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2. 25. 11:56ㆍ★ 나와 세상
여느해와 다르지 않는 명절을 보냈다.
시가에 가면서 먹을 음식을 준비해 갔고 어머님에게 드리는 봉투와
시동생에게 줄 소액의 용돈과 큰 시누의 아들 세뱃돈을 준비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내 딸들도 시누들과 시어머니에게 세뱃돈을 받았다.
이번에도 아이가 없고 맞벌이를 하는 막내시누가 가장 많은 지출을 했을 것이다.
시부모님과 한 집에서 살고 있는
막내시누는 이번에도 친정에서 차롓상을 치우고 바로 속초로 여행을 떠났다.
그런 막내시누를 부러워 하는 큰 시누의 말에 난 별로 공감하지 못했다.
결혼 후, 내게 가장 좋은 휴식은 내 집에서 아무 것도 안하고 뒹구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내 가까이 사는 막내동생은 설연휴 내내 고기집에서 서빙 알바를 했다.
생후 6개월된 아들내미를 데리고 혼자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지고 15년 넘게 살아온 막내동생이다.
공부에 전혀 흥미 없어하던 아들내미가 벌써 올해 중3이 된다.
내 작은딸과 같은 중학교에서 싸이클 선수로 훈련 받은지 2년이 넘었다.(작년12월에 운동 장학금도 한 번 받았다.)
싸이클을 시작하고 사춘기를 지금만큼이라도 보낼 수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운동이나 예체능 학교를 다니는 자녀를 둔 부모가 그러하듯이 동생 또한
갈수록 경제적으로 중소기업 경리일로 받은 월급으로는 아들 뒷바라지와 생활를 하기가 버거울 것이다.
둘째동생이나 친정엄마의 경제적인 도움도 단칼에 거절하는 막내였다.
부모 형제에게 기대는 것도 습관이 된다고, 지금껏 엄마와 언니들에게 도움 받은 것만으로도
늘 미안하다는 말을 달고 사는 막내를 보면서 마음이 짠해질 때가 많다.
평일에 회사 다니고 이 달부터는 일요일마다 고깃집 알바까지 하면 넘 힘들지 않겠냐고 하면
할만하다고, 별로 힘들지 않다면서 지금은 평일 퇴근 후엔 컴활 자격증 취득을 위해 학원까지 다니고 있다.
간호조무사와 요양보호사 자격증도 취득 계획까지 세우고 있는 막내를 보면서 노후 경제활동에
대해 전혀 대비하지 못하는 내가 너무 부끄러워진다.
여느집 막내 같지 않던 부지런하고 속 깊은 막내동생,
맏이 역할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오는 둘째동생까지
두 동생들에게 항상 미안하고 부끄러운 큰 언니다. 우리집 자매들은 세상을 살면서 내 가족이 번돈 아니면
모두가 빚이라고 생각하고 공짜를 싫어하는 건 너무나 닮아 있는 것 같다. 이런 우리들 보고 병이라고 말하는
누군가의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시가에서 돌아오자 마자부터 연휴 내내 알바를 하느랴 혼자 있어야 했던 조카놈을 데리고
작년에 이 근처로 이사오신 이모님 댁부터 둘째 동생집으로 친정아버지가 모셔져 있는 절과, 고모집 까지 함께 다녀왔다.
날 키워주신 할머니 대소변을 6년 넘게 받아내시며 모셨던 작은 고모님은 나와 동생을 보고 부둥켜 안고 엉엉 우셨다.
우리만 보면 반갑고 짠하고 38년전에 돌아가신 오빠가(내 친정아버지) 생각난다고 하신다.(두어달 전에도 나와 둘째만 다녀온 적이 있다)
나와 동생들은 우리 친지분들중에서 작은 고모를 제일 좋아하고 존경한다.
친정엄마(울 할머니)를 6년넘게 대소변 받아내고 1년에 한 두번 들여다 보면서 1,20만원 봉투 한 장 달랑 건네며
자식 노릇, 손자 손녀 노릇 하려는 사람들의 돈을 10원 한장 쓰지 않고 통장에 넣었다가 할머니 장례식 끝나고
그 돈 전부를 제대로 살지 못하고 계시던 작은아버지에게 드렸던 분이다.(작은아버지 기여히 3년전에 뺑소니사고로 돌아가심-술 취해 도로에 누워계시다가)
고모님이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분이 절대로 아니셨기에 그런 행동을 하는게 결코 쉽지 않다는 걸,
결혼해서 살고 있는 나와 동생은 너무 잘 알고 있기에 그런 고모님과 고모부가 넘 존경스러웠다.
고모님의 4남 2녀 오빠 언니들도 모두 바르게 잘 컸기에 더더욱 더 그렇다.
고모부님은 술을 즐겨 하셨지만 평생동안 단 한 번도 술로 인한 실수를 하신 적도 없으셨고
늘 뵐 때마다 점잖고 그런 고모부님을 4명의 오빠들과 며느리와 딸들 모두가 마음으로 존경하고 있다는 걸
알기에 나와 동생도 그런 고모님과 고모부가 감사하고 존경스러운 마음이 가득하다.
고모님과 고모부님 두 분 다 평생 공장 생산직에만 종사하신 분이셨다.(논농사 쪼끔과)
큰 오빠는 대기업 생산직에 입사해서 차장급이 되었고, 둘째 오빠는 철도청 공무원,
세째 오빠는 **제지에 근무하고 있으며 막내 오빠는 중령으로 제대하고 현재 **시청 경호팀에 있으며,
딸들도 현재 일을 하고 있고 나와 동갑내기 딸은 고모집과 같은 시에서 고깃집을 하고 있다.
고모는 우리 자매들을 볼 때마다 기특해하고 대견해 하신다.
특히 고모의 오빠였던 내 친정아버지의 보수적이고 깐깐하고 빼빼마르고 뭐든 기록하는
습관을 맏이인 내가 그대로 닮았다고 고모님은 늘 나를 볼 때마다 보형이 넌 니 아부지를 빼다 박았다는 말씀을 자주 하신다.
우리는 울 할머니 마지막을 모셔준 고모님이 너무 감사하고 존경스럽고
학창시절 방학 때마다 고모집에 가서 한 달씩 지내다 온 적도 있었지만(방학만 하면 엄마에게 우리들을 고모집으로 보내라고 하셨다)
결코 우리에게 눈치를 주신 적이 없었다.(두분 다 공장을 다녀셔서 퇴근하면 8식구와 함께 밥을 먹었다우리자매들이랑 합하면 11명)
우리 자매들 모두는 그 때의 추억을 지금까지도 잊지 못하고 있다.
사람에 대한 존경하는 마음은 저절로 우러나는 것 같다.
나는 이렇게 살았다라고 입으로 떠들어서 알리는게 아니라 그 분 살아온 인생과
그 분이 해온 행동과 가정의 모습으로 판단 할 수 있는 것 같다. 내 기준에서는 그렇다.
나도 고모처럼 살고 싶다. 입으로 말로 떠드는 사람이 아닌 살아가는 모습 그 자체가
평범하지만 바른 사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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