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도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내가 잊고 싶은 현실에 조금은 덜 집착할 수 있었다.

 

나아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앞으로도 별 발전이 없을 수도 있다.

그래도 더 해보고는 싶다.

내가 좋아하니까.... 버겁고 힘들기도 했고, 글 잘 쓰는 사람들 틈에서 작아지기도 했지만

배울수 있는 시간들 가지면서, 글쓰는 사람들과 함께 시간들이 너무 좋았다.

어제도 시립도서관에 들러 스물세살때즘에 읽었던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 1, 2권을 빌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