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백 들어주는 남자

2015. 8. 7. 11:48★ 나와 세상

 

 

 

 

도서관 알바를 시작하고 내 퇴근시간에 맞춰 도서관 앞에서 남편이 기다려준 적이 있었다.

그런 날엔 술도 마시지 않고 이른 퇴근을 한 날이기도 했다.

일을 마치고 도서관을 나서는 내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하고,

그런 나를 바라보는 남편 표정에도 흐뭇함이 묻어있다.

집까지 자동차로는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 거리다.

나를 데리러 와준 날엔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수다쟁이 아내가 된다.

집 주차장에 도착해서는 차에서 내린 남편은 자연스럽게 내 손을 잡는다.

그리고 내 가방까지 들어준다. 됐다고 해도 마누라 고생했면서 가방을 뺏어 남편이 든다.

그럴때마다 가슴이 뭉클해지고 술만 아니면 더 이상 바랄게 없는 남편인데.....라는 생각을 저절로 하게 된다.

 

남편이 술만 마시지 않으면 나는 기운이 난다.

저녁 설거지를 해도 힘들지 않고 남편 엉덩이를 토닥거려주며 이뻐해준다.

그리고 말한다. 당신이 술만 마시지 않으면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가 된다고~~~

새벽에 들어와도 그 다음 날 들어와도 남편이 술에만 취해 있지  않으면 괜찮다고......

술 취한 당신이 싫을뿐이라고, 술 취한 남자는 당신이 아닌 것 같아서 싫다고~~

 

지금도 남편이 술을 마시지 않고 들어오는 날이면 설레는 마음으로

압력밥솥에 새로 밥을 하고 새로 찌게를 끓이고 반찬도 2,3가지를 꼭 새로 해서 밥상을 차린다.

그렇게 남편이 좋다. 남편이 좋은건지 아니면 술 취하지 않는 남편이 좋은건지 모르겠지만...

세상에서 유일하게 아직 내 가슴을 뛰게 하는 남정네는 남편 한 명뿐이다.

외간 남정네를 보고 설레어하거나, 멋진 남자 배우를 보고 로멘스를 꿈꿔본 적도 없다.

아니 있었다 쳐도 남편에게 다 말할 수 있을만큼 짧았고 그 정도가 옅었다.

나 같은 까칠함을 가진 여자에게 남편만큼 너그럽고 나를 인정해주고 믿어주는 남자는

세상천지에 없다는 확신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남편은 지금껏 살면서 어떤 일로도 날 의심하거나 추궁한 적이 없다.

내가 뭘 하겠다고 했을 때 말린 적도 없었다.

사이버상에서 글로 본인을 세상에 죽일놈을 만들어도

핀잔을 주거나 그만 둘 것을 요구한 적도 없다.

되려 그런 글로 내가 상처를 받을 것을 염려했고, 온라인상에서 만나는 사람을 믿지 말라는 충고와 아울러

블로그상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나 처럼 솔직하게 말하는 사람은 없으니, 다른 사람도

나 처럼 솔직할거라는 기대는 하지 말라면서 사람을 믿지 말라는  충고만 해줬을 뿐이다.

술자리에 대리운전을 갔을 때,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내가 입바른 소리를 해도 그걸 말리거나

자기 체면 구긴다고 화를 낸 적도 없었다. 되려 그런 나를 자랑스럽게 생각해줬다.

남편은 그런 남자다. 대한민국에서는 보기 힘든 남자다.

대내적으로 내가 자길 쳐죽일놈을 만들어도 화를 내거나 타박하지 않는다.

 

그런 남자가 술만 취하면 반미친놈이 된다. 물론 내 기준에서 미친놈이다.

술군들이 봐서는 술 취하면 다 그렇치 뭐....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내 아이들 아빠가 그런 모습으로 망가지는 거, 싫다.

큰 딸은 아빠를 유독  좋아하고 많이 따른다. 그런 딸도 술에 취한 아빠의 모습을 보는 것은 싫어한다.

지금은 아빠가 많이 취한 날엔 방문을 열어보지도 않는다.

그런 모습이 안타깝다.

 

남편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내가 포기할 것은 포기할 것을 권하는 사람도 있다.

지난 7월 한 달중에 남편이 술에 취해 있지 않는 날은  31일 중에 단 3일뿐이었다.

밖에서 마시지 않는 날엔 집에서라도 식사와 함께 마셨다. 알콜중독 수준이다.

한 두잔는 술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도 위험한 발상이다.

남편과 나는 끊임없이 투쟁을 하는 것 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나를 가슴 뛰게 하고 내가 세상에서 젤로 좋아하는 남편과 함께 좀 더 바람직한 삶을 살고 싶을뿐이다.

본인도 그러고 싶다는데 일단 술이 들어가면 절제가 잘 안된다는 남편을 보면 그래서 더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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