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1. 20. 19:07ㆍ★ 부부이야기
작은방 도배를 마치고 주방과 거실 도배를 하고,
기존에 있던 오래 된 싱크대를 철거하면서 도배지를 치우고, 걸레질을 하면서
일하시는 분들의 보조 역할에 충실히 이행하고 있던 나는,
오후에 남편의 기운 없는 목소리의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어머님이 아침에 일하시다 넘어지셔서 머리를 크게 다쳤다고, 뒷통수에 혹도 나고
머리에서 피도 나고, 코피도 쏟았다고..... 전화 한통 해드려... 라는 말만 했다.
나는 전혀 놀라지도 않았으며, 어머님의 대한 걱정도 별로 하지 않는 나쁜 며느리의 마음을 가져었다.
속으로 그랬다. 나는. 전화한통만 해도 돼? 하고 물어보고 싶었다. 당신이 울 엄마한테 했던 것처럼?
남편은 언제부터인가 어머님의 돈에 관한 심한 집착에, 본인이 느끼기에도 심하다는 것을 알곤
며느리로서의 의무에 충실히 이행(?)하는 나에게 되려 미안해 하기 시작했으며,
본인의 사위 노릇과 비교해서 어머님의 이해 되지 않는 행동에 마누라인 나에게 미안해 하기 시작 했다.
어제 나는 쑥대밭이 된 동생집을 뒤져서 미리 챙겨 온 서류 가방을 뒤지기 시작 했다.
1주일전에 어머님의 대한 감정으로 홧김에 내가 해약한 보험증권을 찾기 위해서였다.
어머님 생명보험 152,000원
어머님 암보험 25,000원
어머님 상조보험 30,000
어머님 실버보험 59.980원
어머님 칠순대비 적금 30,000 원
지난 달 25일까지 우리 부부가 감당했던 어머님으로 인해 지출된 보험 내역서들이다.
이 달부터 내드리지 못 한다는 말씀을 드리기 위해 1주일동안 밤잠을 설치던 이 보험들중에서
2년전째 불입하고 있던 실버보험을 지난 주에 해약을 해 버렸다.
어머님이 그까짓것, 뭣하러 내냐고, 그깟 보험 뼈나 부러져야 나오는 보험 뚜드려 깨라고 하시면서
2년동안 고생고생 해서 허리띠 졸라매며 보험료를 냈던 며느리의 눈물겨운 시간들의 노력을 전혀 알아주지 않으시고
우리들의 이사 하는 것에도 월세 100만원에 살든 말든 니네들 알아서 하라고 하시면서, 우리들이 이번
이사로 어머님의 보험료를 내드리지 못한 것에만 서운함을 표현하시던 모습에 눈물을 머금고
2년동안 불입하던 실버보험을 지난주에 나는 해약을 해서 환급금도 단돈 10원도 받지 못했다.
15만원짜리 보험을 못내드리는 것에 죄송함을 표현하고자 하는 며느리에게 그런 서운한 말씀으로
내 가슴에 못을 치시던 어머님의 다치셨다는 말에 나는 슬픔 따위는 별로 없었다.
그저 다만 가장 먼저 그 병원비를 제일 걱정하는 큰며느리로만 존재하고 있었다.
안방 도배를 마치고 난 후 먹은, 점심이 먹은게 체할 것 같았다.
며칠동안 이사 문제와 이런저런 일들로 머리가 터질 것 같은데 이런 상황에 어머님이 다치셨고
그로 인해 당장에 맏이인 남편에게 병원비를 먼저 말씀 하셨다는 말에 지난 날들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아버님 살아생전에 숱하게 10만원 5만원씩 드린게 수십번, 그리고 혹은 한달 월급 몽땅 드리고,
아버님의 의료보험 초과분 100만원, 혹은 또 50만원을 드리고도, 우리는 한달동안 내 이모집에서
동생들에게 도움을 받고 지내던 그 시절의 시간을 보냈음에도 지금의 와서는 장남 노릇
변변치 않는 부부로 존재하고 있는 지금의 현실이기에 나는 이번 어머님, 응급실행에도 제일 먼저
병원비가 젤로 최우선적인 문제로 느껴지는 큰 며느리였다.
그래서 지난 주에 어머님의 가시 돋힌 말씀에 내가 감정적으로 2년넘게 불입한 해약 한 보험 증권을 들여다 봤다.
다행이었다.
해약을 했지만 이 달 25일이전에 다쳐서 치료를 받거나 입원 한 것에 대해서는 다 보장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담당 보험 설계사와 전화통화를 하고 나서야 어머님에게 전화를 했다.
큰 며느리의 역할은 이런 일에서 두 가지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아직도 나는 갖고 있다.
병원비 해결과 그리고 병수발......... 도배 하는 분만 남기고 모든 분이 가시고 나서 몰래 베란다로 나가서
어머님에게 전화를 드렸다.
기운 없는 목소리,. 그리고 여지 없이 시작되는 병원비 이야기. 그랬다. 늘 그랬다. 어머님의
그 놈의 돈애기는 끝이 없었다. 늘 ............ 말씀 드렸다.
어머님이 제게 그리도 무시하고 뭣하러 보험을 내냐고(생활비도 못주는 주제에.. 라는 함축된 의미로 늘 들렸다)
하시던 그 보험에서 병원비 100% 다 나오니 병원비는 걱정 마시라고, 괜찮으시냐고....그 다음에 안부를 물었다.
지금 당장은 못가고 내일 보미 애비랑 함께 가겠노라고.........
그 전화를 끊고 나는 터질 것 같은 마음을 느꼈다. 눈물도 날 것 같았다.
그 이유는 나도 다 모른다.
주말부부가 된 우리는 그렇게 어젯밤에 반가운 마음으로 만나질 못했다.
밤잠을 거의 설치고 나서 아침 일찍 일어나서 두 아이를 동생에게 맡기고(노는 토요일이면 꼭 데려가려고 했는데)
남편을 회사에 내려주고 나는 남양주 집에 가서 집안 정리 오전내내 하다가 정오에 다시 남편을 태우러 남편 회사로 갔다.
그리고 두 시누들과 전화통화를 하고 나서 어머님이 입원 해 계시는 병원으로 향했다.
어제는 혹도 부어오르고 하셨는데 지금은 많이 좋아보이셨고 전혀 아파 보이지도 않으셨다.
천만 다행으로 머리를 다치면서 피가 밖으로 나서 이상은 없으시다고, 갈비뼈 하나가 골절이 되셨다는데
장기에도 아무 이상도 없고 머리 CT촬영에도 이상이 없다고, 식사도 잘하시고 괜찮으시다고 하신다.
당분간은 일을 못하시겠지만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괜찮으시다고 하신다.
토요일밤엔 어머님 옆에서 하룻밤 잘려고 했는데 그럴 필요 없다고 해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병실에 앉아 계시는 어머님의 모습에 나는 13년전 페렴으로 입원 하신 시아버님 생각이 났다.
결혼한 지 1년도 안 된 며느리였던 내가 시아버님 병실에서 먹고 자면서 보름동안의 짧은 시간을 보내면서
느끼던 그 어색하고 불편했던 그 느낌들이 되살아나면서 정말로 나는 착한 며느리는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정말로 지긋지긋하게도 입퇴원을 자주 하시던 아버님의 모습과, 신혼여행 다녀와서부터 하루에 한번씩
가던 아버님이 입원해 계시던 그 병원냄새가 나는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지금도 나는 어떤 병원에 가도 젤로 먼저 9년전에 돌아가신 아버님 생각이 난다.
지금 퇴원 하셔도 된다는 병원 의사선생님 말씀에 퇴원을 서두르시던 어머님,
병원비 다 나오니까 월요일날 퇴원하시라는 며느리의 말씀에 답답하지만 참으신다고 하셨다.
지난 달까지 우리가 불입했던 어머님의 보험이나 생명보험에서 골절비가 별도로 30만원씩 나오고,
실버보험에서도 골절비 50만원이 따로 나온다는 말에 어머님은 이제부터는 무조건 며느리가
하는 대로 냅두실런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시어머님의 입원 소식에 제일 먼저 보험 증권 찾아보던 속물스러워진 큰 며느리로 변한 내 모습에
씁씀함을 느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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