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참 다르지만 고향친구라서 편하고 좋다.

2012. 11. 9. 06:00★ 나와 세상

 

 

 

 

알바를 그만 두고 처음으로 쉬는 날에 친구를 만나러 광명에 다녀왔다.

집에서 5분 거리에 7호선 전철이 개통된 기념으로 아침 일찍 집을 나서서 친구집에 놀러 갔었다.

고향친구였다. 고향친구가 아니었다면 절대로 나와는 친구 관계를 유지할 수 없는 성격을 가진 친구다.

친정엄마도 가끔 이 친구의 안부를 챙길 정도로 아주 어릴 때부터 내 친구로 존재했었다.

오동통하고 작은 키에서부터,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도 나와는 천지차이가 나지만, 내게 가장 오래된  고향친구다.

 

내 친정엄마표 작년 김장 김치 한 포기, 지난 주에 엄마가  보내주신 단감 10개, 굵은 멸치 20개, 다시마 두 조각

그리고 남편 회사에서 행사용으로 나온 수분마스크팩 10매를 챙겨서 친구의 집을 방문했었다.

그 전에는 여러번 갈아타야 했던 1시간넘게 걸리던 친구집이 얼마전에 개통한 전철을 타니 갈아타지도 않았고, 시간도  30분이 채 걸리지가 않았다.

친구는 지금 잠깐 하는 일을 쉬고 있을 뿐, 조만간 또 다시 일을 시작할 거라서 서로가 시간이 있을 때

얼굴 한 번 보려고, 외출 하는 것을 귀찮아하는 내가 큰 맘 먹고 나갔다.

 

몇 개월전에 얼굴을 본 고향친구집 방문은 이 번이 두 번째였다.

그 친구 집에 들어서자 마자 부터 나는 잔소리를 시작했다.

집 좀 치우고 살아라... 넌 살림하는 여자가 집을 어떻게 이 모양으로 하고 사냐... 니 딸이 보고 배울까 겁난다...에고... 징그럽다..

고향친구이기 때문에 그런 잔소리도 할 수 있었다.

내 동생들에게도 그런 잔소리는 하지 않는다.(물론 내 동생들이 나보다 더 깔끔해서 그런거지만^^*)

 

잔소리 1절을 마친 나,

밀려 있는 친구네집 설거지부터 했다.(그 때 시간이 오전11시였음)

내가 가져간 멸치다시마 국물을 내고, 김장김치와 고추참치찌게용 참치캔과 스팸을을 넣고 얼큰한 김치찌개를 끓였다.

시장을 봐간 김밥 재료들을 볶아서, 김밥을 싸놨다.초등학교 1학년인 아들이 돌아오면 챙겨주라고.....

그리고 욕실로 가서 걸레를 빨아서 3개의 방이랑  주방, 거실까지 걸레질을 했다.

 

 

 

 

올해 초 이사오면서 도배 장판 싱크대까지 새로 한 집인데 아침 일찍 나가서

밤늦게 퇴근하는 일을 하던  친구의 집은 여기저기 정리정돈이 되어있지가 않았다.

남편도 벌고, 내 친구도 얼마전까지 벌었고, 스물살 딸도 얼마전부터 돈을 벌고 있다.(실업고를 졸업해서)

집을 구입하면서 대출을 잔뜩 안아서 열심히 벌지 않으면 안된다고 했다.

그리고 친구에게는 늦둥이인 올해 초등학교 1학년인 아들이 있다.

 

 

내가 요리와 청소를 마칠 때까지 친구의 볼멘 소리는 계속되었다.

"아야, 보형아, 왜 그라냐... 우리집에 일해주러 왔냐.. 이리 와서 애기나 하자. 이거나 먹자.." 라는 말만 계속했다.

내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쭈빗거리는 친구를 향해..... 넌, 저기 가서 그냥 앉아 있어라.. 그게 도와주는거다.... 라고 했다.

일을 마친 나, 허리가 아파서 친구의 거실 쇼파에 너브러졌다...

친구가 그랬다. 너도 병이다.. 친구집에 일해주러 왔냐...

 

 

하지만 나는 그런 친구가 편해서 좋다. 내가 세상 그 누구에게 이렇게 편하게 잔소리를 할 수 있을 것이며

내가 그렇게 퍼붓고 잔소리를 해도, 어렸을 때부터 나를 지켜본 그 친구가 나를 욕하거나

싫어하지 않을거라는 것을 알기에 나도 그 친구에게 그렇게 대할 수 있는거다.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그런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흡족했다.

그렇게 나는 그날, 편한 고향친구집에서 서너시간 있다가  오후5시즘에 집으로 돌아왔었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쉽게 편안함을 느끼지를  못한다.

다른 사람을 극도로 조심하면서 대하는 편이다.

그래서 쉽게 타인과의 친밀한 관계를 갖는 것을 잘 하지 못한다.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한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와는 여러면에서 정말 정말 다른 부분이 많은 이 고향친구에게는 그렇치 않는다.

내가 뭐라고 잔소리를 해도,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나의 천성적인 기질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친구이기에,

어렸을 부터 어떤 사람이었나를 너무나도 잘 아는 친구인지라 내가 뭘 해도 날 봐줄 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나이 들어가니 이렇게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친구가 간절해지는 경우가 생긴다.

이런 고향친구들을 올연말에도 동창회를 해서 얼굴을 한번 볼까를 계획해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