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쟁이의 부부싸움

2020. 2. 21. 13:40★ 부부이야기




체중계에 올라가면서 마음을 졸인적이 없었다.

여전히  말라깽이 아줌마임에도 2,3년전부터 나도 나잇살이 찌는지 뱃살이 잡히기 시작했다.

40키로대 체중에서 벗어난 적이 없던 내가 2년전부터는 오십키로가 넘었다.

몸둥아리 전체가 두리뭉실하게 살집이 잡혔으면 그나마 괜찮을텐데 '마른비만'이라는

단어가 저절로 떠오르게 뱃살만 잡히는 중년의 아줌마가 되었다.


태생이 살이 안 찌는 체질이라는 말을 듣고 살았다.

전형적인 소음인이라 소화기관이 약하게 태어나, 평생동안 골골거리며 살거라는 한의사 말도 들었다.

신경이 예민하고 까칠한 성격이, 마른 체형을 갖는데 일조를 했을거라고도 했다.

숨쉬는 것 말고는 운동이라는 것하고는 담을 쌓고 살았다.


남편 건강검진 결과지를 우편으로 받았다.

1년새에 허리 사이즈가 4인치나 늘었다. '복부비만' 아라는 경고 메시지가 있었고

당뇨수치도 정상범위에서 벗어나 있었고 혈압도 고혈압 단계는 아니지만 경계선에 있었다.

허구헌날 몸안 술통이 비워질 날이 없었으니 당연한 결과다.

그나마 일주일에 삼일씩 축구를 한다고 뛰어다녀서 여직 술을 마실 수 있는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일 것이다.(축구후에도 술을 마실때도 있다)


술마시는 문제로 싸울일은 없을거라고 생각했는데 며칠전에 술 때문에 남편과 다퉜다.

이젠 남편 술사랑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내가 체념할 수 있게 되었다고 착각했었는데 아니었다.

서로에게 편안한 사람으로  같이 곱게 나이 들어가고 싶은 내 바람은 욕심이었던 것 같다.


며칠 전, 서류전형에 합격한 2차 면접에서 그런 질문을 받았다.

"조를 이뤄서 함께 일을 분담해야 하는 동료(파트너)와 성격이 넘 안 맞아서 갈등이 심할 때 어떻게 대처하시겠냐?"

나는 교과서적인 답변을 했다. 평이한 대답이었다.

맘 속으로는 다른 답을 하고 싶었지만.

" 한 남자를 만나 24년을 버티면서 참아낸 의지의 대한민국의 주부인데 그깟 계약직 몇 개월을 못 참겠냐고,

파트너가 저랑 성격이 안 맞아봤자 몇개월 보고 말 사람인데 그런 사람에게 제가 맞추는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24년 결혼생활에 비하면 그즘은 껌입니다!!! 그런 유치한 질문 좀 하지 마세요. "


다툼 뒤엔 남편은 연락도 없이 매일 술에 취해 귀가하고 우리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오늘로 5일째다. 기싸움에서 이기고 싶어서가 아니고 이젠 남편과 술 문제로 다투고 얼렁뚠땅

넘어가고 또 반복되는 일상을 더 이상은 하고 싶지가 않다. 지쳤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다.

부부 문제의 답은 항상 같다. 상대가 변하길 바라지 말고 내가 변해야 한다고~~~~~~~~

자정 넘어 비틀거리며 들어와서는 욕실문을 소리 나게 닫고, 자신이 화가 나있음을

온몸으로 말하며 내가 반응하길 바라는 유치한 남편 행동을 봐주는 일도 더 이상 하고 싶지가 않다.


다투고 나면  초라해보이고 더 늙어보이는 남편의 모습에서 내 모습을 보게 된다.

남편 모습이 한심해 보일 수록 내 모습은 더 한심해 보인다. 그게 싫다.

그래서 나이 먹어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남편 모습을 봐주는 게  싫은 것이다.

이제는 스스로가 자신의 건강을 챙기지 않으면 위험할 수 있는 나이이고,

두 아이로 인한 지출도 버겁고, 우리 부부의 노후도 생각해야 할 시기인데

아무 생각 없이 술에만 의지해서 잊고 살려고 하는  남편 모습을 볼 때마다 절망하게 된다.

술을 끊길 바라지 않는다. 줄이길 바라며, 자신의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의 과음만 하지 않길 바랄뿐인데........

이러다가 알콜병원에 입원 시켜야 하는건 아닌지 심각하게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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