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 31. 06:00ㆍ책,영화,전시회, 공연
26년 영화를 봤었다. 작년 12월 23일 일요일날 남편과 함께 극장에서 관람했었다.
80년 5월의 광주의 모습을 직접 본 사람이, 우리나라 국민들 중에서 몇 명이나 될까?
80년 5월에 경상도와 제주도와 경기, 강원도, 서울에 살고 있던 국민들은
그 때 광주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를 정확히 알고는 있을까?
당시, 무자비한 대국민 학살에서 가족이나 친구를 잃은 타지역의 국민들은 몇 명이나 될까?
영화 시작부분부터 울었다. 남편도 울었다. 만화로 제작된 부분에서부터 울었다.
80년 5월의 나는 11살이었다.
전남 광주에서 1시간 30분 거리에 있는 전라남도 장흥이라는 시골마을에 살고 있었다.
처음엔 학교 휴교령이 내려져 좋아하기만 했던 나도, 동네 앞 신작로를 지나가던
총에 긴 칼을 꽃고 행진하던 군인 아저씨들의 모습과 그 아저씨들의 무서운 눈빛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임산부의 배를 가르고, 일반인을 칼로 찔러 죽였다는 군인들의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무서웠다. 나도 군인아저씨들의 총칼에 찔려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대문 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무서워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 때는 몰랐다. 그게 무슨 일인지를 정확히는 몰랐다.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도
자세한 그 내용을 몰랐다. 전라도에서 살았는데도 말이다..
80년 5월에 어린애였던 나는, 전라도 사람들이 뭔 큰 잘못(반역죄-역모등등)을 해서
나라에서 젤로 높은 사람이 국군 아저씨들을 시켜서 전라도 사람들을 벌 주라고
시켰다고만 알고 있었을 것이다.
전라도 사람들이 뭔 큰 죄를 졌다고만 생각했었다.
성인이 되어서 알게 되었다.
그 광주민주화 운동의 전말을.......
전라도 사람들을 빨갱이 취급을 해서 그런 계엄령을 선포했었다는 걸...
전라도에 살고 있던 나도 모르고 살았던 것이다. 그 내막들을...
...80년 5월에 광주에서 어떠한 잔인무도한 일들이 일어났는지를..
총칼을 꽃고 다니는 얼굴에 검뎅이 칠을 하고 다니던 군인들을 직접 봤던 나도,
모를 만큼 나라의 윗분들은 철저하게 국민들을 속였으며,
대부분의 국민들도 80년 5월의 광주를 모르고 살았다.
살벌한 눈빛의 총칼을 메고 다니던 군인을 직접 본 나도, 그 진실을 자세히 몰랐는데
다른 지역의 국민들이 어찌 그 사건의 전말을 알 수 있겠는가?
진실을 알고 나서도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어떻게... 세상에 그런 일이....아무 죄없는 사람들을 이유도 없이..
왜? 왜? 하면서 분노하는 일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런데 그 무자비한 일을 자행하고 명령했던 우두머리는 지금도 잘 살고 있다.
국민들이 다 보는 뉴스 카메라 앞에서
" 젊은 사람들은 나를 안 좋아하나봐... 나한테 당해보지도 않았으면서...."
라는 말을 버젓이 지껄이면서 이 나라를 떠나지 않고 당당하게 전직 국가원수의
대우를 받으면서 잘 살고 있다.
그 사람뿐만 아니었다.
이 나라는 이상하게도 못되고 나쁜 사람들이, 더 잘사는 경우가 너무 많다.
영화 26년을 보는 내내 통곡이라도 하고 싶을 만큼 나는 슬펐다.
어쩔 수 없이 나도 뼛속까지 전라도 사람의 피가 흐르고 있나...
나도 빨갱이 피가 흐르나 라는 생각까지 한 적도 있었다.
그래서 이런 나의 개인적인 감정이 너무 드러날 거 같아서,
그 영화를 보고 바로는 리뷰를 올리지 못했다.
출현한 배우들의 연기력도 훌륭했고, 영화로 감독이 말하고자 했던 열정은 넘쳤지만
구성면에서 다소 부족한면이 많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다만 간절하게 바랬다.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80년 5월에 자신들이 살던 대한민국에서 함께 살고 있던
광주사람들이 대체 무슨 일을 당했는지를, 그거라도 알았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가져봤다.
그런데 이 영화는 개봉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개봉관에서 바로 내려졌다.
그 이유가 뭔지 모르겠지만 아직도 그 사람의 권력이 지속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기분이 참 더러웠다.
다른 이유때문이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웬지 그 양반의 권력은 아직도 계속
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울화가 치밀었다.
아래 글상자안의 글은 영화 26년 개봉을 앞두고
처음 26년 만화를 그린 강풀씨가 작성한 글입니다.
다음 만화세상에서 퍼온 글을 밝힙니다.저작권이나 기타등 법에 위배된다면 바로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기억해주세요. 강풀
이 그림은 6년전 26년을 기획할 때 그린 스케치입니다.
이 스케치로부터 만화 (26년)이 시작되었습니다.
만화를 그린 것은 6년전입니다.
당시 만화를 그릴때의 마음은
단 한가지였습니다.
"80년 5월의 광주를 알리자"
80년 5월을 기억해주세요.
80년의 5월의 광주는 잊혀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내가 하는 일이 만화이니 만화로 알리자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아직도 광주는 진행형입니다.
총에 맞아 죽은 사람은 있는데 발포 명령자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억울하게 죽어서 말할 수 없는 자는 있는데 짓밟는 자는 지금도 아무 말 하지 않고 권력을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세월이 흘러가며 많은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잊혀져 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6년전,
(26년)을 그리게 되었습니다.
"알리기 위해서 오로지 재미있게 그리자"
"전하고자 하는 바가 아무리 의미가 있다고 해도 재미가 없어서
읽혀지지 않는다면 의미가 전달되지 않는다. "
다양한 캐릭터를 등장시켜 재미있게 그려서 더 많이 보게 하자.
또한 과거의 이야기가 아닌 지금 현재의 이야기를 그리자"
그런 마음으로 (26년)을 그렸습니다.
제가 원했던 것보다 더 많은 분들이 제 만화(26년)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5년전,
(26년)은 영화제작에 들어갔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영화의 파급력으로
80년 5월 광주에서 있었던 일이 더 많이 알려지길 원했습니다.
그러나 많이 알려졌다시피 영화는 아주 오랜기간 난항을 겪었습니다.
모종의 외압설과 크랭크인 직전의 투자금 회수 등, 영화는 지난 5년간
두 차례나 엎어질 위기에 처했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뜻있는 분들의 힘을 합쳐 모아 영화(26년)은 제작기간 5년만에 드디어 개봉하게 되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영화사(청어람)과 조재현 감독님께선
만화를 그렸던 방향대로 더 많은 분들이 볼 수 있도록 재미있게
만들도록 노력했다고 합니다.
만화를 보셨던 분들보다 더 많은 분들이 이 영화를 통해서 그 날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어쩌면 이미 상관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영화가 있다더라"
라는 말만으로라도 더 많은 사람들의 입에
그 날이 오르내리며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80년 5월의 광주를 기억해주세요.
http://cartoon.media.daum.net/webtoon/viewer/1157
- 강풀님의 만화26년 첫회 (첫부분부터 눈물이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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