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출근해서, 새벽에 퇴근하는 남자

2014. 3. 20. 11:15★ 부부이야기

 

 

 

 

 

 

 

 

새벽 2시 40분에 현관 번호키 누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남편이 귀가한 것이다. 남편의 뒤로 이른 봄 새벽의 찬기운이 느껴졌다.

실핏줄이 터져서 안과에 다녀온 남편의 눈은 술기운 때문에 더 시뻘개져 있었다.

후추레한 차림새한 남편의 오른손에 약봉지가 들려있었다.

술 깨는 약이었다. 어제 그제 하루를 거르지 않고 술 마신 담에 그 약을 복용하고 있다.

 

남편은 2월달에는 술을 마시지 않는 날이 여섯날뿐이었다.

회사의 업무(?)적인 술자리에서도 술을 마셔야 했고,  집안의 행사때도 술을 마셨다.

이 달 3월 20일 오늘까지 술을 마시지 않았던 날도 3일뿐이었다.

작년에 이어 오늘까지도 나는 술이라고는 입술에 축이는 행동은 해본 적이 없다.

는 술을 비롯한 탄산음료나 커피 한 잔도 입술에 축여본 행동도 한 적이 없었다.

 

 

남편은 지난달에 이어 이 달에도 안과진료를 받았다.

작년 연말에 했던 건강검진에서도 고지혈증 치료제를 먹어야 한다는 진단과 아울러

혈압이 정상치보다 높게 나왔으며, 당뇨수치도 정상범위에서 조금 높은 수치가 나왔다.

남편은 자신의 건강 적신호에 내게 양파다 뭐다 좋은것들을 챙겨달라고 했다.

나는 남편의 건강을 염려해서인지 자신의 안위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건강식품들을 열심히 챙겨줬다.

 

나는 며칠전에 일산 암센터를 다녀왔다.

상피암 진단을 받은지 1년이 넘었지만 두건과 모자를 쓴 중증 암환자들과 섞여

자궁암 진료실에서  기다리는 자신의 모습이 아직도 어색하기만 했다.

예약진료였음에도 불구하고 진료실 앞에서 1시간을 넘게 기다렸다.

속옷을 벗고 헐렁한 홑치마만 입고 진료대 올라가서도 10분 넘게 기다려야했고, 

자동의자에 몸을 맡기고 다리를 벌려 자신의 가장 은밀한 부분을 남자의료인에게 보여줘야 했다.

번번히 치욕스러움과 모멸감을 느껴야 하고,  칸 너머에서 들리는 또 다른 중증 암환자와 나누는 의사의 대화도 들어야 했다.

 

 

 

 

시어머님 생신을 다녀와서  가까이 사는 동생 생일상을 차려주기 위해 마트를 다녀왔다.

남편은 처제 생일날 축구를 다녀오면서 처이모님을 집으로 모시고 왔다. 

동생의 생일상을 차려준 나는, 오후에는 동생 가족들과 이모님을 모시고 갈비집 외식을 했다.

남편는 그 날도 술을 마셨다. 여자가 운전을 해서 이모님을 집까지 모셔다 드렸다.

그리고 이모가  김서방 옷 한 벌 사으라고 주신 상품권을 남편 손에 쥐어 줬다.

 

 

남편은 월요일은 길동에서, 화요일은 방이동에서, 수요일은 천호동에서 술자리가 있었다.

하루도 쉬지 않고 마셨고 매일 술 깨는 약을 먹고 출근을 했다.

이 달부터 남편의 월급이 인상된 탓이다. 다른 직원들은 몸을 사리며 피하는 술자리를 남편은 피하지 않는다.

공부를 해보겠다는 다부진 결심을 한 큰 아이의 뒷바라지를 해주고 싶은 아빠의 마음 때문이다.

구멍난 운동화를 신고 다니는 작은 아이의 투덜거림을 듣고 새 운동화를 사주고 싶은 아빠 마음때문이다.

 

나는 소소한 부업으로 3년넘게 푼돈으로 모았던 적금을 깼다.

다음 달에 이사할 집 계약서를 쓰면서 계약금으로 사용했고, 나머지 돈은

이사비용과 내일이면 빠져나갈 작은아이 수학여행 경비로 통장에 넣어뒀다.

알바정보지를 뒤지던 여자는  요즘에는 아이 돌보미와 가사도우미일도 알아보고 있다.

오후에는 큰 아이 입시설명회와 담임면담을 다녀와야 한다.

 

 

 

 

 

큰 시누는 가게를 팔았다면서 여기저기 아프다고 징징대는 하소연을 전화기를 잡고 1시간을 넘게 한다.

시어머니는 백수인 작은아들의 일자리를 또 알아봐달라고 매일 성화시다.

지난 번에도 남편이 알아봐준 일을 두 번 나가고  접은 사람을 또?
나는 집안일을 하지 않을때에는  학기에 수강신청한 과목 공부에 열중하고 있다.

모든 걸 잊고 싶기 때문이다. 장학금 78만원을 혜택받아 이번 학기에는 10여만만 납부했기에

다음 번에는 전액 장학금(?)을 한 번 노려볼까 하는 얼토당토 않는 욕심을 부리고 있는건지도 모른다.

 

나는 긍정의 힘을 얻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자신이 누리고 가진게 얼마나 많은지를 생각한다.

가끔은 모든 걸 잊고 요즘 듣고 있는 세계문학기행에서 알게 된 천재문인들의

삶과 고단하고 녹녹치 않은 현실에서도 세계적인 작품을 그들속에 묻혀 살고 싶다는 바램도 가져본다.

알아가고 배울수록 모르는게 더 많아지고 나의 무지함에 절망하면서도 행복하다는 생각도 함께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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