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의 태박산맥 1,2권을 읽고

2013. 6. 21. 08:39책,영화,전시회, 공연

 

 

 

스물 서너살 때 이 책을 읽다가 말았다.

내겐 너무 익숙하고 친근했던 전라도 사투리가 재미있었던 책이었다.

당시에는 민족주의나 현대사를 다루는 작품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고 흥미 위주로 읽었던 것 같다.

작가 조정래에 대해서도 1학기 12주차에 강의를 들었다.

문학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추천하는 소설이었고 대부분 사람들이 우리의 현대사를 알고 싶으면

꼭 이 태백산맥을 읽어 볼 것을 권해서 다시 읽기로 결심했다.

4권부터 8권까지는 우리집 책꽃이에 오래전부터 꽃혀 있었다.

1,2권을 3일에 걸쳐 읽었다. 두 번 정도 울었고 시간기 갈수록 페이지를 넘기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오늘은 1,2권을 도서관에 반납하고 3권을 빌려 올 작정이다.

좁은 땅덩어리에 살면서 외침도 많이 받아서 서러움과 한(恨)이 많은 우리네 민족이었다.

그런데 거기다가 해방과 함께 사상이 다르다고, 그 놈의 이데올로기가 당최 뭐시라고

같은 민족끼리, 부모형제가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눠야 했는지  몇 번을 울 뻔 했었다.

해방 직후 '여순 병란 사건"에서 한국 전쟁 6,25가 끝나고 1953년 휴전을 맞을때까지

전라도 벌교와 지리산을 배경으로 쓴, 이데올로기가 아닌 가난하고 비참한 농민들의 삶을 그린 소설이다.

 

작가 조정래는 80년대를 태백산맥을 집필하는데 보냈다고 한다.

광주에서의 피의 진압은 무서운 충격이었습니다. 그 진압의 명분인 반공 이데올로기와 분단 상황의 뿌리를 밝혀내는 것이야말로

비극적 역사의 되풀이를 막는 것이라 생각했지요. 살아남은 자의 눈물로 무릎 꿇고 태백산맥을 집필하며 80년대를 바쳤습니다."

태백산맥의 주 무대가 되는 지리산 일대를 수 십번을 오르내리면서 4년동안 준비를 하고, 6년이라는 시간동안 틀어박혀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20년전에 읽다가 만, 태백산맥이라는 소설을 마흔 네살이 된 지금 다시 읽으니 그 감회가 새로웠다.

그 시대의 가난하고 비참했던 농민들의 삶과, 그런 시대에도 사리사욕과 재산증식에만 눈 먼 악독한 지주들과

고위층 간부들의 모습은 이 시대의 윗 분들과 다르지 않았다.

지주들의 땅을 가난한 소작인들에게 골고루  공평하게 나눠줘서 모두 함께 잘 사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이론적인 공산주의 이념에 빠진

사람들의 가족들까지 "빨갱이 잔당"으로 취급되어 군인과 경찰들의 군홧발에 짓이겨셔 죽음을 당했던 농민들의 모습에

몇 번이나 책을 덮고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흥미진진하고 재미도 있는 소설이다.

 

 

 

 

 

 

옛날에 자식 다섯을 데리고 과부가 살았다.

남편이 남기고 간 것이 없는 살림살이는 혼자의 힘으로 아무리 뼈가 휘도록 일을 해도 자식들 입에 풀칠하기가 어려웠다.

몇 년을 이 앙다물고 살아낸 과부는 더는 견디질 못하고 병이 들어 눕고 말았다. 그대로 굶어죽게 된 형편이었다.

그 소문이 나자 하루는 어떤 노파가 찾아왔다. 산 너머 부잣집에 큰딸을 소실로 보내면 논 닷마지기를 주겠다는 것이었다.

큰딸은 열 다섯 살이었다. 과부 어미는 딸에게 차마 그 말을 할 수 없어서 노파가 대신 하기로 했다.

노파의 말을 들은 처녀는 하룻밤 하룻낮을 운 끝에 그리 하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그런데 노파에게 내세운 조건이 있었다.

닷마지기 논 대신 그 값에 해당하는 쌀을 달라는 것이었다. 하나도 어려울 것 없는 조건이었다. 처녀는 쌀을 받은 날 집을 떠났다.

늙은 부자와 첫날밤을 지낸 다음날 저녁 처녀는 뒤뜰 감나무에 목을 매고 말았다. 늙은 부자는 처녀의 죽음을 안스러워하기는 커녕

속았다고 펄펄 뛰며 당장 쌀가마를 찾아오라고 불호령을 쳤다. 하인들이 부랴부랴 처녀의 집으로 갔으나 식구들은 간 곳이 없었다.

이 소식을 들은 늙은 부자는 더욱 화가 나서 처녀의 시체를 묻지 말고 산골짜기에 내다버리라고 명령했다.

저런 못된 것은 여우나 늑대한테 뜯어먹혀야 한다는 것이었다. 처녀의 시체는 정말 내다버려졌다.

그런데 그 날밤 칠흑 같은 어둠 속을 헤치며 처녀의 시체를 업고 가는 그림자가 있었다.

그건 처녀와 남몰래 사랑을 나누어왔던 사내였다. 사내는 남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평장(平藏)을 했다.

그런데 다음해 봄에 그 자리에서 연초록 싹이 터올라왔다. 그 싹은 차츰 자라면서 몸에 가시를 달기 시작했다.

사내는 그때서야 그것이 애인의 한스런 혼백이 가시 돋친 나무로 변한 것을 알았다. 아무도 자기 몸을 범하지 못하게 하려고 온몸에 가시를 달고

환생한 애인의 정절에 감복한 사내는 평생을 혼자 살며 그 한을 풀어주기 위해 산지사방에 나무 심는 일을 했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워째서 공산당 허는지 아시요? 나라에서는 농지개혁헌다고 말대포만 펑펑 쏴질렀지 차일피일 밀치기만 허지, 가난허고 무식한 것덜이

믿고 의지헐지웂는 판에 빨갱이 시상 되먼 지주 다 쳐웂애고 그 전답 노놔준다는디 공산당 인헐 사람이 워디 있겄는가요, 못헐 말로

나라가 공산당을 맹글고, 지주덜이 빨갱이 맹글당께요."

 

 

1,2 권을 읽었다.

배고픔, 이 시대의 보통 사람들과는 거리가 먼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나 또한 가난한 집에 태어나 가난한 어린시절을 보냈지만 배고픔은 모르고 자랐다.

고문이나 총에 맞아 피가 철철 나는 통증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게 "배고픔"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눈물이 났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나도 우리들은 그런 처절한 배고픔을 알지 못한다.

재미있다. 페이지 넘기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등장인물들이 많아서 노트 뒷장에 메모를 해서 읽어가고 있다.

우리네 현대사와 아울러, 역사에서는 읽을 수 없는 진실을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분명히 내가 20대 때 읽다가 만 작품인데도 다시 읽어도 감동이 더 새롭다.

다음 주에는 몇 권까지 읽을 수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