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시간만에 입학식은 끝이 났다.
이틀동안은 등교때에 보미 손을 잡고 함께 학교를 향했다.
알림장을 보고 스스로 준비물을 챙기게 했다.
아침10시반이면 수업이 끝나는 초등학교 1학년이 된 큰아이,
첫아이가 초등학교 입학을 하게 되면 부모도 함께 마음이 설레고
긴장을 한다는데 난 그런 감정이 안 생긴다.
다소 걱정은 되지만 그다지 커다란 걱정을 하거나 설레여 하진 않는다.
하루전날밤에, 내일 입고 갈 옷을 골라서 옷걸이에 걸어 놓고 있는 보미,
이젠 내가 입고 가라는 옷은 절대 입지 않는다.
이모가 사준 고가의 쟈켓도 보미가 고집해서 선택한 옷이다.
내가 맘에 드는 아이 옷과, 보미가 고르는 옷이 이젠 확실하게 다르다.
자기의사 표현이 약한 보미, 옷선택에 있어선 자기 주장이 강하다.
내 남편은 그런 보미 의견을 존중해주라고 한다.
이모님이 보미의 입학선물로 사준 10만원 가까운 고가의 쟈켓의
사이즈를 한치수 큰걸로 사줬더니만,
남편 딱 맞는 사이즈로 교환하라고 한다.
그런 작은 센스도 어려서부터 길러지는것이라고,
나중에 혜미 입히면 된다고
보미에게만은 한치수 큰옷 사입히지 말라고 했다.
한치수 크게, 그리고 부모 맘에 든 옷으로 사주다보면
보미도 나와 남편처럼 옷고르는 센스가 없어지고 촌스러워진다고....
추워도 치마를 고집하는 보미다.
하지만 그부분에서만은 나도 양보하지 않고 있다.
입고 싶은옷은 입되 아직은 치마 입지 말라고..
아직은 날씨가 춥다고..
어제도 그젯밤에도 보미는 학교 갈때 입을 옷을
미리 옷걸이에 걸어서 옷장안에 걸어 놓았다.
학교가방에 챙겨가는 준비물도
보미 스스로 알림장 보고 준비했다.
오늘도 그랬다. 이젠 그런일엔 익숙해져 있는 아이다.
등교때 보니 많은 학부형들이 수업 시작하는 아침9시부터
끝나는 10시반까지 교실 복도에서 아이의 수업을 참관하며
하교할때까지 기다렸다가 아이 손을 잡고 돌아온다고 한다.
난 그런 그 엄마들이 정말로 존경스럽다.
나는 그런 엄마는 정말이지 못된다.
1시간 반동안이나 아이 수업 보고 있다가
아이 손잡고 함께 하교?
그런 정성 내게는 없다.아니 그걸 관심이나 사랑이라고 하는데
나에겐 그런 사랑은 없는듯 싶다.
등교때 함께 가는일도 나는 오늘까지뿐이다.
내일부터 데려다 주지 않겟다고 미리 보미에게 말했다.
대신 내일 하루는 보미 하교시간에 맞춰 기다려 달라는
보미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약속했다.
아이들이 아주 작은것으로 괜히 주눅 들고 다른 아이들은 전부
엄마가 손잡고 하교 하는데 자기만 엄마가 안오면 움츠려 들것
같다는 생각 하면 나도 얼마동안은 보미의 등하교를 함께
해주고 싶지만 길게 봐서 그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나의
개인적인 판단 때문이다.
학교 다녀오겟습니다. 학교 다녀왔습니다라는
인사하는 습관도 이제부터 새로 시작했다.
현관을 들어서는 보미를 힘껏 안아주고 수다쟁이 엄마와 딸이
되서 이런저런 애기들을 하는 그런 모녀가 되었다.
나는 보미가 커갈수록 참 딸이라서 좋다는 생각 자주 하고 있다.
조금 큰키 덕에 나의 어린시절때처럼 가장 뒷자리에 앉게 된 보미,
다행히 보미는 인원이 짝수라서 짝이 있어서 다행이다.
난 어렸을때 큰키 덕에 짝꿍이 없어 혼자 앉을때가 많았다.
소심하고 내성적인 나, 그로 인해 더더욱 움츠려 들었던 기억이 있다.
보미가 입학하게 된 초등학교도 여자아이보다 남자아이가
20명가량이 더 많았다.
남자선호사상으로 인한 현상이라고 생각되어졌다.
시누 아들들이 다니는 초등학교도 그랬고 동생의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도 마찬가지로 여자아이들이 .
남자아이들보다 숫자가 적다고 했다.
내가 알고 있는 내딸 보미와,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 8살난 여자아이로서의 보미는
분명히 똑같지 않을것이다.
가끔씩 그런 모습을 보미를 통해 느끼면서
나는 벌써부터 준비한다.
내 큰아이 보미가 다분히 보수적이고 융통성 없는 나를
놀라게 해도 너무 놀라지 않을, 기절하지 않을
마음을 갖는 준비를 미리
해보는 연습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내아이, 이제 초등학생이 된 나의 큰딸,
학교생활에 잘 적응할것이라고 믿어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