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대리비 100만원

2014. 1. 12. 11:37★ 부부이야기

 

 

 

 

 

 

 새벽 2, 전화벨이 울린다. 남편의 대리운전 호출이다.

집에서 가까운 곳에서 술자리가 있는 날이면 회사에서 지급되는 남편 대리비를 받기 위해 가끔 내가 대리운전을 하기도 한다.

그렇게 번 대리비를 반찬값에라도 보탤 마음으로 남편의 대리운전을 하러 새벽 외출을 하는 여보대리를 시작하게 된지도 7년이 넘었다.

업무적인 술자리가 아닌 날에는 대리비 따위는 없다.

허나 그런 개인적인 술자리에 내가 대리운전을 해주지 않으면 남편 지갑속에서 대리비가 지출된다.

주머니 돈이 쌈짓돈이라고 남편의 개인적인 술자리 때문에 지출되는 대리비가 아깝다는 생각에 내 스스로가 남편의 김기사가 될 때도 있다.

근래 들어서는 남편의 대리운전을 해주고도 대리비를 받지 못하는 횟수가 많아지고 있다.

회사일로 술자리가 있는 날에도 남편에게 지급되는 대리비가 없는건지 아니면 남편이 대리비를 꿀꺽 해버리는 건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요즘엔 남편의 대리운전을 무료로 해주는 날이 많아지고 있다.

 

 

2006년도에 톨게이트 근무를 시작하면서 운전면허를 취득했다.

나의 도로주행 연수는 남편 대리운전을 해주는 것으로 댜신했다.

차가 막히는 도로를 유난히 못 참아하는 남편은 운전대만 잡으면 평소 내가 알고 있는 모습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 변한다.

운전할 때만은 경쟁의식이 치솟는 남편인지라 새벽까지 술을 마신 다음 날엔 내가 운전을 해서 남편의 회사까지 책임지고 출근을 시켜준다.

출근 하는 차 안에서 우리는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평소에는 보기도 힘든 남편얼굴을 보면서 밀린 잔소리 세례를 퍼붓기도 한다.

그리고  대리운전을 하지 않으면 운전할 기회가 없는 나의 초보운전 실력에 대한 남편의 신랄한 비평을 듣기도 한다.

남편의 전용대리운전을 하면서 남정네들의 술자리에서 반복되는 이야기 주제들이 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그래서 수다가 여자들만의 전용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집에서 남편의 회사까지는 차량이 많은 월요일을 제외하곤 대략 40분 정도가 걸린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자동차를 운전해서 출근할 때의 이야기다.

남편을 출근시켜주고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2시간이 넘게 걸린다.

그러기 때문에 내가 직장을 다닐 때는 남편의 전용 김기사가 되어주는 일은 하지 못했다.

근래 들어서는 대리비를 받지 않고 운전해주고 있지만 이 또한 장부를 만들어 기록해서 한꺼번에 청구할 것이다.

구두상의 약속은 실효성이 없기 때문에 매번 대리운전을 할 때마다 남편의 싸인을 받아 놓는다.

이렇게 남편의 전용 여보대리 김기사로 운전을 해서 내가 받은 대리비는 적게는 2만원일 때도 있고, 많을 때는 5만원에서 10만원을 받을 때도 있다.

그렇게 남편 대리운전을 해서 번 돈의 대부분은 반찬값이나 남편의 용돈으로 지출된다.

올해 들어서 부쩍 남편의 술자리가 줄어들어서 내 대리비 수입은 줄었지만 남편의 이런 변화를 내심 환영하고 있었다.

 

며칠 전 아침, 남편의 출근을 위해 운전대를 잡은 나를 보고 그가 한마디 했다. 내 옷차림에 대해서였다.

옷이 그것밖에 없냐고, 신발도 제발 할머니 같은 효도화 좀 신지 말라고 했다.

바쁜 아침에 나름 신경써서 입은 차림새에 그런 타박을 들은 난 발끈해서 쏘아 부쳤다.

" 나도 옷도 살 줄 알고 신발도 살 줄 알거덩~~ 돈만 줘 봐봐!" 그렇게 말하는 내게 남편이 <<드라마 가을동화>>의 원빈톤으로 물었다.

 "얼마면 돼? 얼마면 되는데? " 나도 지지 않고 대답해줬다.

"옷이랑 구두에, 거기다가 가방까지 살려면 백만원 정도은 있어야 될 걸!!" 회사 앞에 도착한 내가 차에서 내리는 데, 남편이 불쑥 지갑에서 뭔가를 꺼냈다.

당신 옷도 사고, 구두도 사고, 가방도 사! 백만원이라고 했지? ” 하면서 내 손에 동전과 지폐를 쥐어줬다.

백원짜리 동전 하나에, 만원 짜리 한 장이었다.

백원짜리 동전 먼저 주고, 만원 짜리 한장을 줬으니 백만원이라고 하면서.

그렇게 나는 남편을 출근시켜주는 기사 노릇을 해서 그 동안 밀린 대리비와 그날 대리비로 백만원이라는 거금을 받을 수 있었다.

 

http://blog.daum.net/bo8284/13522550(예전에 올린 글)

예전에 제 블로그에 올린 글을 수정해서 수필합평날에 제출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 번 글은 10월 합평날에 교수님과 선배님들에게 합평을 받았던 글입니다.

어제 2014년 1월 합평일에 제출한 글은 간만에 칭찬을 받았습니다. (1월 합평글은 다음번에 올리겠습니다.)

물론 어제 합평받은 글도 재작년즘에 제가 블로그에 올린 글을 수정한 제 글입니다.