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하길 참으로 다행이다.... 감사히 생각한다

2013. 3. 15. 08:27★ 나와 세상

 

 

 

 

남편이 출근하고, 아이들까지 학교에 가고나서  설거지를 할 때즘에 집전화벨이 울렸다.

올 1월달즘에 만났던 나의 오래된 고향친구였다.

"보형아, 나야.... 너 요즘  별 일 없지?"

"응 별 일 없는데 왜? "

"응... 어제 니 꿈을 꿨는데 그냥 니 생각이 나서.."

"무슨꿈인데..? 안 좋은꿈이었어?"

"...... 아니야.. 안 좋은 꿈은 아니었는데.... 니 꿈을 꿔서  출근하는 길에 니 목소리 들으려고 전화 했다. 너 정말 별일 없는거지?"

아무래도 친구의 꿈 내용이 안 좋은거였던 것 같았다. 느낌이 그랬다.

친구의 전화에 괜히 콧날이 시큰해지면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대충 이번 암검사의 관한 애기를 친구에게 전해줬고 친구가  퇴근하고 다시 전화를 하겠다면서  전화를 끊었다.

 

어제도 친정엄마가 계시는 막내동생집으로 가서 점심을 함께 먹었다.

시대에 맞지 않는 이불홑창에 풀을 먹이는 작업을 하시는 친정엄마는 어제 그제 바쁜 일정을 보내셨다. 하지 말라는데도 울 엄마 참 고집 세시다.

요즘 매일 엄마의 잔소리를 들으면서  엄마의 잔소리에 한마디도 지지 않고 말대답을 하는 딸로 지내고 있었다.

점심을 다 드신 엄마가 세탁실에 가 계시는 동안, 내 핸드폰이 울렸다.

암검사 결과를 알려주겠다는 산부인과 간호사의 전화였다.

내 수술을 집도했던 과장과 전화연결이 되었고, 결과를 알려줬다.(요즘은 결과도 전화로 알려주네요)

상피암이라고..... 수술은 해야한다고. 자궁 적출 수술을 해야 한다고...

상피암이긴 하지만 이것도 암세포이기 때문에 자궁을 드러내야 한다고....앞으로 출산 계획이 없는 중년이라서 그런가보다.

그곳에서는 못하고 대학병원에 가서 하라고.... 소견서랑 기타등등의 서류들도 필요할거니까

아무때나 내원해서 담당의사의 애기도 직접  듣고 서류들도 받아가라고 했다.

머리에서는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하는데 심장은  벌렁거리고 손은 덜덜 떨리는 증상은 어쩔수가 없었다.

상피암도 암이라서 무서워던건지, 아님 여자인 내가 자궁을 드러내야 한다는 게 무서운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 많이 떨렸다.

 

 

하지만 엄마앞에서는 티를 내지 않았다.

내가 울 엄마의 예민한 성격을 가장  많이 닮아 있다.

차멀미를 심하게 하시는 엄마, 아마 부실한 큰 딸년이 자궁 드러내는 수술을 받아야 하고

가볍긴 해도 암이라는 병에 걸린걸 알면, 시골 내려가시는 길에 심한 차멀미에 녹초가 되실 것이고

시골집에 계시는 동안에도 내내 잠을 못 주무실거라는 걸, 엄마의 성격을 제일 많이 닮은 나는 잘 알고 있다.

 

아파트 단지에 선 알뜰 시장에 가고 싶어하시는 친정엄마를 모시고 가서, 5천원짜리 쫄쫄이 바지를 하나 사고

재활용 빨래비누 4개랑, 5백원짜리 싱싱한 무우 하나를 사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풀먹인 동생 이불홑창을 엄마랑 같이 탁탁 털어내면서, 엄마의 정겨운 잔소리를 듣기도 했다.

이불홑창을 쫙쫙 펴서 접어서 발로 밟으면서 엄마랑 지겹도록 수다를 떨다가 오후 5시즘에 집으로 돌아왔다.

둘째 동생에게 전화를 해서 말했다. 동생은 엄마에게 말해야 하지 않냐고 했다.

절대로 안된다고 했다. 엄마 성격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고, 엄마가 알아봤자 얻어지는게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다음 주 초면 친정엄마께서는 시골에 내려가실 것이다.

동생에게 입단속을 철저하게 시켰다. 엄마가 아시면 그 때부터 내가 감당 하기 힘들 것 같기 때문이었다.

 

 

친정엄마와 이리 오랫동안 함께 지낸 적이 근 30년만에 처음 일 것이다.

난 중1때부터는 할머니와 단 둘이 살았고, 스무살때부터는 동생들과 자취생활을 했었고

결혼후에는 내 가정 건사하르랴 친정엄마와 한 집에서 함께 보낸 시간이 거의 없었던 것이다.

점심과 저녁을 엄마와 함께 먹고, 엄마랑 병원 진료 다녀오면서 쇼핑도 하고, 9천원어치 외식도 하는

그런 시간을 나는 이제까지 한 번도 가져 본 적이 없었던 딸이었다.

 

 

괜찮았다. 그리고 감사했다. 말기가 아니고 가벼운 상피암이라서..... 얼마나 감사한지...

그런데 밤에 다시 전화를 걸어온 고향친구가 울먹거렸다.

남편도 울었다. G랄~ 남자가 이깐 일로 질질 짜기는......

나는 이만하길 다행이라고 생각하는데 나의 상피암 소식에 내 주변 사람들이 날 불쌍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두 딸들에게는 알리지 않았다.

자궁 없는 여자로 산다는 게 그렇게 심리적으로 힘든 것인가?

난 그런 생각을 전혀  안하는데....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고만 생각하고 있다.

 

 

 

시어머니 퇴원 소식에 안부전화 드리니, 여전히 자기 힘들고 아프다는 소리만 하시는 모습에 쓸웃음이 났다.

속이 뒤집어지면서 저 분, 나중에 며느리가 암이라는 사실 아시면 분명히, 암 걸린 며느리보다

그런 마누라 뒷바라지 할 자기 아들만 불쌍하다고 걱정하실 것이고, 부실한 며느리 약한 체력만 뒤에서 욕하실 분일 것이다.

나중에 며느리에게 미안해서 어쩌시려고 저러나... 라는 생각만 들었다.

남편에게도 입단속 시켰다. 시누들과 시어머님에게도 아직은 알리지 말라고....

어머님이 요즘 남편에게 전화를 하셔서 자주 물으신단다... 니네들 별일 없지?

꿈에서 남편이 땅을 치며 통곡을 하면서 우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면서.......

그래도 다행히 본인 아들이 걸린게 아니고, 남의 자식인 며느리가 암에 걸려서 다행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 분은 그러실 분이다.

 

 

동생 말대로 나도 앞으로는 나, 위주로 살 것이다.

내가 건강해야지 남편도 자식도 있는 것이다. 아프면 나만 손해다..

이기적인 사람이 되서 4가지 바가지가 없는 며느리가 되면 어떤가......

시어머니 아프신 것은 효녀인 두 시누들이 있으니 신경 안 써도 될 것이다.

나의 어머님은 평생을 그렇게 본인 아프고 힘든 것만 아시지, 다른 사람 아프거나 힘든 것은

생각할 줄 모르는 그런 사람으로 살다가 돌아가실 것이다.

내가 지금보다는 이기적인 사람이 되더라도  내 시어머니 같은 사람으로는 살지 않을 것이다.

 

 

오늘도 친정엄마 모시고 외래진료를 갈 것이다.

오는 길에 백화점에 들러서 쇼핑도 할까 생각중이다.

쇼핑을 무진장 싫어하고 피곤하게 생각하는 나지만(이런 나를 엄마는 여자가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쇼핑을 좋아하시는 울 엄마를 위해 웃는 얼굴로 즐겁게 쇼핑도 해볼 생각이다.

엄마가 시골 내려가시고 나면,  집에서 가까운  국립 암센타나 큰 병원을 알아보고 입원해서

수술도 받을 것이고, 자궁 죽출도 필요한거라면 당연히 받을 것이다.

무섭거나 겁나지는 않는다. 그리고 감사히 생각한다.

상피암 단계에서 알게 된 것에..... 그리고 이또한 나중에 내가 글을 쓰는 소재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위로하면서, 이런 느낌들을 좀 더 과장하고 포장해서 글을 쓰는데 활용해야지 라는 생각도 해봤다.

 

 

여자는 약하지만 엄마는 강하다고 하잖아...

암 축에도 들지 않는 이따위걸로 겁먹으면 대한민국 아줌마가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