뻥쟁이 여자의 주절거림

2014. 1. 17. 11:54글쓰기 공부, 연습

 

 

 

 

 랍장 정리를 하다 들을 발견했다. 밋밋한 절벽가슴이 좀 있어보이고 싶어 브래지어 속에 집어 넣던 속옷의 보정기구(?) 같은 것들이다.

내가 남자가 아니라 여자라는 것을 한 번 더 확인시켜주던 가슴의 2차성장이 시작되던 중학교 시절에는 이 이라는 것이 뭔지를 몰랐다.

이 빵빵하게 들어가 있는 속옷을 입거나, 속옷에 을 집어 넣기 시작한 것은 여고를 졸업하고 성인식을 치룬 다음부터였던 것 같다.

학창시절에는 밋밋한 절벽가슴을 가진 내 몸에 만족하면서 지냈다.

체육시간 달리기를 할 때마다 큰 가슴을 가진 친구들을 보면서 불쌍하다는 생각까지 했었다.

등짝에 달라 붙은 것처럼 겨우 형태만 갖추고 있던 사춘기시절에도 가슴이 조이라도 더 커질까봐

가슴을 붕대로 둘둘 말고 그 위에 속옷을 입을 정도로 가슴 큰 여자가 될까봐 전전긍긍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때 굳이 그런 수고를 하지 않았어도 내가 가슴 큰 여자로 살 일은 절대적으로 없었을텐데 참 쓸데없는 노력을 했던 것 같다.

 

 

 

예뻐 보이고 싶어 외모 치장하는 일에 한창 부지런을 떨던 20대 때도 가슴 큰 여자가 부럽다는 생각은 안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가슴이 제법 있어 보이려고 속옷에 을 넣기 시작했던 것 같다.

빈약한 내 가슴에 대한 친구들의 우스개소리에도 전혀 상처 받지 않는 척 했지만 여자를 상징하는 빵빵한 가슴을 나도 갖고 싶어했는지도 모른다.

스스로가 아스팔트에 둘러 붙은 껌딱지 같은 가슴을 지녔기에 옷의 맵시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을 넣는거라고 핑계를 댔지만 글쎄, 진짜 그 이유뿐이었을까?

그 때부였을 것이다.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을 치기 시작한게.

실제의 내 모습보다 좀 더 괜찮은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을 치고 그래서 나도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곧이 곧대로 믿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적당히 뻥을 치면서 살다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남들에게 하는 말들이 진짜인지, 아님 약간의 과장이 들어간 말들인지

나 자신이 헷갈려 하는 뻥순이가 되었다.


남편이 나와의 결혼을 허락받기 위해 친정엄마를 찾아온 날, 엄마는 남편에게 말씀하셨다.

나를 키우면서 내가 엄마 속을 썪힌 적이 한 번도 없어서 욕을 하거나 매를 든 적이 없었다고 하셨다.

내 딸이지만 너무 반듯하고 착하다면서 은근히 남편에게 내가 과분한 여자임을 인지시키려고 하셨다.

내 어린시절 기억속엔 부지깽이든 나뭇가지든 엄마 손에 들리는 것들로 수시로 두드려 맞은 적이 많았고,

호랭이 물어갈년, 염병할년이라는 욕설 따위는 일상적으로 듣고 자란 나였는데 말이다.

시어머님도 마찬가지셨다. 남편집에 인사를 하러 갔을 때 그러셨다. 자부심 가득한 얼굴로 남편을 키우면서

단 한 번도 매를 들어 본 적이 없는 순하고 착한 아들이었고, 남편 때문에 힘든적이 없었다면서 시어머님도 아들이 내게는 과분한 남자임을 강조하셨다.

그렇게 순하고 착하다고 자랑하시던 아들이랑 17년을 살면서 산전수전 다 겪고 살아온 내게

지금도 어머님은 아들에 관한 뻥들로 가득한 이야기를 계속하고 계신다.

 

 

몇 년만에 여고동창회에 다녀왔다. 한 친구가 이번에 수능을 본 아들을 둔 친구에게 물었다.

질문을 받은 친구가 겸손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들이 운이 좋아서 서울 관악산 밑에 있는 대학에 합격했다고.

일시에 좌중이 조용해지고 모든 친구들의 시선이 그 친구에게 쏠렸다. 얼마 전에 분당에 있는 52평 아파트에 입주했다는 친구도,

아들이 상사고에 다닌다는 친구도, 여성잡지나 방송에도 가끔씩 나오는 저명인사 남편을 둔 친구도,

학교 선생님 직업을 가진 친구들 모두가 서울대에 합격한 아들을 둔 친구에게 질문공세을 퍼부어댔다.

아들이 서울대에 합격했다는 친구가 대답했다. 자기는 한 게 없다고, 직장 다니느랴 수험생 아들 밥도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는데

아들이 스스로 잘해줘서 너무 미안하고 고맙다는, 어디선가 자주 듣던 인터뷰 내용과 똑같은 말을 했다.

친구 아들의 서울대 합격소식을 듣기 전까지 우리들은 그런 말들을 하고 있었다.

학벌이 뭐 그리 중요하냐, 난 애들에게 공부 공부 안한다고, 인성이 중요하지 명문대만 들어가면 뭐하냐고,

사교육이 애들을 망친다면서 요즘 아이들 인성을 걱정하고 성적에는 초연한 엄마인척 하고 있었다.

학벌 따위가 뭬 그리 중요하냐면서 인성교육에 더 신경쓴다는 친구들의 말들은 다 뻥이었는지

아들이 서울대에 합격했다는 친구를 바라보는 친구들의 눈길에는 한 없는 부러움이 드러났다.

아들이 서울대에 합격하기까지 본인은 한게 하나도 없다는 친구의 말도 뻥인지 진짜인지 모르겠지만 자부심과 긍지가 가득한 표정만은 숨길수가 없었다.

 


술꾼인 남편도 수시로 내게 뻥을 친다. 낼 모레면 오십줄에 들어서는 남편도 한 물 갔다.

1,2,3차는 기본이던 과거는 이제 옛이야기가 되었다. 술에 취해 알딸딸한 기분좋은 시간은 짧아지고,

숙취로 머리 아프고 파도를 타는 속울렁거리는 괴로운 시간은 길어졌다.

그래서 술 마신 다음 날이면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겠다는 금주를 선언한다.

남편은 내게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남편의 그런 말들 중 일부는 참일 것이고,

일부는 중년에 마누라에게 살아남기 위한 처세술일 것이다.

술에 취해 망가진 남편의 모습을 보고 혀를 차던 나도 이제는 마음을 편히 먹고, 마음을 비우는 연습을 잘 하고 있다.

아무리 술을 많이 마셔도 흐트러지지 않는다는 남편의 헛소리에 나도 이제는 실실 웃으며 넘기는 날도 많아졌다.

실제로는 지금도 술꾼인 남편에게 순간순간 치솟는 분노심을 조절 못할 때가 많은데 남편과의 다툼을 피하기 위해 나는 뻥을 친다.

우리부부는 그렇게 서로에게 수시로 뻥을 치면서 살고 있다.
 
 

아직까지도 내 서랍장에 넣어두고 애용하고 있는 내 뻥들을 정리하면서 이제까지 살면서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뻥을 치고 살았을까를 생각해 봤다.

나는 요즘에도 가족들이나 친구들에게, 어른들에게 수시로 뻥을 친다.

때로는 내 자신이 썩 괜찮은 사람처럼 보여지고 싶어서 뻥을 치기도 하고,

어떨 때는 내 대인관계에 장애가 될 수 있을 거라는 계산에서 범죄가 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 가벼운 뻥들을 치면서 살고 있다.

인생은 다 뻥인겨.... 라고 말하던 어느 친구의 말대로 보통사람들이 살면서 자잘하게 지껄이는 뻥들은 남에게 큰 해가 되지 않는 한,

때로는 삶의 활력소가 되어주기도 한다.

적당한 뻥이 돈 들어가는 일도 아니고 약간의 거짓이 때로는 사람관계를 더 좋게 하는 경우가 있다는 핑계로

간헐적으로 적당한 뻥을 치면서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을 이어가면서 살고 있다.

정치인이나 기업인들이 국민들을 상대로 뻥을 치는 것은 엄청난 욕을 먹고, 국민을 우롱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나 같은 아줌마가 가족들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약간의 뻥을 치면서 사는 것은 용서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래도 되도록이면 뻥은 안 치고 사는 정직한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엇갈리는 바램도 함께 가져보게 된다.

 

 

 


 

예전에 제가 블로그에 올린 글을 토대로 이야기를 더 첨가해서

이번 1월 수필합평날에  제출해서 교수님과 학우분들에게 합평을 받은 글입니다.

그런 부분에서 이번 글은 재미도 있었고 산만하지 않았다는 합평을 들었습니다.

(예전에 제가 올린 글) http://blog.daum.net/bo8284/13522533

 

 

 

** 제가 가장 자주 지적받았던 부분

1. 한 가지 주제만 가지고 글을 써라, 소재가 너무 많아도 글이 산만해진다

2. 한 편의 글에 너무 많은 이야기를 쓰려고 하지 말아라

3. 수필은 자기 주장이 너무 강하면 안되고, 어떤 글이라도 설교조로 쓰면 더더욱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