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1. 13. 11:03ㆍ★ 나와 세상
자정이 넘은 시간에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들어온다.
이번 술자리엔 내가 대리운전을 가지 않았다.
연일 이어지는 술자리 때문에 우리집 하숙생도 힘들어 보인다.
매달 열심히 일해서 번 새경을 마누라에게 갖다 바치고도 큰소리 한 번 못 치고 사는 남편이 가엾다.
잠들어 있는 자기를 닮은 두 딸들 방을 들여다보고는 술과 피로에 지친 몸을 거실바닥에 뉘인다.
충혈된 눈으로 겨우 눈을 뜬 남편이 갈증을 호소한다.
오쿠에 내린 양파즙 한 잔을 마시고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한다.
얼굴도 안 보이고 다녀오겠습니다 한 마디만 내던지고 현관문을 나서는 딸 들을 불러 세워 낡은 지갑속에서
몇 장 안되는 푸른색 종이돈 중에 한 장씩을 꺼내 딸 들 손에 쥐어준다.
까끌한 입속에 북어국 몇 숟가락을 밀어 넣고 밥알을 세듯 겨우 아침을 먹고 출근을 한다.
생각해보니 남편이 나와 아이들을 위해 돈벌이를 한 게 18년이 넘었다.
힘에 부치고 지칠 때도 되었을 것이다. 쉬고 싶은 적이 얼마나 많았을까? 싶다.
갈수록 왜소해보이는 체구와 좁고 축 쳐져 보이는 어깨라도 툭툭 털어주면서
웃어주고 싶은데 어렵지도 않는 그 일을 못해주고 있다.
술 한 잔에 취해 주정을 할 때도 너그러이 받아준 적도 없는 마누라였다.
가끔씩은 저 남자도 이 집안의 머슴살이가 힘겹고 고되서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었을텐데
그럴 때마다 주정으로 취급해서 일절 받아주지를 않았던 것 같다.
중년의 우울함과 서러움에 눈물도 흘리고 싶어도 그런 모습을
내게 들키지 싶어하지 않아 주정처럼 주절거렸던 뿐일텐데....
1주일에 두 세 번하는 대리운전인데도 고단하고 피곤하다고 느낄 때가 있다. 간사한 마음이다.
두 딸들도 이제 엄마의 손길을 많이 필요로 하는 어린애들이 아니다.
뒤늦게 시작한 공부도 하나의 핑계일 뿐 일상의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해 조금씩 나는 손을 놓고 싶어한다.
이런 게으름을 감추기 위해 부러 이런 저런 책들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분명히 나에게 도움이 되는 공부들이지만 그렇다고 내가 돈벌이를 못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
친구들 대부분은 맞벌이와 아울러 자녀들의 진로나 집안 일과 시댁 친정일도 모두 잘 챙기면서 산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자책하는 것도 더 이상은 하지 않는다.
비교에서부터 인생의 불행은 시작된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일 것이다.
겉으로는 새로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큰 변화는 없다.
아이들이나 남편과의 관계도 원만하게 유지되고 있다.
그런데 되려 이런 평범한 일상이 문득 불안하게 느껴질 때가 있으니
그 동안 내가 어떤 모습으로 살았나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아내로서 엄마로서가 아닌 나로 서는 것을 해보고 싶어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마음 찾기라는 공부를 하고 오프라인 모임에 나가면서 가족이 아닌 나 자신을 찾아 알아가고 있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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