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 23. 13:32ㆍ★ 부부이야기
신혼시절, 남편과 함께 하는 술자리가 끝나고 나오는 길에 교복을 입은 남학생이
남편을 보고 "형씨, 담뱃불 좀 빌립시다! " 라는 말로 우리 부부를 기겁하게 만든 일이 있었다.
" 이 놈의 자슥이... 형씨? 어린놈이 어디서 담배를 꼬나물고..."
기가 막힌 남편은 말도 제대로 다하지 못했다. 그 때 남편의 나이 서른 두살이었다.
그 당시에는 남편도 담배를 피던 시절이었다.
"빌려주기 싫으면 됐구요, 근데 형씨가 뭔데 나한테 반말이야?"
교복까지 차려 입은 그 남학생, 덩치는 남편보다 더 좋아 보였고 눈빛도 예사롭지 않았다.
남편 뒤에서 겁먹고 서 있던 내가 남편의 소매를 끌었다. 그냥 냅두고 가자고~
"놔봐! 어린놈의 새끼가.. 어디서...."
가슴이 콩닥거리며 남편의 눈에서 느껴지는 광기와, 그 덩치 큰 남학생의 눈빛에 겁이 났다.
나는 무조건 남편을 말리기만 했었다.
함께 합석했던 남편들의 일행들이 나와서 그런 남편을 말렸고 그 덩치 큰 남학생은
"에이~ 재수없어!" 하면서 아스파트 바닥에 침을 찍~ 뱉고 무리져 있던 남학생들 무리속으로 걸어갔고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남편을 계속 가라앉히며 서둘러서 택시를 타고 그 자리를 뜬 적이 있었다.
2009년 9월 19일 토요일 자정이 될 무렵에 집에서 10분정도 떨어진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수원에서 있었던 수원 연수원에서 수학교사들 간담회 출장뷔페 아르바이트 일을 마치고
그 곳까지 다른 언니 차를 얻어타고 와서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다.
길 건너편에서 젊은 남자의 거친 목소리가 들렸다.
호프집에서 나온 연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여자를 보고 언성을 높히고 있었다.
그러더니 남자가 여자의 머리채를 잡았고 여자는 비명을 질렀다.
내가 서 있던 정류장에는 나 말고는 아무도 없었고, 길 건너편 그 젊은 커풀이 싸우는 주변에는
행인들이 대여섯명 정도 보였으나, 그 누구도 그 연인들의 과격한 싸움을 힐끗 쳐다만 볼 뿐
그냥 지나쳐 가는 모습들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 두려움에 떨면서 정류장 옆에 설치 되어 있던 전봇대 뒤로 숨어서
114에 전화해서, 그 곳에서 젤로 가까운 파출소 직통 번호를 물어서 파출소에 전화를 걸었다.
(그런 일 신고할 일 있으면 무조건 112에 전화하면 된답니다. 그걸 그 땐 몰랐습니다)
그리고 건너편에 그 여자 머리채를 잡고 소리를 질러대고 있는 남자가 내 쪽을 쳐다보나 안 보나를
예민하게 살피면서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그 상황을 간단하게 설명했고 위치도 알려줬다.
전화를 끊으니 이번엔 그 남자가 그 여자 배를 향해 발길질을 했다.
무서워서 눈물이 났다. 하지만 신호등이 바꿔도 뛰어가서 그 여자를 구할 용기는 없었다.
그 남자가 내 얼굴 기억하고 무슨 보복이라도 할 까봐서...
그 남자가 흉기라도 꺼내들고 나에게 그 험한 폭행을 가하기라도 할까봐서....
뉴스에서 자주 나오는 험함꼴을 내가 당할까봐서...
지나가는 남자들이 원망스러웠다. 아무리 남의 일이라지만 그 남자의 폭행을 제지해주는
남자는 아무도 없었으며, 그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 모두 힐끗 보면서 고개를 숙이고 모른척 했다.
그런 모습들이 너무 화가 나면서도 나도 그 사람들 무리에 섞여서, 도착한 버스에 올라탔다.
가슴이 쿵쾅거리고 내 자신의 비겁함에 화가 났다.
오늘 처럼 전봇대 뒤에 몸을 숨기고 신고를 하는 것 말곤 더 이상은 못할거라는 것을 알기에~
그 날 내 신고로 경찰이 출동을 해서 일을 처리 했는지 어땠는지를 확인하지 못했다.
112에 신고를 하면 그 신고 접수 후에 그 사고 처리가 어떻게 되었는지도 신고자에게 연락이 간다고 한다.
그런 일을 목격하면 인근 파출소에 하는 것 보다 112에 신고를 하면, 그 곳 상황실에서 사건이 있는 지역의
가장 가까운 곳을 순찰중인 순찰차에 바로 연락이 가기 때문에 훨씬 신속하다고 한다.
나는 사람이 젤로 무섭다.
아주 사소한 시비에도 뉴스의 사회면 기사들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지금도 엘레베이터를 탈때, 덩치 큰 교복입은 남학생이랑 단둘이 타면
내릴 때까지 숨도 안 쉬고 몸을 움츠리는 간도 작고 소심한 아줌마의 극치를 보여주며 살고 있다.
며칠전에 동생집에 반찬 들고 갔을 때도, 젊은 남자 한 명만 타고 있는 엘레베이터에도
올라 타지 못하고 괜히 뭘 깜박 잊어버린 것처럼 밖으로 나가는 시늉을 했었다.
아파트 사는 층간의 소음 때문에 실갱이가 벌어졌다가 살인을 하는 경우가 있고,
주차 때문에 이웃간에 사소한 시비가 살인까지 이어지는 험한 뉴스들이
많아 질수록 나는 더더욱 겁이 많은, 비겁한 아줌마로 살아가게 될 것만 같다.
교복입은 남학생들이 담배를 피는 모습을 보고 다가가서 한 마디 하는 것은 나에게 꿈조차 꿀 수 없는 일이다.
공중화장실에 교복을 사복으로 갈아입고 화장을 하는 여학생들을 뻔히 쳐다 보는 짓도 절대로 못한다.
정당하지 못한, 바르지 못한 행동을 하는 어린 학생들을 보고도 나는 늘 눈감고 모른척 하는 아줌마로 존재한다.
소매치기가 내 앞을 지나갈때 발을 걸어 넘어트려서 쫓아오는 경찰을 돕고 싶지만
그로 인해 내 얼굴을 기억한 그 소매치기가 감옥살이 하고 나와서 나에게 보복을 할 까봐서
무서워서 쫓는 경찰을 못돕는 그런 소심하고 비겁한 아줌마로 살게 된지 오래 된 듯 하다.
내 남편, 내 딸들에게 무진장 잔소리들을 쏟아내고 닥달을 하지만 내 가족이외의 사람들의
정의롭지 못한 모습에도 나는 눈감고 귀도 막고 사는 비겁자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중의 한 명이 바로 나다.
어린 아이 손을 잡고 가면서 쓰레기를 버리는 아줌마를 보고, 이보세요... 이러심 안되시죠.. 라는 말을
하는 것은 내겐 있을 수 없는 일이고, 다만 그 아줌마가 저만치 가고 나서, 사람들의 시선이 없을 때
얼른 엎드려서 그 개념 없는 아줌마가 버린 쓰레기를 줍는 행동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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