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대상

2015. 1. 13. 08:26★ 부부이야기

 

 

 

 

한 달전 새벽 2시, 베란다에 쭈그리고 앉아 소리를 죽여가며 울었다.

전혀 발전이 없는 초라한 내 삶이 지긋지긋했고 그런 우와중에

내 한풀이를 글쓰기로 풀어내겠다고 우아한(?) 여자인 척 하는 내가 넘 가증스러웠다.

구질구질한 내 결혼생활도 별로 변한 게 없고 남편이란 작자의 횡포 또한

시간의 차이가 있을 뿐 그대로인데 무슨 희망을 가져보겠다고 그리 바둥거리며 살았던가 싶었다.

 

2014년 한 해 동안 맞벌이를 하지 않고 약간의 빚을 갚을 수 있었다.

전년도에 비해 지출이 많아진 현실을 감안하고 내가 알바도 하지 않는 상황을 감안하면 꽤 열심히 살았던 한 해였다.

하지만 함께 사는 동거인의 한 번의 실수로 다시 제자리 걸음을 한 꼴이 되어 버렸다.

절망했다. 동거인이 원망스러운 것도 아니었다.  

그런 상황에도 내게 주어진 ~노릇을 하기 위해 기여히 약속을 지킨 내 융통성 없음이 화가 났다.

 

 

밤새 울어서 퉁퉁 부은 눈을 얼음으로 가라앉히고 시댁을 향했다.

가는 내내 차 안의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사춘기 두 딸은 그런 분위기를 모른척 했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시누 아들 대학 합격을 축하해주는 고깃집 외식을 마치고

얼마전에 이사한 시누집까지 들러  과일과 휴지를 내래 놓고 왔다.

군대에서 휴가 나온 형의 허름한 겨울 잠바를 물려 입은 시누 작은 아들을 데리고

백화점에 가서 대학 입학식 때 입을 겨울 외투와 니트를 사줬다. 보미가 골라준 다지인으로....

그리고 군대에서 휴가 나와 점심때가 지나서까지 자고 있는  시누 큰 아들 용돈을

시누에게 전해주고, 여직까지 백수로 있는 시동생 용돈을 넣은 봉투를 시어머님에게

전해 주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날 총 60만원의 지출이 있었다.

 

 

 

 

 

별일 아닐 수도 있었다.

내가 수필 동아리를 다녀오느랴 남편 대리운전을 가지 않는 날 일어난 작은 사건이었다.

남편은, 여리고 약한 사람이다. 근4개월 넘는 시간동안 남편 대리운전을 하면서

내가 느낀 건 남편은 주류 영업을 하기엔 넘 유약하고 술을 너무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거다.

그리고 남편 직업의 특성을 알게 되었고 이해할 수도 있게 되었다.

이해가 깊어진만큼 남편에 대한 연민도 깊어졌다. 나의 경제적인 무능함도 많이 미안해졌다.

 

하지만 간만에 하게 된 부부싸움의 뒷끝은 예전보다 더 날 깊이 절망하게 만들었다.

블로그상에서도 나를 숨기고 싶어하는 마음을 느낀다.

발전이 있고 희망을 보여주고 싶은데 내 현실은 그러지 못하다는 생각에

내 살아가는 모습 중에서 이런 저런 것들은 빼고 적당한 것들만 글을 쓰려고 한다.

 

 

남편은 1월 2일부터 고지혈증, 위궤양, 약간의 빈혈, 높은 콜레스테롤 수치 때문에 약을 복용하고 있다.

그로 인해 금주를 한지 열흘이 넘어가고 있다. 이 달 말엔 대장내시경도 예약되어 있다.

건강에 빨간 불이 들어오자 귀가시간이 빨라졌고 (그래도 밤 9시는 넘음) 육류와 기름기 많은

음식을 피하고 야채 위주 식단을 짜고 있다.

이틀에 한 번씩 오쿠에 양파즙을 내려주고 아침마다 사과와 양배추를 갈아주고 있다.

 

남편에 대한 내 마음은 밉고 미안하고 짠함이 범벅이다.

지금도  남편이 저녁밥을 집에 와서 저녁밥을 먹는 다고 하면

어릴 때 소풍 하루전날밤 아이마냥 설레고 좋아서 가슴이 쿵쾅거릴 정도다.

나도 여느 아내들처럼 남편이 집에 와서 저녁을 먹는다고 하면

귀찮아하는 무심한 아내이고 싶은데 난 그게 안된다.

아이들과 같이 저녁을 먹은 뒤 설거지까지 다 마쳤어도 남편을 위해

쌀을 씻어 새로 밥을 하고 된장국을 새로 끓이고 감자를 볶고 오이를 무치는

부지런을 떨면서 실실 웃는  결혼 18년차 주부인 나는 주변 사람들 말 처럼 <연구대상> 아내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