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7. 2. 06:00ㆍ★ 부부이야기
월드컵 열기로 뜨겁던 토요일날 밤, 축구시합을 시청하던 그 늦은 시각에 남편의 핸드폰이 울렸다.
전반전이 거의 끝나가는 시각이었으니 아마도 자정이 다 되어가던 시각이었을것이다.
일요일날 배달을 해달라는 거래처의 전화였다. 그래도 새벽 3,4시에 걸려온 전화가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하면서도 짜증이 배인 한숨과 함께 화를 내는 남편의 모습을 볼수 있었다.
담당직원들은 쉬는날엔 전화를 해도 받지 않거나 핸드폰을 꺼놓는데 비해 남편은
어떤 경우에도 전화기를 꺼놓는 일이 없는 사람인지라, 종종 지금까지도 그렇게
쉬는날에 직원들을 대신해서 평일에도 하지 않는 배달일을 남편이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직원들에게 지시해도 되지만, 쉬는날 쉬고 싶은 마음은 다 똑같기에 내가 하기 싫으면
다른 사람도 하기 싫은법이라고 남편 스스로 자처해서 휴일날 배달일을 종종 하고 있다.
영업이사라는 직함하고는 상관없이 남편은 늘 그렇게 한결같은 자세로 회사일에 있어서는
갓 입사한 신입사원의 마음가짐을 갖고 있는 직장인이다.
드라마나 영화를 볼때마다 종종 등장하던 술짝이 쌓여 있는 장면엔 깡패들이 있었다.
그로 인해 남편의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다들 주먹세계와 무슨 관계가 있는것처럼
비쳐지는 경우가 참으로 많았다.
언젠가 남편은 농담처럼 누가 딸들이나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 있으면 그사람에게
우리 남편, 우리 아빠가 주류회사 다녀 라는 말만 해도 건들지 않을거라는 말을 한적이 있었다.
모래시계 드라마가 한창 뜨던 그시절에 나는 내 남편을 만났다.
나보다 2년 일찍 결혼을 한 동생도 처음엔 내 남편도 혹시라도 주먹을 쓰는
그런 사람이 아닐까 하는 걱정을 하기도 했었다.
더운 여름이 되면 술짝을 나르고, 음료수짝을 나르는 젊은 사람들의 땀흘리는 모습을 자주 본다.
술짝을 싣고 달리는 주류회사 상호가 찍힌 트럭을 볼때마다 나는 자동으로 내 남편을 생각하게 된다.
주류계통일을 한지 이젠 20년 가깝게 되어가는 내 남편, 주먹쓰는 일하고는 상관없는 직장인이다.
영화에서나 드라마에서 가끔씩 술짝 쌓여 있는 창고들 사이에 앉아서 고문하고 나쁜짓 하는
깡패들 모습이 보일때마다 내 남편도 기분 나빠했다. 나도 이젠 그런 장면 나오면 기분 나쁠때가 있었다.
그제께밤에 본 드라마속에서 또 술짝이 쌓여 있는곳에서 건달들이 또 주먹질을 하는 장면이 나왔다.
지난 일요일에도 22, 23키로가 넘는 생맥주통을 10통이나 트럭으로 옮겨 싣는 남편의 모습을 봤다.
외출해서 집에 들어가면서는 빼빼마른 마누라가 무거운 짐 드는것은 아무렇치 않아하는 남편이,
남편의 배달일을 할때 그런 무거운 생통을 들어주는 일을 내가 할라치면 벌컥 화를 낸다.
그런 일을 하다가 허리를 다쳐서 병원에 한달에 넘게 입원한적도 있으며, 이젠 전처럼
배달일은 안한다고 하는 남편이지만, 쉬는날, 다른 직원들을 대신해서 스스로 배달일
자처하는 남편은 직장인으로서는 대단히 모범적이고 성실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젊은이들의 취업란이 심각하고,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다고들 한다.
남편의 회사에서는 그런 술짝을 나르는 일을 하는 직원을 구하기 힘들어 한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아무리 취업란이 심각해도 이미지상, 그리고 더운 여름날 그렇게
무겁고 남들에게 거칠어 보이고 힘들어 보이는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폭설이 내리는 올1월 휴일에도 태릉스케이트장에 두 딸들을 내려주고 남편과 함께
남편 회사에 가서 빗자루질을 했고, 창고에 있는 맥주들이 터질까봐 난로를 켜놓고 가기도 했다.
직업이 귀천이 없다고들 말하면서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는 험한일, 힘든일을 하는 사람들은
아래로 보는 경향은 존재하고 있으며, 내 남편처럼 무거운 짐짝들을 배달하는 일부터 차근차근
시작해서 이사라는 직함까지 얻는 사람은 흔치 않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배우고 이론으로 영업에 대해서 배운 엘리트 보다 실전에서 경험으로
터득한 내 남편의 경력을 존중하며 그부분만은 나는 남편을 대단히 높이 평가한다.
직장인으로의 내 남편은 나에게 이미 존경받을만한 사람으로 존재하고 있다.
내 남편이 일을 함에 있어서는 얼마나 정직하고 바른사람인지는 세상 사람은 몰라도
나만은 너무나도 잘알고 있다. 그런 일에서만은 정직하고 강직한 사람임을 알기에
힘든 시기가 많았음에도 여기까지 내가 올수 있었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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